세계 최초로 시작한 G러닝(게임을 활용한 학습법)은 온라인 게임 ‘거상’으로 시작했다. 거상은 16세기 조선, 중국, 일본 등을 배경으로 한 경제 RPG 게임이다. 검색을 해보니 G러닝의 시작에 대해 당시 <한국경제신문>은 이렇게 쓰고 있었다.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위정현 교수는 이 학교 경영학과에 개설된 4학년 과목 콘텐츠 비즈니스 전략론의 교재로 온라인 경제 시뮬레이션 게임 ‘임진록 온라인 거상(巨商)’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콘텐츠 비즈니스 전략론 수업은 수강생 3명이 한 팀이 돼 직접 게임을 하면서 주어진 공동과제(퀘스트)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위 교수는 “각 팀의 초기 조건은 모두 같지만 어떤 전략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게임에서의 재산, 레벨, 신용도 등이 달라진다”고 설명하고 “상거래와 경제 개념 위주로 진행되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학생들의 전략적 사고를 평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G러닝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했다.
2003년은 사회적으로 온라인 게임에 대한 공격이 극에 달한 시절이었다. 간판 게임인 리니지의 폭력성에 대한 비난은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또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둘러싼 논란 역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학 교수가, 그것도 경영학이라는 정통적인 학문 영역에서 온라인 게임을 가지고 수업을 하겠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놀랄 만도 했다.
거상은 G러닝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눈여겨보고 있던 게임이었다. G러닝 기반의 경영학 수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수요와 공급에 기반한 경제 활동이 가능할 것, 아이템에 기반한 상품 제조와 유통, 판매가 가능할 것, 일정수의 유저가 형성되어 자율적인 경제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을 것 등이다. 필자가 여름방학에 플레이해본 결과 거상은 적합한 게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조이원에 연락해 수업에 사용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여름방학 내내 새로운 수업 설계에 빠져 살았다.
9월 초에 개강을 하자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이내 소문은 순식간에 전체 학교로 퍼져나갔다.
‘게임 가지고 경영학 수업을 한대….’
‘세상에, 정말?’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수업 시간에, 그것도 특강이나 교양 과정도 아닌 경영학부 전공 과목에서 게임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대함과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거상을 플레이하고 있던 학생들은 더 신나는 듯했다. ‘음지’에서 하던 게임을 ‘양지’에서 하니 얼마나 흥분되겠는가? 하지만 그 흥분이 ‘지옥의 고통’으로 바뀌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에서의 G러닝이 무작정 게임을 시키고 그 결과를 성적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만든 경영학 G러닝의 가이드라인으로 이런 내용이 있다.
첫째, 네 명이 한 팀을 구성한다. 개인에게는 한 달에 플레이할 수 있는 40시간 정도가 주어진다. 네 명의 시간을 합하면 160시간이다. 둘째, 매주 퀘스트가 주어진다. 그들은 이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자신들의 전략에 기반해 플레이해야 한다. 셋째, 각 팀은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이며 매주 성과를 보고한다. 각 팀은 상대팀의 전략을 알 수 없다. 매주 발표하는 성과 보고는 교수인 필자를 제외하고는 비밀로 한다. 넷째, 게임이라는 가상 경제 공간에서 독점, 매점매석, 미투 전략(모방전략) 등 범죄행위를 제외한 어떤 경제 행위도 가능하다.
각 팀은 수업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 문제 중 하나로 게임플레이 시간이 있었다.
두 주가 채 지나지 않아 네 명의 팀원 중 40시간을 다 사용해버린 학생이 속출했다. 일반 게임 플레이처럼 시간에 대한 감각 없이 의욕만 앞서다 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수업 후 몇 몇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필자에게 찾아왔다.
“교수님, 팀원 중 두 명이 플레이 시간을 다 써서 게임 접속이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필자가 사전에 조이원에 요청해 학생들의 플레이 타임을 통제하고 있었다. 40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로그가 끊어진다. 또 학생들의 아이디는 GM들이 확인, 감시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혹시나 다른 아이디를 만들어 접속하거나 다른 아이디(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로그 데이터도 전달받고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학생들을 쳐다보다 담담하게 답했다.
“방법이 없다네. 두 명으로 다른 팀과 경쟁할 수밖에….”
순간 학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플레이 시간을 제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경영학, 특히 전략적 사고의 기본인 시간과 사람이라는 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체득시키기 위함이었다. 희소 자원이 제약되어 있다는 것은 전략적 사고의 출발이다. 시간과 돈이 무한정으로 존재한다면 누구든 어떤 사업이든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자원의 제약이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조직과 사회의 귀중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간 제약을 하는 것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그것은 전략적 의사결정에 대한 훈련이다. 예를 들어 해당 주에 퀘스트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학생들은 그 퀘스트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퀘스트를 완수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한 달에 네 개의 퀘스트가 과제로 나간다면 한 퀘스트당 학생 한 명은 10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일주일에 10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하루당 2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만약 해당 주의 퀘스트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그 다음 주나 또 다음 주에 등장하는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점차 높아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퀘스트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완수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집단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Go or Stop’을 두고 학생들은 팀 내 갈등에 빠진다. 난관에 봉착한 기업 비즈니스와 완전히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퇴로가 막힌 학생들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야 ‘게임 지옥’에 빠졌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