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네이버 지분이 4% 수준입니다. 열심히 하지 못하면 쫒겨납니다"

지난해 라인 상장 당시 춘천 데이터센터 '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한 말이다. 올해 초 변대규 회장과 한성숙 대표 체제로 들어서기 전 네이버가 이해진 의장과 김상헌 대표 체제를 끝낸다고 이미 선언한 상태에서, 반 정도는 농담처럼 나온 가벼운 말이었지만  추후 네이버가 그리는 큰 그림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상헌 대표는 네이버를 떠나고 한성숙 대표가 스몰 비즈니스와 기술기반 플랫폼을 중심으로 기업의 역량을 키우는 한편, 이해진 창업주는 이사회 의장직을 변대규 회장에게 넘긴 후 글로벌 전략에 나서는 청사진이다.

올해 초 네이버는 공언한 지도부 세대교체를 무난하게 마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는 당시 "순환출자가 없는 네이버는 투명한 기업구조를 바탕으로 매끄러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고 자평했다.  국내 시가총액 톱10인 거대기업이 투명하고 뒷탈없이 경영권 이양을 해낸 점을 자랑하는 분위기였다.

▲ 이해진 창업주. 출처=네이버

투명한 네이버?  공정위 감시의 칼 빼들어

그런데 재벌개혁을 최우선 가치로 둔 김상조 위원장의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에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네이버를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규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매년 5조원 이상의 준 대기업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의 규제를 적용하는 제도다.

공정위의 행보는 네이버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 평가된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동일인(총수)을 특정해 공정위에 신고해야 하는데,  동일인은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수, 즉 오너다. 네이버의 지난해 자산이 5조원에 육박하는 만큼 당연한 조치라는 것이 공정위의 생각이다. 

 공정위는 지난 4월 기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구별해 지정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더 숙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물밑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진 창업주는 박상진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 정연아 법무담당이사와 함께 14일 공정위를 방문해 신동권 사무처장, 김상조 위원장과 면담해 이러한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네이버는 자산만을 잣대로 삼아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고 이해진 창업주를 사실상 총수로 인정하는 공정위의 행보에 우려하고 있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여지가 있으나 이해진 창업주의 총수 지정은 재고해달라는 의견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해진 창업주는 지분이 4% 수준에 불과해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글로벌 전략에 매진하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행보는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강력히 반발하지는 않되 공정위의 '숙고'를 요청하는 그림이지만, 내심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관계자는  "네이버는 순환출자도 없고 이해진 창업주 가족이 자회사를 만들어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기업 지배력을 키우는 일도 하지 않는다"면서  "공정위가 예정대로 네이버를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정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네이버를 정경유착의 대기업 재벌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총수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목표는 어디?

공정위의 이번 행보는 박근혜정부 당시 있었던 카카오의 공시대상 기업집단 포함 논란과 오버랩된다. 카카오는 지난 2014년 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해 자산이 2000억원대에서 2조7680억원으로 급증했으며, 이후 부침이 있었으나 5조원의 자산을 넘겨 소위 준 대기업이 됐다.

당시에 논란이 많았다. 특히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ICT 기업을 굳이 총수 체제의 준 대기업으로 규정해 '앞날'을 막아야 하는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러한 비판은 현재 네이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분위기다.

 공정위의 이러한 행보는 '예고된 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재벌 저격수로 유명한 김 위원장은 취임 초기 언론 인터뷰에서 데이터 독과점을 이유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제재에 나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국내 기업 감싸기'는 아니라는 뉘앙스가 강했기 때문에, 국내 기업도 독과점 사업에 따른 우월적 지위 남용에 나선다면 제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업계에 만연했다. 그리고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대표적인 ICT 플랫폼 강자다.

공정위가 14일 공정위와 소속기관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면서  기업집단국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집단에 대한 정책과 감시를 의미있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기업집단국 신설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카카오에 이어 네이버를 겨냥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ICT 업계에서 공정위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점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업계 관계자는 "가계통신비 인하 정국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사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사이 공정위도 게임에 뛰어들었다"면서  "역대 정권에서 공정위가 이 정도의 위력을 자랑하는 줄 몰랐다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최근 공정위의 행보 자체가 크게 넓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ICT 업계를 정조준한 정부의 굵직한 정책 방향도 이번 논란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효성 위원장은 "네이버 등 포털은 이제 대규모 사업자가 됐다고 판단된다"면서 "대규모 사업자로서 사회적 의무나 책임이 따른다고 본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ICT 기업도 예외없이 감시의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 출처=네이버

계획은 예정대로...눈치보기 극심할 듯

이해진 창업주가 네이버의 총수가 되면 기업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뛰고있는 네이버의 행보를 다른 외국 기업들이 색안경으로 볼 여지는 있다. 나아가 순환출자도 없으며 창업주의 영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공정위는 정량적인 지분 수치가 아닌, 이해진 창업주의 실제 영향력에 집중하고 있으나 네이버는 내심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카카오의 경우 김범수 의장의 지분이 상당한데다 가족 지분이 많이 있어 준 대기업 선정에 일정정도 타당성이 있었지만, 네이버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반감도 있어 보인다.

공정위는 예정대로 네이버를 준 대기업으로 선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눈치보기가 벌어지며 각자의 여론전이 거세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