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 72주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천명했지만 북한 정권은 우리나라 전역을 4등분해 미사일 타격권을 설정해 놓는 등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속내를 감추지 않아 문 대통령의 기념사의 빛이 바랬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의 무력 통일 야욕을 외면한채 대화와 평화적 해결의지만을 강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면서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문 대통령은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며, 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북한이 남북합의 상호이해을 약속한다면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 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베를린 선언을 통해 밝힌 대북 제안이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에서 주창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재언급하면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을 통해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고 남북공동의 번영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北, 남한 전역 4개 타격권 설정

공교롭게도 이날 북한 전략군 사령부가 우리나라 전역을 4등분해 미사일 타격권을 설정해 놓은 지도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관영매체들은 전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미국령인 괌 포위사격 방안을 보고받았다고 보도하면서 사령부 지휘소와 사령부 전경, 지하벙커 등 사령부의 내·외부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사령부 지휘소에서 김락겸의 보고를 받는 김정은의 뒤쪽 벽면에 지도 3장이 걸려 있다. 지도 상단에는 각각 '남조선 작전지대' '일본 작전지대' '태평양지역 미제 침략군 배치'라는 글이 적혀 있다. '남조선 작전지대'라는 지도에는 남한 전역을 4개 권역으로 분류한 선이 표시돼 있다.

선이 그어진 곳은 군사분계선(MDL) 축선과 울진권역, 포항권역, 부산 앞바다이다. 각 라인 끝에 적힌 글씨는 식별할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미사일 기종을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도 오른쪽에 그려진 도표 4개에는 북한이 타격 목표로 삼는 주요 부대와 국가전략 시설 등이 적힌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지도에 대해 북한이 스커드(사거리 300~500㎞)와 노동(사거리 1300㎞) 등 단거리 미사일의 유효사거리를 기준으로 남한 주요 시설에 대한 타격 목표와 범위를 설정해 놓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지휘소 내부에는 북한이 최근 포위 공격 계획을 밝힌 괌의 앤더슨 미 공군기지를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성사진도 있었다. 북한에서 2100마일(3379㎞)가량 떨어진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는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을 가진 미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 등 미국의 전략자산이 배치돼 있다. B-1B는 앤더슨 기지에서 이륙하면 2시간 30분 이내에 한반도 상공에 도착해 작전을 펼치할 수 있다. 북한이 이 사진을 공개한 것은 ‘괌 포위 사격 계획’이 단순한 협박용이 아니라 실제 실행 가능한 위협이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긴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성장, 중이 대북 원유 공급중단 북 대화테이블로 나오게 해야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과제’라는 논평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지난 7월 ‘베를린 구상’을 통해 구체화한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전략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고 강조한 것에 대해 “전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고려하는 북한 지도부와 미 행정부 일각의 입장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이처럼 강력한 평화 수호 의지 입장은 단기적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완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 실장은 그러나 북한의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배치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추가적으로 ICBM을 시험발사하고 수소폭탄 개발과 핵무기 소형화를 위한 추가 핵실험을 언제라도 강행할 수 있는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정책 공조가 특별히 강화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실장은 특히 북한이 스스로 ICBM과 핵실험을 중단하고 핵동결로 나아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고 “현재 현실적으로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에 나오게 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는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향후 1개월 내에 핵과 ICBM 시험발사 중단 선언을 하고 핵동결 협상에 나오지 않는다면 1개월 후부터 중국인의 북한 관광 금지 및 북중 밀무역의 철저한 차단,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대북 가공유 수출 중단, 북한으로부터의 일체의 수입 중단 및 중국 내 북한 근로자의 귀국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 선언하면 김정은은 체제생존을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해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정 실장은 역설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특정 분야에 국한해 제재를 하는 경우에는 북한이 일정한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겠지만 중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를 가지고 압박한다면 북한은 경제파탄을 피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에 대한 기존의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정 실자의 제안이다.

정 실장은 “이처럼 중국이 북한에 대한 기존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서 벗어나 중국식 ‘벼랑끝 외교’로 북핵 동결 협상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북한을 이끌어내어야 비로소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의 이행이 가능해진다”면서 “문 대통령은 지난 6월의 미국 방문에 이어 조속히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북핵 및 사드 문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서 양국의 이견을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나아가 사드 문제에 따른 한중 갈등을 해소 또는 완화하고 양국의 대북정책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의 사드를 구입해 직접 운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한국의 1년 경제 피해 규모가 최대 16조~17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만약 약 1조379억원에 사드를 구입해 중국의 보복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경제적인 선택일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 실장은 “북한이 협상의 테이블에 나오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단 선언 및 핵동결 협상 참가를 조건으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진척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북한이 핵동결 협상에 참가하면 그때에 비로소 문재인 정부는 ‘베를린 구상’을 이행에 옮기면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공존과 협력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정은은 협상테이블에 나올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