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를 그린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는 후고구려의 창업주 궁예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나온다. 그는 승려의 신분이었으나 역경을 딛고 난세의 시기 일국(一國)을 세운 영웅이지만, 훗날 의심병이 도져 민심을 잃고 몰락해 역사의 대권을 왕건에게 넘기고 만다. 물론 후기 역사가들의 의도적인 윤색이 있었겠지만.

드라마에서도 극적인 장치로 활용되지만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의 현신으로 여기고 소위 '관심법(觀心法)'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관심법은 말 그대로 타인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기술이다. 진짜 궁예가 관심법에 조예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몰락을 예견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것을 고려하면 그는 '사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21세기. 놀랍게도 궁예의 관심법은 실제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조금씩 우리의 삶으로 파고들고 있다. 마구니(불가에서 말하는 악한 마음이나 존재) 운운하며 신하를 살해하는 광기가 아니다. 이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다.

▲ 미륵보살입상. 훗날 인공지능이 미륵이 될 수 있다.출처=위키미디어

"표정에 다 드러나"
흔한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다. 젊은 형사 하나가 용의자를 겁박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에헤이, 이 친구가 왜 이래..우리 사장님 놀라시잖아"라며 사람좋은 미소를 머금은 노련한 형사가 등장한다. 그는 씩씩거리는 젊은형사를 다독이며 '좋은경찰, 나쁜경찰 역할극'을 벌이고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곰탕을 시켜준다. 순간 용의자의 표정이 변하고, 노련한 형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우리 사장님 죄 없잖아. 표정에서 다 보인다고...배후가 누구에요?"

사람의 마음, 감정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종교적 제의에서 현대의 심리학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 특히 감정을 읽어내는 일차적 척도가 바로 표정의 변화에 있다는 절대적인 전제다.

물론 100% 적중률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확률이 높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텔레파시로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가장 단적인 증거인 표정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 애플 홈팟. 출처=캡처

애플이 지난달 29일 올해 연말 출시될 인공지능 스피커 홈팟의 펌웨어를 공개했다. 생태계 저변 확대를 위해 ICT 기업이 펌웨어를 공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 공개된 펌웨어의 일부 코드가 개발자들의 구미를 크게 당겼다는 말이 나와 눈길을 끈다. 홈팟은 물론 차기 아이폰 전체와 관련된 유의미한 코드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단 홈팟은 iOS로 구동이 되며 A8칩을 탑재하고 1GB 램과 상단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는 272x340 수준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역할을 수행하며 스마트홈 전략의 콘트롤 타워가 될 전망이다. 시리의 경우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를 번역할 수 있게 됐다.

또 디바이스 러닝을 통해 사용자의 습관을 파악해 뉴스를 큐레이션하는 기술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 연장선에서 홈팟은 구글의 구글홈, 아마존의 에코 등과 치열한 경쟁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코드'를 살펴볼 차례다. KT경제경영언구소 디지에코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홈팟 펌웨어 코드를 개발자들이 분석한 결과, 표정인식과 관련된 다수의 코드가 나왔다고 밝혔다. 심지어 결제와 관련된 코드도 포함이 되어있다고 전했다.

자세히 살펴보자. 공개된 코드에 따르면 아이폰8 전용 얼굴인식 기능의 코드명은'Pearl'이라고 한다. 얼굴표정 인식과 관련된 코드에서는 입을 다물었다거나, 입술의 왼쪽 또는 오른쪽이 올라갔거나 웃을때의 입술모습, 보조개, 찡그리는 모양, 입술을 다문 모양 등을 표시하는 코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결제와 관련해서는 Passbook 결제와 애플페이 섹션에서“presentation.pearl.field-detect”와“presentation.pearl.pre-arm”이라는 코드가 포함되어 있다. 전자의 경우 스마트폰의 카메라 인식각도 범위내에서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추정된다.

▲ 홈팟 펌웨어 중 얼굴인식 기반 결제관련 코드. 출처=애플인사이더

이렇게 되면 표정인식, 얼굴인식 기능이 애플페이에 적용되고 자연스럽게 홈팟과 아이폰8에 담길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는 최근의 루머와도 맞아 떨어진다. 미국 특허상표청에 따르면 애플은 2013년 이후 지문인식기인 터치 아이디(Touch ID)를 안면인식 인증으로 대체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했으며 3D 센서를 OLED 스크린에 테스트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허 출원 내용을 보면 3가지 매개 변수 (피부 색조 감지, 얼굴 감지, 움직임 감지)를 사용해 사용자의 표정을 감지하는 기술이다. '단말 사용시 우선행동결정(DeterminingPreferentialDeviceBehavior)’이라는 이름이 붙은 본 특허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단말의 위치정보와 동작센서,빛 센서, 근접센서, 카메라, 웹 브라우저 내역, 사용자의 기분 상태들을 모두 종합하는 기술이다.

▲ 사용자 기분상태 인식 특허관련 이미지. 출처=미국 특허청

단서는 또 있다. 바로 애플의 간편송금 루머다. IT매체 리코드는 지난 4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애플이 자체적인 송금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5년 잠깐 타진했으나 결국 접었던 상태에서 애플이 간편송금에 진출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표정인식과 애플페이가 연동되는 기술의 연장선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iOS10 발표 당시에도 얼굴인식에 대한 힌트가 있다. iOS10 출시 당시 사용자가 단말을 올리면 스크린이 자동으로 켜지는‘RaisetoWake’기술이 더해진 바 있다. 당시는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의 표정인식 기술 루머를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기술이다.

안면인식으로 간편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려면 디스플레이와 피사체의 각도가 상당히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디스플레이와 피사체의 거리가 멀다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터치ID가 없어도 애플페이를 통한 결제가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다.

애플은 지난해 1월 얼굴인식 기반 감정인식 스타트업인 이모션을 인수한 상태다. 이모션의 감정분석 솔루션은 얼굴에 있는 19개의 기본적인 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해 전체적인 감정상태(긍정,부정,중립)와 세부적인 감정상태 (기쁨,놀람,슬픔,두려움,혐오,멸시,분노)와 불만(frustration)을 비롯해 혼란(confusion)과 같은 복잡한 감정도 캐치할 수 있다.

▲ 이모션 솔루션. 출처=이모션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음을 아는 순간
애플만 표정인식 기술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은 지난해 6월 알렉사의 음성인식 기술과 함께 표정인식이 가능한 스킬을 추가했으며 미국의 익스프레시브는 이미 이용자의 단어와 목소리 톤, 표정의 변화를 인공지능이 읽어 개인비서가 피드백을 주는 솔루션을 개발한 상태다. 앞으로 3D 아바타가 상용화되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인공지능 비서의 탄생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

어떤일이 벌어질까. 이커머스 영역의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디지에코는 "지능형 개인비서를 통해 상품을 추천하거나 정보를 제공할때 얼굴표정을 통해 상품이나 정보에 대한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고 해당 데이터에 기초해 이용자 맞춤형 상품이나 정보추천이 가능할 것"이라며 "광고나 동영상 시청시에도 이용자의 표정파악을 통해 선호도를 파악하고 어떤 부분에서 웃었는지 아니면 반응이 없었는지를 파악해 광고나 영상제작시 반영할 수 도 있다"고 분석했다.

▲ 익스펜시브 인공지능. 출처=익스펜시브

헬스케어와도 연동될 수 있다. 얼굴상태와 목소리의 경우 건강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뉴욕대학교의 란곤의료센터(NewYorkUniversity’sLangoneMedicalCenter)의 연구팀이 증명했다.

이들은 머신러닝을 활용해 사용자 목소리 패턴을 분석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외상성뇌손상 등을 진단할 수 있으며 이미 관련 기술개발에 나서는 중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감정적 교감, 자율주행차 이용의 편의성 강화에도 도움이 되며 인터페이스 변화에도 혁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디지에코는 "단순 정보검색에서 단축버튼형 명령어 추가로 활용도가 높아진 지능형 개인비서의 다음 경쟁은 누가 먼저 지능형 개인비서에 감정인식 기능을 추가하느냐가 될 것"이라며 "스마트폰 역시 더이상 인터넷 이용단말이 아니라 사용자를 이해하는 인공지능 단말로 진화하면서 우리가 스마트폰을 평가할때도 성능이 아니라 지능과 감정적 교류로 평가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