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매미는 치열하다. 자동차 소음을 이기려고 악을 쓴다. 저자를 만나러 서울 논현동 가파른 경사길을 오를 때도 뒷산 용요봉(龍搖峰)은 용 대신 매미들로 들썩였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사무실은 오전부터 텅 비어 있었다. “모두들 일하러 나갔어요.” 악수를 나누면서도 민망할까 봐 못 던진 질문에 정용민 대표가 알아서 답했다. 대개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 외모는 직업을 닮는다는데, 정 대표는 일견 무인(武人)풍이었다. 그가 발을 디딘 곳이 기업의 피 튀기는 전쟁터인 때문일 것이다.

정 대표의 신간 <기업의 입>은 회사를 대표하여 언론에 회사의 공식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변인(Spokesperson)을 다룬다. 대변인이 철저히 훈련되도록 풍부한 현장 사례를 곁들이며 체계적인 대처법의 정수를 골라 모았다. 무엇보다 대변인이 상대할 적(敵)인 언론사와 기자들의 생태와 생리에 대해 ‘매우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기자 입장에서 읽어보면, 치부를 강제 노출당한 기분이 든다. 몇몇 대목은 정확하다 못해 잔인하다 싶다.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예전에는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면 기사의 크기를 줄이고, 제목을 수정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평소에는 언론인들과 접대골프를 칠 필요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예전 방식은 통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대다수 기업이 과거 사건들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정 대표는 과거 기자들과 지금 기자들의 행태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에서도 언론은 더 이상 기업의 메시지를 그냥 실어주는 ‘광고판’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도대체 한국의 기자들은 어떻게 바뀐 것일까.

“요즘 ‘사회적 공분이 언론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기존 지상파를 넘어 인터넷 언론과 종편들이 생겨나면서 뉴스 보도의 방향은 사회비판과 이를 기반으로 한 부정적인 여론화에 집중되고 있어요. 이런 방향으로 언론의 취재경쟁은 가열되고, 취재기법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죠. 기자들의 취재욕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당연히 맥락이 보도되기보다는 취재원의 입에서 나온 단어, 표현사례 한 조각에 쌍따옴표가 붙여지고요. 더구나 지금은 더 이상 공적 커뮤니케이션과 사적 커뮤니케이션이 분리되지 않는 사회예요. 소셜 미디어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가 널리 확산되고 있죠. 이제 기업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개인적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실제로 요즘 기자들의 보도 태도는 “걸리면 무조건 쓰고 본다”는 비난을 살 정도로 가혹하다. 정치·사회 분야의 경우 기자와 단둘이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느닷없이 대서특필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유명인의 SNS는 24시간 감시하에 놓여 있다. 기본적인 양해나 신뢰는 실종된 상태다. 인격살인에 가까운 보도조차 ‘아니면 말고’식으로 쏟아진다. 전에 없던 ‘아수라장’이다. 이런 분위기는 기업 쪽으로도 빠르게 넘어오는 중이다. 이를 두고 정 대표는 “유사 이래 현재와 같이 기업이나 조직을 위협했던 미디어 환경은 없었다”고 정리했다.

정 대표의 걱정은 이 지점에서 비롯됐다. “모든 게 바뀌었는데, 기업 리더의 마인드는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기자들 앞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허심탄회하게 회사 속사정을 털어놓는 리더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심지어 TV카메라를 밀치고 PD와 육박전을 벌이는 리더들도 있죠. 기자들에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는 ‘내가 못할 말 했나?’ ‘틀린 말 했나?’ 하며 기자들에게 부적절하게 대응하는 리더들도 있고요.”

 

스트래티지샐러드의 기본 업무는 미디어 트레이닝이다. 대상은 기업 경영자와 임원을 넘어 일선 실무 책임자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최근 언론들이 탐사보도를 강화하고 취재 대상 기업의 비공식 채널인 일반직원에까지 접촉하기 때문이다.

트레이닝은 크게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Do’s and don’ts)’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스킬 공유, 커뮤니케이션 실습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스트래티지샐러드의 핵심역량은 ‘커뮤니케이션 실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습에는 실제 주제에 관해 심도 있는 연구와 자료습득을 완료한 전문 컨설턴트가 투입되며,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자세를 관찰할 수 있도록 비디오 녹화가 진행된다. 이 부문의 경험과 학습, 이론이 축적되면서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미디어 트레이닝은 세계 유수의 전문기업들도 넘보지 못할 정도가 됐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보자. 대변인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대변인의 상대는 기자입니다. 이미 오랜 기간 취재 훈련을 받았고, 실제로도 매일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와 보도를 쏟아내는 전문가들이죠. 그들은 늘 준비되어 있어요. 대변인이 기자의 취재에 대응하는 유일한 성공 방식은 훈련과 준비죠. 무엇보다 회사의 핵심 메시지를 정확하고 신뢰성있게 언론에 전달하려면 대변인들도 '기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은 채 기자와 대화를 시작하면 백전백패입니다.”

정 대표의 <기업의 입>이 출간되자 가장 먼저 책을 주문한 곳은 전국의 도서관들이었다고 한다. 시류 따라 바뀔 교수들의 해외이론 소개서도, 홍보맨들의 현장 경험담도 아닌 생생한 야전교범(野戰敎範)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부문 FM(Field Manual)이다.

앞서 정 대표는 기업 위기관리의 중요성과 위기관리 주체를 명확히 규정한 <1% 원퍼센트>(ER북스 펴냄)를 펴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1% 원퍼센트>는 위기관리가 홍보·마케팅을 뛰어넘는 중요한 기업 생존전략임을 부각한 명저로 꼽힌다. 정 대표는 그 책에서 “실제 회사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내의 핵심 1%의 경쟁력이 위기관리를 성패를 가른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이번 책은 기업 1% 중에서도 대변인에 특화된 미디어트레이닝 심화편인 셈이다.

인터뷰를 마치면 학동공원에서 고즈넉한 오후 한때를 맛보리라 기대했건만 그곳은 여전히 소란스러운 생존 현장이었다. 기업현장도 날씨도 요즘은 '폭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