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발음은 올곧이 영어 발음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난듯하다. 토익에서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이 영국발음과 호주발음 등이 추가돼 리스닝 테스트를 실시한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영어의 표준적인 발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조금 더 다양한 국가의 특유의 발음에 대해서 언급해보고자 한다. 악센트가 있다는 것을 발음의 문제로 일어나는 해프닝까지.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홍콩을 부산보다 더 자주 갔을 만큼 홍콩 마니아다. 그래서 홍콩에 위치한 여러 호텔을 들락날락했었다. 어느 날 조식 및 추가서비스를 많이 받아 호텔직원에게 대략적인 견적서를 부탁했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높은 액수로 서비스 가격이 매겨져 있어, 호텔 로비 직원에게 상세항목은 보지도 않고 약간은 격앙된 표정으로 연유를 물었다. 로비에 직원 대부분 업무에 분주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다급한 나머지 전화통화하고 있는 직원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중간에 통화를 끊기 힘들었던 그녀는 우선 내 영수증을 들여다보더니 먼저 전화가 걸려온 손님부터 응대해주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짧은 몇 마디가 실망스러웠다. 로비 직원이 발음이 좋지 않았다. 필자는 순간 이 사람과 의사소통이 잘될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직원과의 대화에서 첫 마디 들은 필자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직원이 건넨 말은 “Let me explain it to you”. 즉 한국말로 “~을 해드릴게요”라고 시작을 하는 것이었다. 이 직원은 손님들에게 공손함을 보여주는 영어표현을 의도적으로 많이 구사했다. 또한 “Could you” 혹은 “Would you like to ~” 와 같은 상대방에게 조심스러운 부탁을 할 때 사용하는 문장을 언급하기도 하고, 끝날 때는 꼭 Please를 붙여 공손함을 표현했다. 직원의 영어는 어느 하나 격식에 어긋나지 않았고, 영어 구사력도 탄탄했다. 순간 발음으로 그녀의 영어를 평가하려던 필자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중국식 악센트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다른 하나는 마카오에서 있던 경험담이다. 마카오 여행 전날 온라인강좌 준비로 밤을 지새워 극심한 피로를 느낀 나는 친어머니와 마카오 호텔 근처 마사지샵에 마사지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공연예약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원래 예약시간을 변경하려던 차, 예약 변경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냐고 묻자 “4 is available”이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받은 마사지샵 직원은 “이용 가능 한”이라는 뜻을 “정확하게 시간이 되냐”라는 식의 문장으로 운용하고 전화상에서 통용되는 여러 가지 단어를 적절하게 배합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아마 필리핀 억양인 것을 보아 필리핀 사람인 것 같았다. 이 역시도 필리핀 악센트를 가진 사람이라고 구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뉴욕에서 친구와 겪었던 일화다. 휴가차 뉴욕에 사는 친구 집에 방문했다. 방문 당일 날씨가 너무 화창해 근처 카페에서 수다를 나누고 있는 도중, 친구의 지인들을 만났다. 친구의 지인 중엔 필자처럼 뉴욕에 놀러 온 뉴페이스도 한 명 있었다.

친구를 포함한 친구의 지인 대부분이 교포여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도중, 뉴페이스가 빠른 속도로 얘기하는데 발음이 너무 이상해서 친구랑 순간 눈이 마주쳤다.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됐나 하는 추측이 일었는데 5분이 지나자 그 추측은 오해임이 밝혀졌다. 그와 대화를 해보니, 그는 정말 세련된 문장과 적절한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알게 됐지만 사실 그는 중·고등학교를 영국으로 유학을 갔고, 아주 완벽하지 않은 영국 발음을 구사하다 보니 미국 발음에 익숙한 우리가 오해를 샀던 것이다.

여기서 앞서 필자 역시 발음이 좋지 않다고 표현했던 부분을 정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의사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특유의 악센트를 가진 사람에게는 “발음이 안 좋다”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액센트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한 국무총리는 특유의 악센트를 가졌지만 화려한 언변으로 유명하다. 그가 구사하는 악센트는 이상한 발음이 아닌 개성으로 존중받는다. 미국에서 이민 중인 필자의 외숙모도 한국인형 영어 발음을 지녔지만, 미국 대형병원에서 친절한 직원으로 자주 뽑히기도 한다. 필자는 그녀의 영어 능력을 그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60대의 미국인들과 견주어볼 때 결코 밀리지 않는 영어 구사력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이상, 다른 나라의 모국어로부터 악센트 전이가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악센트는 나라마다 고유하게 형성되어 있다. 중국인들이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특유의 성조와 중국어적인 요소가 묻어온다. 아랍쪽 사람들이 하는 언어도 약간은 거칠게 느껴진다. 독일인은 독일어처럼, 프랑스인도 불어의 특유 요소가 묻어 나온다. 일본인들 발음은 스타카토처럼 끊어서 발음하고, 남미 출신 사람들은 된소리가 많다.

이러한 영어 발음은 역설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해 연구되기도 한다. 필자의 지인인 한 외국계 선박회사 임직원은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이 영미권보다 중국이나 홍콩·인도와 같은 아시아권이나 중동계열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발음을 연구하는 것이 실무에 도움 된다고 말한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중국쪽과 교류가 많아 아시아권의 사람들의 영어를 들어야 할 때가 더 많다. 그들은 오히려 그런 발음에 친숙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꼭 미국·영국·호주 같은 나라뿐만이 아니라, 내가 상대해야 할 비즈니스상의 영어상대국이 중국이나 인도 혹은 유럽이라면, 그들의 특유의 악센트를 이해하고 더 존중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민족국가 간의 영어는 서로 약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한 목적이 더 중요하다. 글로벌 시대에서 미국 발음은 중요한 발음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영어도 비즈니스에서 보편화 되는 것처럼, 다양한 국가의 서로 다른 영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