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파일(Audiophile). 음향기기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국내 오디오파일 인구만 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호가들의 관심은 최고의 소리를 추구하는 하이엔드 오디오로 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억대를 호가하는 음향기기에도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거기에 담긴 가치를 알아보는 까닭이다. 그 가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좋은 소리’를 향한 브랜드의 장인정신에 비밀이 있다.

 

기술 혁신이 없으면 출시 포기

“나의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가장 잘 재생해내는 오디오입니다.” 유명 첼리스트 요요마가 FM어쿠스틱스 오디오 시스템을 두고 한 말이다. FM어쿠스틱스는 요요마 말고도 많은 아티스트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다. 빌리 조엘, 롤링 스톤즈, 스팅, U2는 물론 피아노 거장 미켈란젤리까지. FM어쿠스틱스의 팬을 자처한 아티스트들이다.

FM어쿠스틱스는 스위스 브랜드다. “한번 소리를 들은 사람은 포로가 돼버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매력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대표작은 ‘FM어쿠스틱스 XS 1 B’다. 브랜드 창립자 마누엘 후버 필생의 역작으로 알려진 스피커다. 100% 핸드메이드 제품으로 가격이 6억2000만원에 달한다.

▲ 출처=FM어쿠스틱스

다른 모델 역시도 주문을 받으면 100%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때문에 주문 후 반 년은 지나야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이 브랜드는 완벽을 향한 강박으로도 유명하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든 프로젝트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기술 혁신이 없을 경우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고수한다.

완제품이 비싸다고 비싼 부품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을 사용하되 엄청나게 까다로운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작은 부품 하나를 결합하고 소리를 들어본 후에 원하던 소리가 나지 않으면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식이다. 납품받은 부품 중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20% 정도밖에 안 된다. 일부 부품은 사용률이 0.2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제품을 완성하는 까닭에 제작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FM어쿠스틱스가 아티스트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라면, 골드문트는 사업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골드문트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다. 이 브랜드 제품은 스위스 명품시계와 같은 감각으로 제작된다. 실제로 롤렉스나 파텍필립 같은 명품시계 브랜드와 같은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된다.

▲ 출처=골드문트

골드문트는 어떻게 최고로 인정받게 됐을까. 미셸 르베르숑 회장의 경영철학도 한몫했다. 그는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반드시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내세운다. 이에 따라 여러 연구기관과 음향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최고의 소리를 찾아나서고 있다. 수학자, 물리학자 등과 협력해 가장 진보된 물질이 뭔지 탐구하고, 어떻게 해야 가장 완벽한 음을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한다.

20여년 연구 끝에 개발한 ‘프로테우스’ 기술이 골드문트 기술력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프로테우스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음, 중음, 저음이 각각 음악을 듣는 사람의 귀에 전달되는 속도에 미세한 차이가 있는 점에 주목한 기술이다. 이런 차이를 보정해 현장음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고문실에서 피어나는 장인정신

골드문트나 FM어쿠스틱스보다는 대중적인 브랜드인 뱅앤올룹슨 역시 장인정신으로는 뒤지지 않는다. ‘고문실(Torture Chamber)’은 뱅앤올룹슨의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개발 중인 제품을 출시에 앞서 고문해 품질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고문실에서는 10년 넘게 써도 고장 나지 않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여러 충돌 테스트가 실시된다. 제품을 10m 넘는 높이에서 떨어트리고, 음료수를 부으며, 직사광선에 노출해 변색 여부를 알아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강인한(?) 제품만이 소비자를 만나게 되니 품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 출처=뱅앤올룹슨
▲ 출처=뱅앤올룹슨

뱅앤올룹슨은 ‘큐브’라는 공간도 운영한다. 12×12×13m의 네모난 음향 측정실이다. 이 공간에서 크레인에 스피커를 장착해 공중에서 음향을 측정한다. 벽에 반사된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이 공간에서 실험한다는 설명이다. 아티스트가 의도한 본래의 사운드를 제대로 구현해내는 게 목표다.

이탈리아 대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소누스파베르 역시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제품 공정이 특히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먼저 바이올린을 만들 때처럼 천연목재를 2년 이상 자연 건조한다. 이를 찌고, 다시 건조해 나뭇결을 골라 조각을 만들어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공정이다.

▲ 출처=소누스파베르
▲ 출처=포칼

‘프랑스의 자존심’ 포칼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생테티엔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장인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낸 케이스다. 세계 최초로 베릴륨을 소재로 인버티드 돔(Inverted Dome)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5옥타브에 달하는 확장된 음역을 구사하는 스피커를 제작했다. 2억원대에 달하는 그랜 유토피아 EM이 그것이다. 베릴륨 소재 돔은 일반 돔 트위터보다 효율성, 정확도, 선형성 등 측면에서 훨씬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엔드 오디오란 비용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오로지 사운드와 품질만을 추구하는 오디오입니다. 무척 작은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하이엔드 분야에서는 당연히 장인정신이 요구됩니다. 아주 작은 디테일의 차이가 결국 사운드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더욱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위해 끊임없이 장인정신으로 도전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각종 특허 기술과 혁신적인 신기술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보급형 오디오와는 시작점부터 다릅니다. 소량으로 생산하며, 핸드메이드 생산을 택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가격이 책정됩니다.” 골드문트·포칼 등을 국내에 수입하는 오디오갤러리 관계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