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라이카

유튜브에서 카메라를 만드는 모습이 담긴 한 동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정성스럽게 손수 카메라를 조립했다. 한 땀 한 땀 빚어내는 손길을 보면 ‘기술자’보다는 ‘장인’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영상 속 카메라는 ‘라이카 M9-P 에르메스 에디션’이다. 독일 라이카 카메라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협력해 선보인 특별 에디션이다.

이는 라이카의 DNA를 잘 보여주는 영상이다. 라이카와 장인정신이라는 가치가 긴밀하게 연결된 까닭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이 브랜드가 제작한 카메라는 유명 사진가들과 함께 역사의 순간을 기록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앙드레 케르테스, 세바스티앙 살가도 등 역사에 남은 사진가들이 라이카를 애용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라이카 카메라가 활약 중이다.

라이카가 오랜 세월 명성을 지킨 이유는 특유의 장인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라이카 렌즈는 장인정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100개가 넘는 부품을 숙련된 라이카 장인이 하나하나 검열하고 조립해 제품을 완성하는 공정을 거친다. 다른 쟁쟁한 카메라 업체들도 라이카처럼 고성능 렌즈를 작게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앞서 언급한 영상에서처럼 라이카 제품은 일부 디지털 카메라 외엔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당연히 생산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제품은 하루에 50대에 불과하다. 100여단계의 생산공정 중 60단계 정도가 검수과정이다. 이렇게 완성된 제품 품질보증서엔 생산 과정 기록과 함께 장인의 사인이 담긴다.

“라이카는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입니다. 카메라 브랜드 중에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장인정신’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브랜드 가치입니다. 라이카가 추구하는 장인정신은 곧 ‘본질에 충실함’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날 시장에선 수많은 제품이 다양한 특징과 특이한 형태로 소비자에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합니다.” 라이카 관계자가 그랬다.

라이카의 장인정신은 사후서비스(A/S)에서도 드러난다. 대개 전자제품 업체들은 출시된 지 오래된 제품 A/S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런 정책은 신제품 수요를 자극하려는 ‘꼼수’ 취급을 받기도 한다. 라이카는 다르다. 창고에 초창기 제품의 부품까지도 완비하고 있다. 부품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수리해준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 출처=라이카

 

단순 작업은 로봇이, 정밀 작업은 슈퍼 마이스터가

라이카 후발주자인 일본 카메라 브랜드들도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뿌리가 다르긴 하다.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 정신과 관련이 깊다.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물건 만들기’란 뜻인데, 속뜻은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일’이란 의미다. 일본 제조업의 혼(魂)이자 자존심이 모노즈쿠리다.

“캐논이 글로벌 카메라 시장에서 13년 동안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모노즈쿠리 정신입니다.” 지난해 방한한 오오시마 신타로 캐논 제2개발센터 부장의 말이다. 캐논은 장인정신을 시스템에 녹여냈다. 공정 내에 ‘슈퍼 마이스터’로 불리는 장인들이 모노즈쿠리 정신을 실현하는 주체다. 이들은 제품 기획단계부터 검수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해 품질을 극대화한다.

캐논은 슈퍼 마이스터와 기계의 역할을 철저히 분리해 효율을 높인다. 제품을 조립하는 단순 작업은 로봇이 맡고, 장인들은 정밀 작업에 참여해 노하우를 쏟아낸다. 더불어 캐논은 장인 육성에도 힘을 쏟는다. 사내 모노즈쿠리 인재육성센터에선 100개 넘는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 출처=라이카

모노즈쿠리 정신 강조는 원천기술 확보와 특허 보유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특허조사 업체 IFI에 따르면 지난해 캐논은 미국에서 IBM과 삼성전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특허를 출원한 회사로 나타났다. 이는 캐논이 글로벌 카메라 시장에서 13년 동안 1위를 유지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캐논처럼 올림푸스도 장인을 전문 육성하는 모노즈쿠리 혁신센터를 운영해왔다. 이를 통해 도제식으로 고급 장인을 육성해 현장에 투입했다. 1919년 현미경 제조회사로 시작한 이 브랜드는 내시경 장비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광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의료기기 부문을 넘어 카메라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조직 개편에 따라 센터 이름을 ‘제조 부문’으로 바꿨다.

▲ 출처=라이카

 

장인정신은 위기보다 강할까

주요 카메라 브랜드들은 대부분 업력이 길다. 100년 넘는 라이카를 비롯해 캐논, 니콘, 후지필름 등도 기본이 50년 이상이다. 긴 세월 장인 문화를 중심으로 최고 화질·품질의 광학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렇게 다진 기술력을 응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그들의 비즈니스 방식이다.

다만 21세기에 들어 산업 위기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카메라 시장이 위축되면서 ‘장신정신’은 시대에 뒤처지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카메라 글로벌 판매량은 2400만대 규모다. 전성기인 2010년(1억2100만대)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실적 감소에 일부 카메라 업체는 인력 감축을 결정하기도 했다.

원인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전으로 요약된다.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 사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전체 판매량 급감으로 이어졌다. 방황하던 카메라 브랜드들은 광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라인업을 강화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캐논 역시도 이른바 ‘디지털 카메라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통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58.2%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본지와 인터뷰한 우도노 신이치로 후지필름 광학전자영상사업부 디지털 카메라 상품기획 및 영업 총괄매니저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것들을 강조한 바 있다. “스포츠사진을 찍는 프로사진가들은 폰으로는 초점거리가 맞지 않고 움직이는 피사체도 쫓을 수 없으니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일반 유저의 경우 아이가 뛰어다니는 걸 폰으로 찍긴 어렵겠죠. 어두운 곳에서도 센서가 작은 폰으로 사진을 찍기는 어려울 거고요.”

아직은 폰카메라가 기존 카메라의 영역을 기술적으로 넘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 바탕에 오랜 세월 축적한 ‘광학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카메라 업계에서 흔히 하는 말인 “중국이 다른 전자제품은 카피캣을 만들어도 카메라는 못 만든다”는 얘기의 근간에도 기술 격차에 따른 자신감이 존재한다.

‘장인정신’이라고 하면 ‘고집’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집을 부리다가 시대 흐름에 도태된 사례도 찾기 어렵지 않다. 코닥이나 폴라로이드 같은 업체가 그렇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존한 카메라 브랜드들은 유연하게 기술을 응용해 사업 분야를 확장하며 성장동력을 찾아나서고 있다.

▲ 출처=니콘

지난해 니콘이 선보인 키미션 시리즈가 그런 사례다. 추세에 맞춰 가상현실(VR) 생태계와 연결되는 360도 카메라 시장에 도전했다. 다른 카메라 브랜드들도 충분한 광학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시장성이 확인되면 언제든 360도 카메라 시장에 도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라이카가 화웨이와 협력해 스마트폰 P 시리즈 카메라를 개발한 사례도 ‘유연한 변화’를 보여주는 케이스다.

분명한 점은 장인정신 자체가 브랜드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카메라 브랜드 앞엔 기술 격차 유지와 유연한 응용이라는 2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