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심리로 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박영수 특검팀은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라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12년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10년을 구형했다. 황성수 전 전무도 7년을 구형받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올해 1월12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했으나 한 차례 구속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추가 압수수색과 재소환 절차를 거쳐 결국 2월17일 오전 5시30분경 구속되고 말았다. 특검은 뇌물 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당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의 영장은 기각됐다.

준비기일을 거쳐 첫 재판은 4월7일 열렸다. 첫 재판인 만큼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됐으나 양쪽은 7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외로 지루한 탐색전만 벌여 눈길을 끌었다. 당시 박상진 사장의 진술조서 공개에만 4시간이 걸리는 등 재판 자체가 늘어지는 분위기를 연출하자 일각에서는 재판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기도 했다.

재판을 할 장소가 부족해 재판기일이 연기되기도 했다.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의 결심공판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재판 등이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에서 밀려드는 취재진과 방청객들로 인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공교롭게도 4월12일 이재용 부회장이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사 엑소르의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처음 공개되었다.

4월 13일로 연기돼 열린 재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삼성의 승마지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된 최순실의 일방적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특검은 삼성의 지원을 의도적 지원이라고 일축하며 양쪽의 공방전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당시 재판부는 주2회 재판으로는 3개월내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3회 재판으로 전환, 일종의 속도전을 선언하기도 했다. 1심은 공소제기일로부터 3개월내 선고해야 하지만 많은 자료와 증인을 감당하기에 주2회 재판은 어렵다는 논리였다.

이후로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4월19일 4차 재판에서 특검은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난 이재용 부회장이 후계구도 완성을 위해 청탁을 했고, 그 결과 정유라에게 지원했다고 주장했으나 변호인단은 “대가를 바란 지원이 아니었다”고 맞섰다.

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는 조직이며 이재용 부회장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는 “승계를 위한 합병”이라는 특검과 “경영상 판단”이라는 변호인단의 공방이 팽팽하게 맞섰다.

4월21일 열렸던 6차 재판에서 특검은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화장품과 옷 등을 구입해 줬다는 사실을 밝히며 삼성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의 연결고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당시 재판부는 5월 공휴일 일정을 고려해 첫째 주 일정을 다소 조절하면서 이재용 부회장 구속 기간이 8월 말 종료되는 만큼 7월 말까지는 결론을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5월2일부터는 첫 증인심문이 시작됐다. ‘폭로자’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코어스포츠 부장이 증인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다만 노승일 전 부장은 "삼성과 코어스포츠가 맺은 승마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에 최순실이 개입해 정유라에 대한 1인 지원으로 변질시켰다"고 주장해 법원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삼성승마단에 소속됐던 최준상 씨도 증인으로 나와 삼성의 지원은 승마 유망주 전체를 위한 것이었으나 후에 최순실이 개입해 정유라 한 명만을 위한 지원으로 바꿨다고 진술했다. 이는 정유라 한 명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의 주장과 맞아 떨어지는 주장이다.

5월10일 11회 재판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재판이라 많은 관심을 모았다. 당시 변호인 측은 안종범 전 수석의 노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자, 특검은 증거능력이 있다며 맞섰다.

당시 재판에는 최순실의 독일 페이퍼컴퍼니 비덱스포츠에서 근무하며 회계를 담당했던 장남수 전 대리 등도 증인으로 나왔다. 하지만 특검이 자신하는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증인들은 모두 최순실이 비선실세인줄 몰랐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5월17일 재판에서 특검은 결론적으로 성사되지 않았으나 처음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5월24일에는 기업지배구조원의 삼성물산 합병반대 보고서를 두고 특검과 변호인단의 공방전이 벌어졌으며 5월26일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삼성의 순환출자 청탁이 없었다는 증언을 했다.

5월31일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가 입국했다. 그리고 6월1일 재판에서는 핵심 진술이 번복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당초 검찰수사 단계에서 ‘최순실이 삼성 지배구조 승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진술했으나 이를 재판에서 번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에 나와 최순실에게 합병이라는 단어 자체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재판이 진행되며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실형을 받으며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특검이 주장하던 강력한 ‘스모킹 건’은 없었다. 특검은 “서서히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으나 여전히 재판은 지루한 공방으로만 흘렀다.

다시 늘어지던 재판은 6월30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변호인단이 마필매매계약 해지 확인서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문건에는 2017년 5월24일 삼성이 독일 말 중개상에 말을 팔기로 한 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이 적혀있었다. 이는 최근까지 삼성이 말을 보유했다는 뜻이며, 이는 최순실에 말 소유권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특검은 “재판 증거로 쓰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7월초 재판의 쟁점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채택 여부였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독대했다는 정황 증거로만 한정해 사실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특검이 제시한 중요 증거의 약효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7월12일 정유라 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재용 부회장이 말 계약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증언, 혼전상을 가열시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7월14일 증인으로 참석,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다면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주목을 받는 듯했지만, 당일 청와대가 박근혜정부 당시 생성된 문건을 기습적으로 공개하며 재판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특검은 청와대에서 발견된 소위 캐비닛 문건을 7월21일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했고 변호인단은 특검의 논리가 정황증거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7월 26일 재판에는 최순실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특검을 믿을 수 없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그리고 8월7일, 161일간 59명의 증인이 다녀간 53차례의 재판이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며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선고일은 25일로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