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시황제(始皇帝)는 영원불멸의 삶을 원했다. 하지만 대륙 각지의 도사와 신선들이 그에게 찾아와 진귀한 약을 바쳤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맹독성 물질로 알려진 수은까지 섭취했으며 서복을 통해 제주도에 있다는 불로불사의 약까지 찾았으나 모두 허탕을 쳤다고. 결국 시황제는 기원전 210년(혹은 209년) 순행 도중 죽었으며 그가 꿈꾸던 영원의 삶은 거대한 무덤으로 남아 사회주의국가를 세운 후손들에게 짭짤한 관광수익을 올려주는 선물로 남았다.

어쩌면 시황제는 세계 최초로 헬스케어 사업을 부흥시켰던 장본인일 수 있다. 그가 영원불멸의 삶을 원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각지의 사기꾼, 협잡꾼들이 모여 듣도 보도 못한 약들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헬스케어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현대적 의미의 시장 생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최초의 황제가 한 순간이지만 인간의 생명연장을 국가의 중요한 아젠다로 셋팅했다는 점은 지금도 많은 호사가들의 입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시황제는 존재여부도 몰랐을 바다 건너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현재 영원불멸의 삶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엄밀한 잣대로 보면 영원불멸보다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위한 노력'이지만, 더 들어가면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위한 솔루션을 팔아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살기위한 노력'이지만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많은 기업들은 시황제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말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흘러나왔다. 영원불멸이라는 신대륙을 찾아나선 21세기 산타마리아 호의 출항에 관련된 이야기다.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큰 그림 보인다
미국의 CNBC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아마존이 사내 비밀조직인 1492팀을 가동해 EMR 플랫폼과 온라인 진료 서비스가 가능한 헬스케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연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마존은 지금까지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헬스케어 인력을 뽑았으며 올해 3월에는 생명과학 회사인 그레일에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거침없이 헬스케어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1492팀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연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아마존은 왜 헬스케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아마존의 기업 정체성이 ICT와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운송과 항만 등 다양한 영역에 거쳐 광범위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특유의 수직계열화 전략을 덧대 설명할 수 있다.

아마존은 비록 실패했으나 파이어폰과 같은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 기기까지 동원해 일종의 가두리 양식장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다. 버튼만 누르면 습관적으로 물품이 주문되는 사물인터넷 기기인 대시와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필요하다면 오프라인 거점을 무차별적으로 인수할 수 있다는 점도 홀푸드 인수를 통해 잘 보여줬다. 당연히 헬스케어 사업 진출도 A부터 Z까지 판매하는 지금까지의 아마존 전략을 고려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행보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계 플레이다. 연계 플레이가 가능해야 생태계를 구성하고 이를 덧대어 대단위 플랫폼을 집어삼키는 수직계열화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떤 그림일까?

KT 경제경영연구소의 디지에코는 '아마존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설의 의미와 전망' 보고서를 통해 에코 쇼(Echo Show)의 존재에 집중했다. 아마존은 올해 5월 7인치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에코 쇼를 공개하고 6월 전격적으로 출시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헬스케어 솔루션을 에코 쇼라는 매개체를 활용, 단숨에 스마트홈 서비스의 일부로 격상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온라인 진료 서비스의 경우 주로 가정내서 이용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상통화가 가능한 에코 쇼가 온라인 진료 서비스용 단말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 에코 쇼. 출처=디지에코

단서는 두 가지다. 먼저 알림 기능. 아마존은 올해 5월 에코에‘Notifications for Alexa'라는 기능을 탑재했다. 인공지능 알렉사가 일종의 알림을 제공하는 스킬이다. 헬스케어 사업에 제격이며 필요한 약을 복용할 시간을 정해주고 이를 환기시켜주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지난해부터 아마존이 시애틀에 있는 드럭 스토어인 바텔(Bartell Drugs)와 제휴를 맺고 아마존 프라임 나우를 통해 비처방약, 화장품 등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실시하는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아마존은 최근 제약사업에 진출하며 거대 의료보험 업체 프리메라 블루 크로스(Premera Blue Cross)의 마크 라이온스를 영입하기도 했다.

알렉사에 추가된 알림기능과 아마존의 제약사업 진출이 헬스케어 사업과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발생할까. 아마존이 미국 온라인 약국인 '필팩(PillPack)'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디지에코는 "필팩은 약복용 시간 및 날짜를 약 포장지에 프린트하고 전용 디스펜서와 함께 제공해 복용을 지원한다"며 "아마존이 필팩과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기업을 인수해 알렉사를 중심에 둔 새로운 헬스케어 시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알렉사가 에코 쇼라는 디스플레이 인공지능 스피커와 만나 '친절한 개인 주치의'가 된다면, 그리고 아마존이 배경 인프라로 필팩과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기존 아마존 경쟁력과의 접점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디지에코는 "온라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환자의 건강상태 파악이 가능하게 되고 해당 데이터를 활용해 환자에게 필요한 가정용 의료기기 추천이나 맞춤형 음식배달 서비스 제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당뇨병 환자에게 에코 쇼를 통한 기본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신규 혈당 측정기를 자동으로 추천한다. 또 당뇨병 극복에 효능이 있는 친환경 음식을 홀푸드 서비스로 연계할 수 있으며 가능하다면 질병에 대한 정확한 콘텐츠를 아마존 플랫폼에서 제공받는다.

디지에코는 이를 "아마존의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은 아직까지 오프라인 중심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에코 쇼를 중심으로 가정을 진료실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정의했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시장을 온라인 중심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 필팩 서비스. 출처=디지에코

열리는 헬스케어 시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글로벌 ICT 기업의 헬스케어 시장 진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칼리코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수명을 50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ICT에서 의미심장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다른 기업 베릴리는 최근 혈당 측정이 가능한 스마트컨택트 렌즈를 공개하기도 했다.

IBM은 인공지능 왓슨을 의료분야에 투입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인공지능 의사인 왓슨 포 온콜로지를 중심으로 마케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애플도 헬스킷과 리서치킷, 케어킷의 삼각편대를 가동해 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모두 기술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왓슨 포 온콜로지의 경우 국내에서 유독 '병원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헬스케어 시장이 의미있는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의학의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있으나 의료비 부담도 그와 비례해 커지고 있어 그 대안으로 헬스케어 시장이 각광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국내만 봐도 인과관계가 뚜렷하다. 생명보험협회와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발표한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 전망치' 보고서를 보면 2010년 65세 이상 노인의 의료비 부담은 13조7847억원이었으나 2015년 21조7342억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2025년 무려 59조9615억원, 2030년에는 91조9021억원으로 기하급수적인 증가세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ICT와 결합한 헬스케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올해 2월 기준 실리콘밸리는 21개 인공지능 기반 헬스케어 기업에 무려 5억3500만달러(약6024억원)를 투자했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헬스케어 시장은 2021년 67억달러(7조54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정치적 이슈도 해결국면이다. 사실 지난해 헬스케어 시장 전반의 체감온도는 겨울이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며 오바마케어 폐지, 약가 규제 등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트럼프 케어에는 약가 인하와 같은 규제가 대부분 포함되지 않았다.

국내도 지난해 9월 한미약품 사태 후 헬스케어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나 최근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그 중심에서 아마존은 특유의 가두리 양식장 전략을 바탕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헬스케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 출처=픽사베이

우리는 가능할까?
아마존의 전략과 헬스케어 시장의 추이를 살핀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았다. '우리는 가능할 것인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전제로 국내 헬스케어 시장의 구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국내 헬스케어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 말이면 만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14%를 돌파하는 초고령 사회가 유력한 상태에서 헬스케어 시장 만개의 필요충분조건은 구비됐다.

하지만 우리의 헬스케어 시장 접근은 상대적으로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 2% 부족하다.

소위 '기본 인프라'가 부족하다. 특히 데이터 볼륨이 얇고 빈약하다. 많은 ICT 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을 일차목표로 삼은 상태에서 국내는 이러한 노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공공 데이터가 일정정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부족하다. 실제로 신수용 경희대학교 교수는 전자정보연구정보센터(EIRIC) 기고를 통해 국내 헬스케어 시장이 활용하고 있는 대부분 건강검진 결과나 보험 청구용 데이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의 실질적인 효능에 의문부호가 달린다는 뜻이다.

국내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헬스케어 시장 진출을 타진하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으나 이 역시 성과가 불투명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올해 4월 보험연구원이 주최한 '제4차 산업혁명과 헬스케어산업 활성화 정책세미나'에서 많은 패널들이 지적한 부분이다. 이들은 국내 헬스케어 시장이 만개하기 위해서 보험업계는 물론 의료업계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법과 규제에 가로막혀 실질적인 소득을 거두기는 어렵다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헬스케어 시장의 규제를 완화하면 의료비 정감과 효율성 개선 등을 노릴 수 있으나 일각에서는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저해와 개인정보 유출 등의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의료 민영화라는 민감한 시한폭탄이 발목을 잡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에코. 출처=픽사베이

활용도를 찾고, 디테일에 집중하라
아마존이 보여주는 헬스케어 솔루션을 국내로 도입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헬스케어 시장의 규제가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으나 이에 수반되는 노력도 부족했고 의지도 없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본적인 의료 데이터까지 부족한 상태에서 에코 쇼라는 디스플레이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한 예리한 방법론은 더욱 요원하다.

결국 헬스케어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유신 서강대학교 교수는 "헬스케어는 4차 산업혁명에 가장 부합되는 신사업"이라며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국내는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최초의 불꽃이 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정제된 의료 데이터 확보와 정교한 규제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차적인 작업이 완료되면 아마존이 그리는 그림처럼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 헬스케어를 하나의 사업에 가두지 말고 다양한 신사업에 덧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에코 쇼를 통해 스마트홈의 영역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방법론으로 묶어내고 홀푸드 서비스를 연결시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아마존의 방식을 국내 헬스케어 시장에 거칠게 대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마존의 방식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마존은 1492년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정신을 통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야망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에게는 불행이었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처참한 재앙으로 볼 수 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우리가 그 행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일까? 기본으로 돌아가 국내 헬스케어 시장을 원점부터 재조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