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들이 일으키는 불치병 테러는 원자탄과 화학무기를 만들어 인간이 저지르는 테러에 비해 훨씬 더 가혹하고 무서운 것이다. 20세기에 사망한 사람들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데이비드 맥칸들리스(David McCandless)의 자료에 의하면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중동전쟁, 기타 각국의 내전들을 포함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굵직한 전쟁들이 발생했던 20세기에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치면 1.31억명으로 전체 사망자 52억명의 2.5%인 반면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16.8억명으로 전체의 32.26%를 차지하고 있다. 전염병을 막기 위한 국제적 공조는 인류의 생명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일 뿐이다.

세계보건안보구상(Global Health Security Initiative, 이하 GHSI)은 G7국들이 중심이 되어 멕시코와 유럽집행위원회(EC)가 회원국으로 참여한 기구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기술자문기구로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은 화학적, 생물학적, 방사선 및 핵 위협으로부터 인류의 공중 보건을 지키자는 취지로 발족되었다. 최근 개최된 룩셈부르크 회의(2017. 6)에서 다룬 주제들을 살펴보면 국제보건안전 및 국제사회의 건강규정; 테러공격에 대한 준비성과 대응; 항생제 내성(Antimicrobial Resistance, 이하 AMR); 바이러스 백신개발; 백신공동조달 등으로 주제가 광범위하다. 이 중에서도 중점적인 의제로 삼은 것은 AMR 문제이다.

 

국가 간 비교 가능한 항생제 내성 통계가 필요하다

2015년 제68차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선 AMR에 대한 글로벌 행동계획으로 국제항생제내성감시체계(The Global Antimicrobial Resistance Surveillance System, 이하 GLASS)를 채택했다.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AMR 자료를 수집·분석·공유해 국가 간 비교 가능한 항생제 내성 통계를 산출하는 행동 요령이다. AMR은 항균제(항생제,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항말라리아제, 구충제 등)에 자주 노출되면 미생물(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및 기생충)이 항균제의 작용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유전적 변형을 일으키므로 발생한 결과이다. AMR 미생물은 사람, 동물, 음식 및 환경(물, 토양, 공기)에서도 발견된다. 사람과 동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된다. 감염 통제가 불충분하거나 위생조건이나 식품 취급이 부적절하면 AMR이 확산된다. AMR을 나타내는 미생물을 슈퍼 박테리아(Superbugs)라고 부른다. AMR은 항생제를 무력화하고 전염성 질병을 확산되는 문제를 일으킨다.

전 세계가 AMR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질병을 고칠 수 있는 항생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결핵을 비롯해 콜레라, 흑사병, 폐렴, 라임병, 장티푸스, 플라미디아, 한센 등 역사적으로 악명 높던 세균성 질환들도 모두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변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식중독 발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5년간 병원성 대장균으로 인한 식중독 환자는 1091명에 달해 다른 균에 의한 식중독 환자보다 월등히 많다. 질병관리본부가 병원체를 수집해 검사한 결과, 대장균 치료에 흔히 쓰이는 항생제인 시프로플록사신과 세포타짐이 각각 43.9%, 32.1%의 확률로 내성을 보였다. 10명 중 3~4명은 이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앞으로 식중독 치료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항생제에 대한 병원성 대장균의 내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항생제 효과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목구멍엔 수십억 개의 박테리아가 있는데 대부분 무해한 것들이다. 인체가 감기(귀 감염, 인후통 또는 다른 질병의 경우) 등을 이유로 항생제를 복용할 때마다 목구멍의 자연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에 노출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테리아는 약물에 대한 저항력이 생길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구강 또는 항문 섹스, 섹스 장난감 사용으로 인해 구강 임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구강 속의 보통 박테리아의 세포질 DNA인 플라시미드(Plasmid)가 가까운 구역 내에 들어 온 임질 병원균 속으로 옮겨 갈 수 있다. 만약 문제의 플라스미드가 약물 내성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것을 얻는 임질 박테리아도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다. WHO는 치료가 안 되는 임질균이 최근에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확실한 치료효과를 보였던 항생제들이 치료되지 않고 있다. 임질은 클라미디아 성병 다음으로 가장 흔한 성병으로 전 세계적으로 매년 7800만명의 사람들이 이 질병에 걸린다고 WHO는 추산하고 있다. 최근 77개국의 사례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1차 항생제의 치료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임질은 질병에 걸려도 자각 증세가 없어서 질병을 방치하기 쉽다. 그런데 임질은 여성에게 수막염과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성병이다. 임산부가 실명할 위험도 있다. 더욱이 임질 병원균은 항상 항생제보다 한 발 앞서 진화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호주에서 발견된 1000여종의 슈퍼박테리아 중 60% 이상이 변종 임질균이었다고 한다. WHO는 임질 감염과 관련해서 빠르고 정확한 진단법과 함께 새로운 항생제가 시급히 개발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임질 예방백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소극적이다. 만성질환치료제와 달리 단기간에 약효가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약을 개발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WH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영리 연구 개발기구인 GARDP(Global Antibiotic Research and Development Partnership)를 구성했다. GARDP의 임무는 새로운 항생제 치료제를 개발하고 적절한 사용을 촉진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약효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GARDP의 우선 과제는 임질에 대한 새로운 항생제 치료법 개발이다.

 

영국 정부의 분석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박테리아 감염, 말라리아, HIV/에이즈 또는 결핵과 같은 질병으로 매년 약 70만명이 약물 내성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2050년경이 되면 매년 치료가 안 되는 감염병으로 1000만명이 사망하게 된다고 전망한다. 이는 현재 각종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와 비슷하다. 세계은행은 AMR로 인해 발생할 경제적 손실액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AMR의 해결책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병원균도 새로운 약물에 대항해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며 농·축산업에서도 항생제 사용도 절제해야만 한다.

 

AMR 대책은 인류생존전략이다

지난 5월에 베를린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선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성장하려면 “탄력성 구축, 지속 가능성 개선 및 책임 이행”이라는 세 가지 축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함께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들의 하나로 ‘유행병 관리 및 항균제 저항성(AMR)에 역점을 둔 건강문제 해결’을 포함하고 있다. AMR의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비용 상승 및 사망자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정상회의와 함께 개최된 G20 보건장관회의에선 AMR 대책을 최상위 의제로 채택했다. 인류가 미래에도 번영과 지속가능한 성과를 얻기 위해선 인류건강을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번영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AMR 해결은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고 모든 국가의 역량을 함께 모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일의 건강을 위해 오늘을 함께 한다(Together Today for a Healthy Tomorrow)”라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에선 AMR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위협이자 도전이며, 대중의 건강은 물론 세계 경제의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줄 가능성이 있다고 서술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결핵을 포함해 치료 불가능한 감염병이 늘어나며 일반적인 수술은 물론 장기 이식이나 암 화학 요법과 같은 복잡한 치료가 더욱 어려워지거나 위험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AMR에 대한 인식을 최고 정치 수준으로 높이고, FAO, OIE와 공동으로 준비한 WHO ‘세계 행동 계획(Global Action Plan)’을 이행할 것을 재확인했다. 또한 2015년 5월 세계 보건 총회에서 합의한 GLASS 계획도 다시 확인했다. 또한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WHO, FAO 및 OIE와 함께 AMR과 싸우는 강력한 리더십을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유엔기구 및 기타 국제기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AMR과 싸워 나가기로 했다. 현재 194개 WHO 회원국 중 약 3분의 1이 AMR에 관한 국가 행동 계획을 갖고 있는 바 이는 WHO ‘세계 행동 계획’에 따라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2018년까지 각국의 계획을 성실히 수행하며 모범사레들을 공유해 서로 돕기로 했다. 또한 WHO GLASS에 중·저 소득국가들을 참여시켜 AMR 감시능력을 높이자고 결의했다.

이런 G20정상회의 및 보건장관들의 선언문은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버금갈 정도의 인류공동 노력이며 ‘포스트 항생제’ 시대가 인류역사에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모두의 절실한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