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성(盛)한 이 계절,

공교롭게 호스피스 관련, 책도 읽고, 사진전도 다녀왔습니다.

혹시 호스피스 채플런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호스피스에서 죽음을 마주한 분들에게

정서적 위안으로 도움을 주는 분들을 말합니다. 영적 간호라 할까요?

미국에서 이런 채플런 활동을 하는 케리 이건의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이란 책입니다.

초기에 병원서 채플런 활동을 하며,

대학원서 공부를 할 때 교수로부터 위압적인 질문을 받습니다.

마지막을 맞는 그분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고?

신에 대해, 종교에 대해, 인생의 의미 같은 얘기를 나누느냐고?

이에 그렇지 않고, 대부분 가족에 관해 얘기를 한다고 하자

‘허’하는 탄식과 함께,

만약 자기가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면 가족 얘기나 하는

채플런과는 만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수치심을 안깁니다.

그 이후 채플런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그녀의 대답이 바뀌었을까요?

당연히 아니었지요.

‘아이들을 낳고, 작은 몸을 씻겨주고, 무릎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아이들이 친구와 다투고 속상해하면 함께 울었고, 처음으로 홈런을 쳤을 때나,

합창단에서 목소리를 높였을 때는 당신의 심장도 뛰었다‘

이렇듯 가족 간의 다한 사랑, 못 다한 사랑, 추억을 무엇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있는 것은 아름답다’

그 시기에 시내에서 본 사진전의 제목입니다.

미국 사진작가 앤드류 조지가 LA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선 시한부 환자 20명의 초상을 찍어 전시한 것입니다.

그들이 죽음과 마주해 소중하게 얘기한 것은 뭐였을까요?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일요 ’

‘어렸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인생은 기뻐하며 즐길 일이 가득한데도, 우리는 참 즐기지 못한 것 같아요’

소박하기만 합니다.

작가는 덧붙입니다.

그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좀 더 사랑을 느끼고 싶어 했다고.

전시장을 나와 뜨거운 한낮의 포도에 서 있는데,

그분들 한분 한분의 선한 눈매가 선연히 떠올랐습니다.

다들 가까이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안 분들의 눈매였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