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면 카페 ‘할리스’와 ‘카페베네’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직접 맛본 적은 없더라도 지나가면서 간판이라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뉴스 중 하나는 그 창업자인 강훈 대표의 자살 소식이었다.

그는 국제적인 커피 회사인 ‘스타벅스’의 국내 론칭 멤버로 커피와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우리나라 브랜드인 ‘할리스’와 ‘카페베네’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명성을 얻었다. 2010년엔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KH컴퍼니를 세우고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노린 ‘망고식스’를 내놓았다. 국내 시장을 건너 해외시장을 공략하기에 이른 것이다.

망고식스는 그의 야심대로 초반에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전 끝에 최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성공의 질주를 하던 인물이 단 한 번의 실패 앞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의 자살 소식에 필자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헛헛한 감정이 일어나왔다. 가끔 그의 성공 수기를 책이나 동영상을 통해서 성공을 향해 가는 에너지를 수혈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의 복잡한 감정은 동시에 필자 또한 기업회생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기업회생이라는 굴레에 들어가게 될 때의 그 참담함.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조롱어린 사람들의 손가락질. 무엇보다도 “내가 이러려고 밤을 새워가면서 일한 것이 아닌데…”라는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을 것이다. 수백 명의 프랜차이즈 회원들에게서는 또 얼마나 많은 원망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깊이 상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당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원룸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낮에는 채권자들에게 갖은 욕설을 듣고 원룸에 홀로 들어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쓸쓸한 자기 비하의 목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인생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올라왔을까. 과거에 이루었던 성공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는 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순간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서리쳤을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그런 불멸의 밤들을 보냈기에 누구보다 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순간까지, 그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불안감과 후회와 현재를 잊고 싶은 복합적인 마음들을 나눌 누군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에게 따스한 시집 한 권을 건넸으면 어땠을까. 당장 변제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집 한 권이 잠자리에 들기 전, 그의 꿈자리를 지켜줄 하나의 따스한 등불이 되지는 않았을까.

집에 들어오는 순간, 낮에 있었던 모든 시름을 다 잊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그만의 세계를 한 권의 책을 통해 전달받았다면 어땠을까. 그에게는 잠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만의 세계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필자의 경우에는 기업회생의 시기에 문학 작품과 클래식 음악을 통해 감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더 걱정만 커지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문학 작품들에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그 바쁜 와중에 책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33건의 민·형사 사건이 기업회생의 와중에 벌어졌으니까. 필자는 법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이동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채권자를 만나러 가는 대기실 안에서 수많은 문학작품과 아름다운 글귀들을 만났다. 그들은 필자에게 결코 ‘성공’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말라’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결국 필자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어주었다. 토닥토닥 필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이해인 수녀의 따스한 시 구절이, 윤동주 시인의 가슴 시린 별빛이, 그리고 카프카의 고독이 필자와 함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힘을 주었다.

긴 기업회생의 기간, 가끔은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주위로부터 몸과 마음이 너무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싶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전문 상담사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약 처방을 받아 즉각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때로는 눈물 나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는 것, 친구를 만나 옆 사람이 쳐다볼 정도로 깔깔대며 웃는 것도 현실을 견디는 한 방법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절대로 자기 자신을 매몰시키지 말고 자신을 지켜내는 의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지금, 혹시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해인 수녀의 다음의 시를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살은 본인의 몫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살하면 그 몫은 온전히 남아 있는 자의 몫이 된다. 꼭 힘내라, 지금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능력 있고, 우리나라 토종 커피를 위해 노력했던 강훈 대표를 생각하며 이 시를 함께 읽어본다.

 

<자살한 독자 진에게>

- 이해인

눈부시게 햇빛 쏟아지는 날에는

늘 네 생각이 난다

 

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네 언니가

나에게 알려주었을 때

 

땅은 어둡고

하늘이 노랬다

 

나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하지 그랬니

조금만 더 햇빛을 그리워하지 그랬니

 

고운 꽃 나에게 사오지 말고

네가 나에게 꽃이 되지 그랬니

향기 초를 나에게 사오지 말고

네가 타오르는 촛불이 되지 그랬니

 

할 말이 그리 많았던 네게

시간을 충분히 내주지 못해

미안한 내 마음

 

이제는 네 무덤에 가서

떨쳐야겠구나

아직도 못다 피운 꿈이 많았던

서른세 살의 너에게 내가 할 말은

무겁고 아픈 침묵밖엔 없구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중

(주)아이메디신 이사. 금수저로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닥쳐온 가족 기업의 부도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일과 생활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칼럼 <낭만적 기업회생 이야기>는 경영일선에서 만난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문학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그의 행보이다. 저서로 <파산수업>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 있다. j.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