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뱅크가 출범하며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 투톱체제가 완성됐습니다. 모두가 ‘인터넷 전문은행 홀릭’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역사가 20년을 넘긴 외국의 상황을 보면 마냥 장밋빛 미래만 펼쳐진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1995년 출범한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인 미국의 Security First Network Bank(SFNB)는 2001년 8월 캐나다의 RBC 은행에 합병됐습니다.  한때 37개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동하던 미국은 현재 24개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인터넷 전문은행이라고 해도 기존 은행과의 지나친 마케팅 출혈경쟁과 차별성 강조에 실패하면 문 닫는 겁니다. 심지어 우리는 은산분리 규제라는 심각한 리스크가 더해져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시선을 비틀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적 관점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의 비전과 가치를 살펴보는 것과 별개로 현재의 제반상황을 꼼꼼하게 점검하자는 뜻입니다. 여기서 매우 재미있는 단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올해 초 카카오에서 분사된 카카오페이는 알리바바의 금융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로부터 약 2300억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카카오페이 입장에서는 글로벌 진출에 도움이 되기도 하며, 알리페이의 강력한 결제 인프라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등 분명한 호재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카카오와 카카오뱅크에는 텐센트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실제로 전자공시에 나온 카카오 지분구성을 보면 김범수 의장이 18.44%, 케이큐브홀딩스가 14.61%, 로엔 인수를 기점으로 합류한 스타 인베스트먼트가 8.16%의 지분을 가진 가운데 텐센트도 무려 8.28%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에도 텐센트가 참여했습니다. 컨소시엄 당시부터 카카오뱅크에 참여한 텐센트는 현재 카카오뱅크의 지분 4%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카카오페이에는 알리바바가, 카카오와 카카오뱅크에는 텐센트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의 협업을 향후 ‘카카오 핀테크 플랫폼’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O2O 의 투톱이 마치 짠 것처럼 카카오페이와 카카오-카카오뱅크에 손을 뻗친 장면은 상당히 극적입니다. 참고로 케이뱅크에는 알리바바의 앤트파이낸셜이 주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정확한 지분율은 공개하고 있지 않아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일단 우려가 나옵니다. 알리바바가 도사리고 있는 카카오페이와 텐센트의 그림자가 짙은 카카오뱅크, 카카오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아 사업적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주장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현지에서 생활전반의 O2O 전략을 두고 충돌하는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한국에서 대리전쟁을 벌여 의미없는 출혈경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역시 ‘테스트 베드 역할론’입니다. 텐센트가 카카오 초기 투자를 단행해 2대주주로 올라선 이유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카카오가 보여주는 O2O 전반의 생태계 전략을 빠르게 체화하고 텐센트 스스로의 미래 시나리오를 짜기 위함입니다. 알리바바의 카카오페이 투자는 물론 케이뱅크 주주진입도 비슷한 이유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가 다소 변하기는 했습니다. 텐센트가 카카오에 투자를 단행할 당시만 해도 중국의 ICT 기술력은 한국과 비교해 분명 투박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카카오를 통해 배우고자는 의미가 강했다는 후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이제는 굳이 한국에서 배우자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가동하고 있는 사업의 축소판을 한국에서 가동해 미래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 말하는 카카오 패밀리의 중국 주주 리스크에 대한 논의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 알리페이. 출처=앤트파이낸셜

생각해보니 기분 나쁘네...하지만

중국 ICT 기업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현재의 입지를 다졌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의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조업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벤치마킹하며 하청업을 전전하다가 기어이 기술력을 키워 추월한 역사가 생각납니다. 달빛관광을 불사하기도 하며 카피캣이라는 비판까지 받았으나 천신만고 끝에 전자왕국을 세운 현재도 오버랩됩니다.

최근 중국 방송사들이 한국의 유명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카피하는 도둑질을 벌이고 있으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언젠가 ‘점프업’을 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ICT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이렇게 성장했으며, 이제 우리를 뛰어 넘어 한국을 게임 ‘심시티’로 만들어 버리는 여유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냉정한 게임의 정글에서 말랑말랑한 생각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장하면 됩니다.

▲ 송지호 센터장. 출처=카카오

지난 2015년 카카오는 인도네시아 3대 SNS 중 하나인 패스 모바일을 인수했습니다. 다만 수장을 맡고있던 송지호 대표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공동체성장센터장을 맡는 장면이 묘합니다.

카카오의 전열 재정비적 측면이 강하지만 일각에서는 패스 모바일이 생각보다 현지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카카오는 느리지만 차근차근 글로벌 전략을 구사한 곳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ICT 신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렇게,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됩니다. 카카오의 미래에 마냥 찬사를 보내지는 않지만, 최소한 카카오가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보고 뭔가를 배운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