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농촌봉사활동을 매년 갔다. 1-2학년때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로, 학생들 농촌 봉사활동에도 정부는 매우 민감해 했다. 전세버스로 갔는데, 학교에서 출발부터 전경이 진을 쳤다. 가다가 시골장터 같은 곳에 멈춰 집회라도 벌일까 봐 그런 곳은 어김없이 막고 있었다. 제대 후에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로 사회적 분위기는 그 전과 많이 달랐다. 막지 않으니 뚫으려 대립하지 않았고, 별다른 사고나 문제 없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봉사했던 기억이 새롭다.

네 번의 봉사활동 중 기억에 남는 시골 아주머니 한 분이 있다. 사실 그 아주머니의 독특한 소통이다. 봉사활동은 대개 마을 이장과 상의해서 논, 밭, 집안 일 가리지 않고 학생들이 조를 짜서 집집마다 방문해 도움을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 날은 1학년 때 봉사활동의 둘째 날이었다. 창고에 쌓여있는 양파를 팔 수 있도록 다듬고 그물망에 넣어 정리하는 일이었다. 7월의 더운 날씨에 바람도 잘 통하지 않고, 어두컴컴하면서 먼지 날리는 광에 쭈그리고 앉아서 해야 했다.

 

참 ‘거시기 하고 거석' 한데도 다 통해

아침부터 시작했는데 양파 무더기는 줄어들 기미도 없고, 다듬어서 자루에 담고 쌓기를 반복하니 온통 땀 범벅이었다. 젖은 살갗에 양파 뿌리며 껍질에 흙 먼지까지 달라붙어 엉망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미안해 하면서도 일감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주머니 혼자 들 일, 집안 일 에 수확한 양파 포장까지 했는데, 상하기 쉬운 양파는 적잖은 걱정거리였다고 했다.

묘하게도 아주머니가 구사하는 말은 문장의 거의 모든 것이 ‘거시기’의 경상도식 줄임 말인 ‘거석’뿐이었다.

“여기가 참 거석한 곳이어서, 일하기 거석할텐데….”

“올 양파 농사가 거석해서 내가 거석해요”

오전 일 대충 마치고 점심은 숙소에서 라면으로 때울 생각에 시간아 어서 가라 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점심 상을 차려냈다. 열무김치에 풋고추, 양파절임이 다였는데, 허기진 터라 갓 지은 밥 냄새만으로도 회가 동했다. 밥을 먹는 동안 옆에서 아주머니가 계속 말을 걸었다.

“에이구, 찬이 참 거석해서 맴이 거석해요.”

“밥이 거석해도 많으니까 거석들 해요”

서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를 도통 알아듣기 힘들겠지만, 경상도가 고향인 나와 선배들은 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희한하게도 동사와 형용사 부사어 같은 용언은 죄다 ‘거석’으로 표현 하는데도 듣는 우리는 다 이해됐다. 심지어 어떤 말은 거석이 전부일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참, 거석이 거석해서 거석하네요’ 같은 말이었다.

예전에 본 황산벌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화려한 전쟁신이 아니라 백제군이 사용한 전라도 말 중에서 ‘거시기’에 대해 경상도 사람인 신라군이 해독 불가로 난처해 하는 대목이다.

“거시기를 거시기 하니까 거시기 혀 불자”

신라 첩자가 입수한 정보인데 도무지 해독 불가였다. 대신 경상도 사람은 ‘가가가가가’만 해도 대여섯 가지 표현이 가능하다. 띄어 말하기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데, 이 또한 서울을 비롯해 다른 지역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 불가다.

커뮤니케이션 핵심이 여기에 있지 싶다. 한 지역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거시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더라도 다 통했다. 옆에서 대화를 들으면 내내 거시기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거시기라는 것이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 가리지 않고 다 사용 되는데 한 문장에서 앞에 나온 거시기와 뒤에 나온 거시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껏 첩자가 중요한 군사 정보를 듣고 오긴 했는데,  ‘거시기’로 채워져 있으니 자동적으로 해독 불가의 암호가 되어 버린다는 코미디였다.

조직 내부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허구한날 생긴다. 회사에서 ‘거석’이나 ‘거시기’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된다. 한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이해한 정도가 다르고 파악한 내용이 다르다. 함께 들었는데 누구는 이쪽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저쪽이라 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만 딱 떼놓고 보면 말을 잘 하고 잘 듣는 문제 같지만 사실은 관계의 문제다. 또 주변 상황이나 배경과 어우러진 문제다. 어떤 조직은 그냥 ‘그거’ 정도로만 표현해도 다 알아듣고 동일하게 움직인다. 수십년을 함께 한 마을 사람들이 거석과 거시기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알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어떤 조직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까지 얘기해도 제 각각 움직이는 일이 허다하다.

조직의 강점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 개떡같이 이야기 하는데 찰떡같이 알아 들을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형제지간이나 죽마고우를 생각해 보면, 서로 생각이 비슷할 경우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통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조직 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그렇지 못한 조직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본적인 가치관이 달라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면 조직의 가치관이 형성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서로 생각하는 척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정확한 지시를 손에 쥐어 줘도 준 사람 받은 사람이 다르고, 일에 대한 무게감이 다르다.

‘완벽(完璧)’이라는 고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귀한 옥돌을 캐어 왕에게 진상했지만,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왕의 짧은 안목 탓에 오히려 다리가 절단되는 천형을 받는다. 초나라 여왕(厲王), 무왕(武王)에게 그 가치를 전혀 인정 받지 못한 변화(卞和)의 옥돌은 문왕(文王)이 겨우 알아봤다.  후에 진나라 소양왕은 이 옥구슬을 성 15개와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을 정도로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가치를 모르는 이에게는 한낱 돌멩이에 불과했다.

특히, 정보는 가치를 제대로 알 경우 효과가 증폭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이상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언론사도 변화가 많다. 먼저 안다고 기업경영에 엄청난 도움이 될까 싶지만, 정보에 발 빠르다는 것은 관심의 척도요 커뮤니케이터 실력의 가늠이다.

지난 2011년 모 경제언론사가 유력 온라인 매체 하나를 인수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대표끼리 만났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기업간 인수 합병은 베개를 같이 쓰는 사람에게도 비밀로 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보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 보고받은 임원은 그 자리에서 그 언론사 고위직에 있는 친구에게 확인전화를 했다. 대답은 ‘그런 사실 없다’였다. 엉터리라고 면박만 받았다. 이주 정도 뒤에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조심스레 보고하며 ‘확인하시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선수를 쳤다. 그런데 또 확인 전화를 했고 역시나 저쪽에서는 잡아 땠다.

‘정보 가치를 모른다. 보고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이후 아무리 발 빠르게 정보를 입수해도 보고하지 않았다. 뒷집 호박이 떨어진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떨어지기 전에 미리 알고 다음을 생각하는 것과 떨어지고 난 뒤에야 호박이었구나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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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둘러 표현해도 통할 사람들은 다 통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2. 개떡 같이 말하는 데 찰떡처럼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3. 아무리 중요한 정보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자에겐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