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이 탄력을 받고있는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통신사의 저항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조건'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정부도 일정정도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국정위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 발표 후 위원들이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25% 약정할인율 인상, 65세 이상 1만1000원 할인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세우며 기본료 폐지를 제시했으나 이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거치며 사회적 합의기구 조성을 전제로 하는 중장기 정책으로 결정났다. 국정위에 참여한 최민희 전 의원은 기본료 폐지를 중장기 정책으로 설정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업계에서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려났다고 본다.

그 대안으로 부상한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의 핵심은 25% 약정할인율 인상과 기초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이용자에게 월 1만1000원의 요금을 할인해주는 방안이다. 가계통신비 인하를 둘러싸고 양쪽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상황에서 나름 '전선의 조정'이 이뤄진 셈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이용자에게 월 1만1000원의 요금을 감면해주는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과 고시 개정안 초안을 서면으로 유영민 장관에게 보고했으며, 입법과 행정예고는 8월초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5% 약정할인율 인상은 벌써 의견수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통신3사에 관련 의견서를 보내 다음달 9일까지 답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는 25% 약정할인율 인상, 65세 이상 1만1000원 할인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약정할인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 라인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무조건 반대하는 통신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충분히 가능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공개된 통신3사의 준수한 실적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올해 2분기 SK텔레콤은 영업이익 4233억원, 매출 4조3456억원을 기록했으며 KT는 영업이익 4473억원, 매출 5조8425억원을 기록했다. LG유플러스도 영업이익 2080억원, 매출 3조97억원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이후 각 통신사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가계통신비 인하 당위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통신3사는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큰 그림에는 동의하나 강압적인 방식은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유영상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실적발표 당시 컨퍼런스콜을 통해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은 사업자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으며 신광석 KT 재무최고책임자도 "통신사의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투자를 비롯해 5G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에) 근본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혁주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도 "투자 및 기술개발 여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통신비 인하 이슈가 일종의 배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통신사 관계자는 "약정할인을 비롯해 보편적 요금제 도입 등은 법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투자 위축과 실적 저조 현상은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며 "통신사가 정부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CEO가 주주들에게 배임 혐의로 피소당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우려했다.

진통은 계속...정부 역할론 '솔솔'
유영민 장관이 통신3사 CEO를 연이어 만나며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을 설명했으나 소위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통신사들이 특히 반발하고 있는 약정할인율 25% 인상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통을 겪고있다.

통신3사는 "약정할인율 25% 인상을 비롯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은 법의 효력을 확대해석하는 등 위법의 소지가 있다"며 "현재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통신사에 가계통신비 인하의 짐을 홀로 지우지 않고 일종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영상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컨퍼런스콜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가계통신비 인하를 고민하겠지만 사업자의 수익성 악화에 따른 정부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신광석 KT 재무최고책임자는 "정부도 역할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혁주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는 정부는 물론 통신사와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사업자도 함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통신사들이 주파수 할당대가와 전파 사용료를 모두 납부하는 상황에서 '통신산업 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두고 고민할 수 있는 여력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현재 SK텔레콤은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를 필두로 삼아 자율주행차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KT는 5G에 집중해 금융과 빅데이터, 나아가 초연결 ICT 플랫폼 사업 전반에 역량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또 LG유플러스는 스마트홈 상품을 선봉으로 삼아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중이다. '탈 통신' 기조를 위해 통신사들이 노력하는 상황에서 당장의 여유를 이유로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면 곤란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경현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소장은 "가계통신비 인하의 핵심은 통신사가 요금 인하의 여력이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정부가 확실한 데이터로써 통신사의 가계통신비 인하 당위성을 설명하고 통신사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