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27일 출범했다. 반응은 뜨겁다. 출범 32시간만에 신규 계좌개설수가 47만건을 돌파하며 지난해 시중은행에서 개설된 계좌수의 3배를 단숨에 달성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계좌를 만들기 위해 접속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으며 서버는 버벅거리고 있다. 계좌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SNS에 모바일 화면을 캡쳐하며 카카오뱅크를 찬양하고 있으며, 세상은 단숨에 인터넷전문은행의 시대로 접어들 것 같은 분위기다.

업계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뜨거운 열기의 단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당장 시중은행이 긴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강점 중 하나인 해외송금수수료 인하와 대출한도를 의식해 비슷한 조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모바일 은행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던 이들도 카카오뱅크의 인기에 놀라고 있으며 신한은행처럼 관련 인프라를 비교적 잘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곳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 카카오뱅크 출범식.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이 고민해야 할 것
카카오뱅크 초반돌풍의 배경으로는 인터넷전문은행 특유의 낮은 수수료, 진입장벽이 낮은 대출상품 등의 경쟁력이 꼽히고 있다. 나아가 카카오톡 자체가 가진 모바일 메신저 플랫폼의 능력과 브랜드 효과, 직관적이고 편리한 사용자 경험도 거론된다. 추후 카카오뱅크는 ICT 기술력을 접목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중금리 대출심사는 물론 다양한 파생상품 출시도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카카오뱅크 출시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도 아직 '축포를 쏘기는 이르다'는 말도 나온다.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것도 좋지만 순간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중요한 지점을 놓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일단 인터넷전문은행 자체의 강점이다. 케이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출현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단숨에 기존 은행업계의 뿌리를 송두리빼 뽑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기존 은행업계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예상하지 못한 영향력에 놀라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기적 관점으로 보면 양쪽의 차이는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당장 인터넷전문은행을 시작한 외국의 사례를 봐도 답이 나온다.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95년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인 미국의 Security First Network Bank(SFNB)가 출범했으나 SFNB 때문에 문을 닫은 은행은 없다고 단언한다. 현재 세계 금융업계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의 점유율은 5%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는 처음이지만 등장한 지 20년이 넘은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은행업계를 파괴하고 시장을 재편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전무하다는 뜻이다.

미국만 봐도 한때 37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활동했으나 지금은 무려 13개나 파산하거나 기존 은행에 인수되기도 했다. 참고로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인 SFNB는 2001년 8월 캐나다의 RBC 은행에 합병되는 비운을 겪었다.

인터넷전문은행 투톱체제로 접어든 한국의 특수한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가장 큰 리스크는 역시 은산분리 규제다. 은산분리 규제가 묶여있는 상태에서 케이뱅크의 KT와 카카오뱅크의 카카오는 추가 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당국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골자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정된 사항은 아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금압박으로 돌아와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심지어 은산분리 규제 완화로 정책적 가닥이 잡혀도 전격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말도 나온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기업이 사적도구로 유용될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된 상태에서 은산분리 규제가 전격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올해 2월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전해철 의원실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문제 진단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산업자본 비율을 34% 선에로 보장하는 방안을 고려하며 변화의 징조를 보였으나, 해당 토론회에서는 '그래도 위험하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에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한시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봤기 때문에 KT와 카카오가 전사적으로 나선 것 아니겠나"며 "이런 분위기가 최순실 사태로 180도 돌변했으며, 특히 야당(현재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발작적으로 경계하는 원인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4월 케이뱅크 출범식에서도 잘 드러났다. 출범식에서 황창규 KT 회장은 현장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의식한 듯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은산분리 규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나아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모두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지만, 당장의 증자는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는 평가다. 낮은 수수료와 편리한 사용자 경험만으로는 기존 은행업계와 출혈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체력이 약한 인터넷전문은행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업계에 팽배하다.

카카오뱅크는 출범식 당일 "카카오뱅크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플리케이션"이라며 "얼마 전부터 은행들이 많은 상품 개편을 이루는 걸 보니 카카오뱅크를 경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카카오뱅크는 시중 은행의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나름의 선을 긋기도 했다.

▲ 카카오뱅크 전용 체크카드. 출처=카카오뱅크

기존은행이 고민해야 할 것
인터넷전문은행이 많은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지만, 기존 은행업계도 방심하면 곤란하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소위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을 표방하며 지능적인 전략을 추구할 경우 의외의 한방을 맞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먼저 케이뱅크다. 현재 많은 언론에서 카카오뱅크의 초반돌풍에 주목하며 케이뱅크의 능력을 다소 낮게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으나, 사실 케이뱅크의 비전도 만만하지 않다. 통신사 KT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업체들과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한편 비대면, 온라인 점포의 강점은 물론 탁월한 플랫폼적 접근이 눈길을 끈다.

케이뱅크는 출범식 당일 '카우치뱅크'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은행의 상식을 깨다'는 슬로건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는 카우치뱅크는 말 그대로 쇼파에 앉아 논스톱으로 은행업을 볼 수 있는 개념을 뜻한다. 이는 KT의 플랫폼 노하우가 기본으로 전제된 상태에서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 음성인식 솔루션과 지니뮤직은 물론 IPTV의 경쟁력을 하나로 묶겠다는 야심찬 전략이다. 성공만 하면 단숨에 스마트홈이라는 큰 그림을 차지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이러한 전략을 짤 수 있었던 배경에는 KT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인공지능 플랫폼 전략, 다양한 콘텐츠 경쟁력이 존재하기에 가능했다. 핀테크를 자연스럽게 스마트홈의 경지로 격상시키겠다는 케이뱅크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 케이뱅크 출범식.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카카오뱅크는 기본적인 강점은 물론 카카오톡이라는 무소불위의 모바일 플랫폼이 존재감을 떨친다. 사실 카카오뱅크는 하나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아닌, 카카오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 메신저 기능과 결제, 온디맨드, O2O의 콘텐츠 흐름이 카카오뱅크와 만나 빅데이터를 넘어 스마트데이터 정제까지 성공한다면 LBS(위치기반서비스)의 시너지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우리은행이 위비톡을 통해 '어설프게' 메신저 시장에 진출하며 비슷한 그림을 그렸으나 카카오뱅크는 4000만명이 쓰는 카카오톡의 파생 플랫폼으로 단숨에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전략도 은행과 핀테크를 넘어서는 거대한 플랫폼의 등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대목에서 기존 은행업계가 ICT 기술력을 빠르게 체화하고 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마존의 사례가 좋은 반면교사다.

아마존의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 월마트가 제트닷컴을 인수했으나 이미 아마존은 클라우드, 드론, 로봇 등의 ICT 기술력으로 전자상거래 자체를 일종의 '퍼즐 조각 중 하나'로 규정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월마트가 전자상거래 시장 하나만 염두에 두고 싸움을 걸어도 아마존은 전혀 타격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마존은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사용자 경험을 고도화시키기 위해 전자상거래 시장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은행업계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한 순간 '은행업'을 사수하기 위해 방어전에 나섰으나 이는 시작부터 스텝이 꼬인 것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은행과 핀테크를 넘어 생활밀착형 서비스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미지수다. 다만 인터넷전문은행의 한계가 뚜렷한 상태에서 지나친 열광은 오히려 '독'이라는 점과, 이에 대비하는 은행업계의 근본적인 대응방안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인터넷 전문은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IT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 중심의 서비스와 고객과의 의사소통에 초점을 둔 영업모델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며 "당국도 국내 은행산업 전반의 혁신성 제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