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조달러 이상의 세계 금융상품의 기준 금리로 쓰이고 있는 영국 런던 은행간 금리, 이른바 '리보'(Libor)가 2021년 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조작파문 이후 개혁조치가 이뤄졌지만 은행들이 리보 산정에 참여하길 꺼리고 있는 탓이다.

영국 금융감독청(FCA) 앤드루 베일리 최고경영자는 27일(현지시간) 5개년 계획에 따라 2021년 말 리보를 다른 지표로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보는 원래 런던 은행들이 단기 자금을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지만 주택담보대출이나 자동차·신용카드 대출, 각종 파생상품 거래에서도 기준금리로 쓰인다. 리보는 통상 런던의 20개 은행으로부터 대출금리를 제출받아 영국은행협회(BBA)가 오전 11시45분에 발표했다. 스캔들 이후 ICE가 이 일을 맡았다. ICE에 따르면, 리보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350조달러 이상의 각종 금융상품 기준 금리로 활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는 “은행들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를 버린다”고 평가했다.

리보는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조작 파문으로 신뢰성이 치명상을 입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와 스위스 투자은행 UBS, 미국 씨티그룹 등 패널에 속한 주요 은행들이 리보 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조작에 관여한 트레이더들은 서로 짜고 호가를 높이거나 낮춰 이익을 챙겼다. 리보는 원래 은행들이 하루 단위로 돈을 빌릴 때 적용하는 금리지만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는 일은 드물어 실제 거래가 반영되지 않는다. 트레이더들은 이런 점을 이용했다.

영국 금융당국은 2013년부터 리보 규제를 시작했고 대형 은행들에게 90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혐의가 확정된 UBS와 씨티은행 트레이더인 톰 하이에스는 2015년 1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베일리 청장은 조작 파문 이후 지난 5년간 리보를 산출할 때 실제 거래를 반영해 현실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은행간 대출 규모가 급감해 불가능했다며 리보 폐기 결정을 내린 이유를 밝혔다.

그럼에도 리보가 지금까지 쓰인 이유는 실제 거래를 반영하는 대체 기준금리 시스템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일리 청장은 리보를 대신할 새 기준금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도 리보를 대신할 벤치마크로 '소니아'(Sonia·sterling overnight index average)와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를 언급했다고 CNBC는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일리라 소니아를 유력한 대체금리라고 보도했다.

1997년에 도입된 소니아는 은행들이 영국 파운드화로 거래하는 하루짜리 대출의 기준금리이고 레포는 은행들의 단기자금 조달시장에서 적용되는 금리이여서 실제 금리를 잘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일리 청장은 또 유로와 스위스프랑, 일본엔 등으로 거래되는 하루짜리 대출의 기준금리가 되는 에오니아(EONIA)와 스위스 사론(SARON), 일본 토나르(TONAR)를 거론했다.

그는 “어느 경우에는 전문가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고 패널에 누가 참여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관련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거래 데이터도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