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2011년 9월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월가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단이 외쳤던 말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 뒤 자국민들의 세금을 모아 월가에 투입한 덕분에 회사들은 돈 잔치를 벌였지만, 국민들은 더 피폐한 삶을 맞아야 했다. 극에 달한 빈부의 격차는 국민들을 거리로 내몰아 집단 시위를 끌어냈다.

최근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금수저’라고 불리는 기업 오너의 자제들은 ‘부의 세습’을 통해 살기 좋은 세상을 누리는 반면, 나머지 99%의 젊은이들은 치열한 취업난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계속되는 저성장 기조에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면서, 1%의 소수 자본가가 대부분의 자본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모습이다. 함께 생존해야 한다는 ‘자본주의 4.0시대’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고도 성장과정으로 인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 문제가 된 시대를 지나 불공정한 경쟁의 일환인 일감 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기업들의 담합 등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 최근 몇 년 사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기업의 ‘갑질’ 등 부정적인 행위가 불특정 다수에게 순식간에 공유되면서, 집단 불매운동 등 한국판 ‘월가를 점령하라’가 등장하고 있다.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기업들의 투명한 경영이 더 요구되는 사회가 온 것이다. 여기에 새 정부가 지향하는 기업의 모델로서 ‘착한’ 기업을 내세우면서, 기업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할 때가 왔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새정부 들어 `착한 기업`이 경제계의 화두가 됐다. 새 정부 시대에 `착한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착한기업의 첫번째 조건은 `일자리 창출`이다

이 정부들어 소비자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은 기업은 단연 ‘오뚜기’다. 지난 27일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간 간담회에서 재계순위 100위 밖의 중견기업인 오뚜기의 함영준 회장에게 다가간 문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갓뚜기(God+오뚜기)’라고 부른다면서요?”라며 말을 꺼냈다. 문 대통령은 “고용, 상속을 통한 경영승계, 사회적 공헌 등 착한 기업 이미지가 ‘갓뚜기’라는 말을 만들어내, 젊은 사람들에게 선망하는 기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 시대에 `착한 기업`의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제시했다.  

이 시대 `착한 기업`의 첫번째 조건은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인 기업이다.  

오뚜기의 경우 고용창출 우수사례로 이번 정부의 특별 초청을 받은 것인데, 실제로 전체 직원 3099명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1.16%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양행과 미국의 킴벌리클라크 합작사로 설립된 유한킴벌리도 2015년 기준 사원 1748명 가운데 정규직이 1700명이다. 정규직 비율이 97%에 달해 이 시대 `착한기업` 훈장을 받을만 하다.

하지만 오뚜기는 정규직 고용보다 먼저 세금을 제대로 낸 정직성으로 더 먼저 `착한 기업`반열에 올랐다.   

착한 기업의 두번째 조건은 `성실한 납세 기업`이다

역시 세금을 잘 내는 기업이 `착한 기업`이다. 보통 기업들은 버는 만큼 비례한 많은 세금을 내야하지만,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온갖 편법을 활용하는 것 역시 뛰어난 관리능력이라고 내부에서는 칭찬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오뚜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아들인 함영준 현회장은 오뚜기 주식 46만5543주를 물려받았다. 당시 주가로 3500억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었는데, 상속세법에 따라 1000억원 대로 추산되는 상속세를 5년 간 나눠 내기로 결정했다.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다는 소식에 주가가 연일 올라가더니 지난 24일에는 장중 18% 이상 폭등했다. 지난해 6월 3년간 최고가를 찍은후 약세를 보이던 주가는 이 정부로부터 받은 호평으로 주가 회복세에 들어섰다.

착한 기업의 세번째 조건은 `투명한 지배구조`다

오너 일가로 구성된 기존의 기업들과 달리, 회사의 발전을 위해 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한양행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는 1962년 주식을 공개한데 이어 당시 유한양행에 다니고 있던 자녀들을 모두 해고시켰다. 기업이 한두 사람의 손에 의해 좌우돼서는 발전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969년부터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고, 본인 지분을 비롯한 유산은 사회에 모두 환원한 일화 역시 유명하다. 또 2010년부터 자발적으로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등 일하는 직원에 대한 선구적인 제도로 주목받았다.

지배구조와 관련해선 LG그룹은 문재인 정부 시대에 4대그룹중 가장 부담감 적은 그룹이다. LG그룹은 1999년7월 반도체 빅딜에서 패퇴, 이에 대한 반발로 전경련을 멀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경유착 경영방식을 포기했다. 이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재벌개혁정책에 순응,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을 따라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지배구조 문제에서 홀가분해진 배경 덕에 박근혜 게이트에서 가장 영향이 적은데다 새 정부에서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월18일 위원장 내정자 신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LG그룹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그룹으로, 정부가 가타부타 지적할 게 없다"며 "개별 경영진의 인품이 너무 훌륭하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문 정부시대에 김상주 공정위원장이 4대그룹의 지배구조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등 `착한 기업으로의 재탄생`을 종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면 대주주의 전횡이 줄어들어, 외부 투자자가 리스크에 대한 걱정을 든다. 그 때문에 조달비용이 줄어드는 잇점이 있다.

착한 기업의 네번째 조건은 `진정성을 갖춘 사회공헌활동`   

사회공헌 활동을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정성을 동반하고 있음이 확인된다면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가구업체 1위인 한샘의 조창걸 명예회장은 2015년 3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식 260만주를 한샘드뷰연구재단에 출연, 국가정책 개발을 위한 연구재단 `여시재`를 설립했다. 조 명예회장은 지난 4월 한샘드뷰연구재단에 한샘 주식 6만주를 증여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한샘에 따르면 주식 6만주의 가치는 약 130억원으로, 이번 증여로 조 회장의 지분율은 19.95%에서 19.7%로 낮아졌다. 조 명예회장이 약속한 남은 주식 194만주의 재단 출연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착한기업도 그만큼 증가세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100% 착한 기업은 없다...오뚜기 조차도  완벽하진 않다

사실 미담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호평을 많이 받은 오뚜기조차 ‘일감 몰아주기’ 비판에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식품·알디에스·오뚜기물류서비스·오뚜기SF 등의 계열사를 통해 라면, 빵, 제과, 조미료, 물류, 소프트웨어 등의 최종 판매는 모기업인 오뚜기에서 한다. 업계에 따르면 2010~2015년 오뚜기의 내부거래 비중이 최대 97~9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의구심도 공존한다. 이처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게 ‘착한 기업’이라면, 그렇지 않은 기업은 `나쁜 기업`이 되는 것일까하는 반문이다. 

기업의 목적으로 이윤 추구를 1순위로 꼽는 것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그 1순위를 달성하기 위한 편법과 탐욕에 길들여져 진정성을 갖고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지탄받아야 하지만, 법 기준만 잘 준수한다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정부의 정책을 떠나 ‘착한 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쁜 기업이 많아서 대비되는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나쁘다’라는 정의 역시 법과 관련된 문제도 있겠지만 윤리적인 부분과 특히 많이 겹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갑질’로 이슈가 된 총각네 야채가게나 미스터피자의 경우 법을 어긴 것도 있겠지만, 국민 여론이나 정서에 어긋난 부분도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이다.

총각네 야채가게의 경영 마인드가 만약 우리나라 1970년 시대에 알려졌더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만큼 사회적인 기준이 변했다고 할 수도 있다. 

정 대표는 “최근 기업의 갑질이나 오너의 욕설 행위 등에 여론이 민감한데, 변화하지 않고 예전 방식을 고집한다면 요즘 말하는 ‘착한 기업’이 될 수 없을 것”이라며 “법을 준수하고 여론을 균형감 있게 업데이트해서 대응하는 기업이 ‘더 나은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다른 업계 전문가 역시 “양극화 시대에 정보는 넘쳐나고, 그 정보를 순식간에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면서 “최근 미스터피자나 오뚜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지 하나로 기업이 죽거나 다시 살 수 있을 정도로 ‘기업의 윤리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공유경제 시대에 함께 가는 ‘상생’의 의미가 강조되는 사회에 살고있다”라며 “고용창출에 적극적이고 법 기준에 맞춰 세금을 잘 내며, 건강한 조직 구성원을 통해 사회 공헌에도 진실성을 더한다면, 원하는 이윤추구 역시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