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마일 연합이 도시바 인수 초읽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막판 진통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도시바의 기술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걱정하는 일본 정부의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베인캐피털의 지분을 일부 혹은 전부 가져갈 수 있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도시바 입장에서 자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며 한미일 연합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나아가 각국 규제당국의 반독점 규제 심사에 불리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판 자체가 깨질 가능성은 낮지만, 애매합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난해 네이버 라인이 상장될 당시 일본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은 이해진 창업주와의 인터뷰를 보도하며‘LINEは日本企業、韓国親会社トップが言明(라인은 일본기업, 한국회사 대표의 언급)’이라는 제목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춘천 데이터 센터 각에서 이해진 창업주는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라인의 국적은 아시아 기업이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인은 아시아 기업이 맞습니다. 그 정체성이 네이버 글로벌 시장 공략의 연장선에서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왜 국내와 일본에서 말하는 것이 다른가. 기사를 더욱 꼼꼼하게 봤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日本企業なのか韓国企業なのか。私の考えでは、LINEは日本の東京に本社を置いており、意思決定の体制を見ても、例えば取締役会の過半数は日本人で構成されています。もちろん、日本の法律に基づいて管理・運営されており、税金も日本にちゃんと収めている。その意味で、LINEは日本の会社だと思っています] 

요약하자면 이해진 의장은 “라인은 일본 기업인가 한국기업인가, 내 생각에 라인은 일본 도쿄에 본사가 있고 의사결정 체제를 봐도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가 일본인이다. 물론 일본의 법률에 따라 관리 운영되고 세금도 일본에 납부하고 있다. 그 의미인 즉, 라인은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한다”입니다. 

물론 당시 인터뷰에도 라인이 아시아 기업이라는 단서가 달려있기는 합니다. 이해진 창업주는 "국적을 묻는 '의도'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이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뭔가 불필요한 이슈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라고 전했습니다. 집요하게 라인의 고향을 묻는 일본 언론에 일침을 가한 장면이면서,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긍'이 갑니다. 라인은 아시아 기업이며 이에 대한 논란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라인 본사가 일본에 위치해있고 미국과 일본에서 상장했기 때문에 '라인은 일본 기업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했습니다. 경영의 측면이지요.

맞아요. 기업은 각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의도적인 유연한 전략을 펼치기 마련입니다. 이해진 창업주와 라인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겁니다. 여담이지만 네이버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일본에서 라인과 관련된 한국 언론의 기사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를 네이버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국가 간의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되는 현상을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로 표현한다면, 양적교류를 넘어 현대사회 자체가 새롭게 규정되어 그 자체가 독자적인 생태계가 되는 것을 세계화(globalization)라고 부릅니다. 모든 지구인은 하나의 가족.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계화는 착각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이데올로기는 비주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이상의 개념 확장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상호 이익이 되는 교역과 투자, 그리고 무차별 원칙의 중요성을 주목하면서 시장 개방을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자유 무역주의를 천명했다고요? 이러한 성명이 나오는 이유가 기승을 부리는 보호 무역주의라는 팩트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는 지구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경제 패러다임과 기업의 활동을 냉정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UN이 설립되었다고 국제정치에서 힘의 논리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개방과 포옹의 관념을 유지한 상태에서 기본적인 전략의 틀을 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국뽕'의 경지에 이르러 배타적인 보호주의를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한국경제와 기업의 글로벌 전략에 있어 '우리 것을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전과 네이버 라인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극적인 단서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유럽연합의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 전반의 압박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막강한 경제권력을 휘두르며 극단적인 보호 무역주의를 고수할 수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도 아니며, 강력한 내수시장으로 협상 테이블에 임해 상대적인 우위에 앞설 수 있는 중국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계화의 개념이 유령처럼 의미없이 소모되는 시대를 맞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패스트팔로우의 자리에서 퍼스트무버의 위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에 독자적인 매력을 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연대의 촘촘한 그물과 스스로의 힘을 기르기 위한 자강론의 사이에서 절묘한 신의한수를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미디어 업계 최대 이슈였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발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양사의 인수합병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상태에서 최근 무산의 배경에 부당한 정치권력의 입김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지난 6월29일 최순실 게이트 공판에서 인민호 공정위 과장을 비롯해 직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입으로 인수합병이 무산됐다'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2015년 12월28일과 2016년 2월22일, 3월18일 공정위로부터 합병 관련 보고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미르 및 K스포츠재단에 SK가 추가출연을 하지 않았던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극단적인 보호 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각국이 스스로의 힘을 길러 치열한 진검승부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는 '고작' 89억원의 재단 출연금 미납을 이유로 미디어 인프라 강화에 실패한 셈입니다. 물론 시장 독과점과 당시 인수합병을 둘러싼 논란이 모두 의미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최소한의 시장 경쟁력 강화에 대한 논의는 차치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정치적 고려가 경제지형을 바꿨다는 점에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한민국입니다. 밖에서는 총알과 대포가 난무하는데 참 태평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맞습니다. 외부와 교류하는 것 좋습니다. 글로벌 ICT 기업에 열광해도 좋아요. 하지만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팔은 안으로 굽어요. 모두가 안으로 굽는데 왜 우리는 밖으로 펴려고 하나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예를 들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시장 독과점 및 기타 대형기업의 갑질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논의에 나서기 전 이미 정치권력이 개입한 부분을 문제삼는 겁니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스스로를 지키면서 건전하게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요. 네? 지나친 국수주의라고요?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입니다. 

국내 ICT 업계에서 중국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한 자국중심 정책을 펴고 있어요. 장단이 있지만 단기적 관점에서 나름 배울 부분도 있습니다. 최소한 지키려는 노력을 배우자고요. 쓸데없는 비선실세가 춤추는 장면은 걷어냅니다. 물론 중국도 비슷한 관행 있을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도, 중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약간은 이기적일 수 있지만, 힘을 기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