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우리 기업들의 최대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다. 경제부처는 물론 지난 대선 유력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에 동참하지 않으면, 30~40년 후 우리의 미래는 없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모두가 한곳에 집중할 때 이제는 시야를 더 넓게 갖는 것도 필요한 것 아닐지.

심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 논리다.

#1. 우리의 미래 먹거리는 과연 첨단산업에서만 찾아야만 하는 것인가. 유엔 경제사무국이 지난 6월 발표한 세계 인구는 75억5000만명이다.

#2. 세계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1인당 연간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층은 세계 인구의 약 53%를 차지한다. 인구수로 따지면 약 40억명.

#3. 문재인 정부가 앞선 정부와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 것은 중기벤처부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4.우리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글로벌시장은 미국과 중국 시장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한반도 사드배치 문제로 토라져 있다.

#5. 벤처기업과 인터넷 광풍이 몰아쳤던 2000년대 초반, 고(故) C.K.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BoP(Bottom of the Pyramid, 저소득층)시장’ 공략을 기업의 미래로 꼽았다.

‘#1~5’를 보면 무언가 떠오르는 영감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4차 산업혁명에만 매달릴 때 인구 40억명의 시장을 돌아봐야 한다. 이 같은 논의는 2010년 초반 우리나라에서 불이 붙는 듯 했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말로만 수출시장 다변화?… BoP 산업을 일으키자

새 정부의 중기벤처부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연구개발과 기술지원에만 집중한다면 정작 우리가 해야 할 글로벌 시장 다변화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모두가 아마존, 구글, 테슬라모터스와 같은 링에 올라 싸울 필요는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가 미래 산업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시점이다. 프라할라드 교수가 분석한 글로벌 BoP계층은 세계 인구의 50%를 넘는 40억명 이상이다. 하루 지출액이 8~10달러 정도이고, 구매력은 낮지만 시장 규모는 약 5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계층은 우리나라의 70년대 중반 경제 상황과 비슷한 여건에 있다. 저축이나 투자보다는 소비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다. 일본에서 BoP 연구를 하고 있는 고바야시 노리타카 박사는 저서 <BoP비즈니스, 지속적인 기업 성장의 마지막 기회>(2013년 에코리브르 출판)를 통해 “저소득층을 상대하는 물건이라고 해서 조잡하거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선 안 된다”며 “예를 들어 인도의 중산층은 월 소득 80만원 수준에서도 HDTV와 스마트폰은 물론 소형 승용차까지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환경에 맞는 최적화된 기능과 최저가격에 맞춘 제품을 시장환경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싸구려 제품을 덤핑하듯 파는 시장으로 인식해선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BoP경영학’이 아니다.

 

통일 한국을 대비하려면

이제 글로벌시장을 향한 시선을 넓게 그리고 멀리 봐야 할 때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을 때 대기업이라면 일정 사업부문을 BoP계층을 위한 제품개발에 할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소기업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산업계가 BoP산업 육성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언젠가 다가올 통일시대에 북한의 경제를 일으키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우리가 먼저 맞춤형 BoP제품 강국이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가 첨단 산업 육성에만 몰두한다면 통일시대에 북한 주민 소득에 맞춘 제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써야 할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중기벤처부를 출범시킨 새 정부와 첨단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이제는 BoP산업연구에 몰두할 때다. 세계 인구는 75억5000명이고 BoP인구는 40억명 이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