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골프 대중화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에도 골프장은 골퍼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이후 크게 침체됐던 골프산업은 수년 전부터 턴어라운드한 모습을 보이더니 최근 들어 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라서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유진PE 등 대형 투자자들이 골프장 인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때 골프는 귀족 스포츠였다. 골프를 치는 사람은 정치인, 기업가, 전문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골프는 시간과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골프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특권층 전유물로서 서민에겐 부정적인 스포츠였다. 이러한 인식은 2000년 이후 정부의 골프 대중화 정책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변했다. 정부 정책으로 골프에 대한 초과수요가 나타났고, 골프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골프 인구가 급증했다. 스크린골프 활성화가 한몫을 했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도 골프 대중화의 대세를 꺾진 못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주 5일제 근무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과 스크린골프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올해 초 ‘2017년 골프 산업 전망’에서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접대골프가 줄어들고 국내 경기 침체 등으로 이용객 수가 2016년에 비해 약 1.5% 줄어든 3365만명에 그치리라 전망했다.

실제는 이 같은 예상과 다르다는 게 서 소장의 설명이다. 서 소장은 “정확한 수치는 연말 즈음에 산정되겠으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골프 이용객 수가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이 골프장 대중화에 힘입은 결과”라며 “귀족 스포츠로 인식된 골프에 대해 스크린 골프를 통해 많은 사람이 골프와 접촉이 늘면서 필드를 찾는 사람이 계속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골프 산업 경영 자문업체인 GMI컨설팅 보고서도 이 같은 기조를 뒷받침한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6% 성장한 것으로 추산되는 스크린 골프 인구 중 45%가 필드로 나간 것으로, 그나마 ‘김영란법’ 충격방어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분석했다.

대중제 골프장만 돈을 번다

골프의 대중화는 골프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2016년 11월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간한 골프장 레저백서에 따르면 골프장 자체 시장규모가 2005년 2조1558억원에서 2015년 3조8696억원으로 79.5%가 증가했다. 이 중 대중제 골프장의 시장규모는 4.9배 급증했다.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하는 이용객은 2000년 약 945만9000명에서 2015년 1778만5000명으로 1.9배 늘어난 반면 대중제는 2000년 142만9000명에서 2015년 1441만6000명으로 약 10배 늘었다. 회원제 골프장의 매출액이 2000년 약 9276억원에서 2015년 2조1458억원으로 2.3배 늘었다면, 대중제 골프장은 2000년 1056억원에서 2015년 1조6206억원으로 15.3배 늘었다. 또 2015년 회원제 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2015년 -0.5%로 기록됐지만, 대중제 골프장은 28.5%를 기록됐다. 다만 평균영업이익은 2015년 대비 2016년 0.8%가 감소됐다. 김영란법을 감안하더라도 선방했다는 분석했다. 2000년 말 40곳이었던 대중제 골프장은 2015년 말에 266곳으로 급증했다. 반면 회원제 골프장은 107곳에서 219곳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법정관리 회원제 골프장을 잡아라

대중제 골프장의 성장 이면엔 회원제 골프장의 몰락이 있다. 회원제 골프장은 공사 초기부터 대부분 회원권 분양대금 등 과다한 타인자본으로 건설한다. 골프장 건설 후 사주들은 회원권대금으로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남는 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회원제 골프장은 개장 초기부터 재무가 건전하지 않다. 회원제 골프장의 내부사정을 들춰보면 대표이사의 횡령과 배임 문제가 드러나곤 한다.

회원제 골프장들은 점차 대중화되는 골프장 산업과 맞물려 설 곳을 잃고 있다.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에서 골프장 회원권 시세가 떨어지자 입회금을 요구하는 회원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재무적 위기를 정면으로 맞았다. 2000년 이후 개장한 회원제 골프장 112개 회원권의 시세는 분양가를 밑돌고 있다. 일부 회원의 입회금을 반환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겁먹은 다른 회원들이 너도나도 입회금을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바람에 도산하는 회원제 골프장이 증가했다.

 

2015년 말 회원제 골프장의 업체당 평균 부채액은 1239억원에 이른다. 이 중 입회금 부채는 평균 734억원으로 부채총액의 59.3%를 차지한다. 또 별도로 금융권 차입금도 평균 181억원으로서 14.6%를 차지한다.

전국 회원제 골프장 219곳 중 82곳이 자본 잠식상태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들어간 골프장은 이 중 18곳이고, 이미 법정관리를 졸업했거나 절차를 이행하지 못한 골프장도 총 24곳이다.

 

골프산업이 되살아나면서 이들 자본잠식 골프장을 인수하려는 자본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자본력 있는 회사들이 이 법정관리 골프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 이들은 주로 사모펀드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대부분인데, 이들의 정상화 전략이 바로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돌입한 회원제 골프장의 90%가 절차과정에서 M&A를 통해 졸업한다”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법정관리절차에서 M&A를 통해 졸업했거나 시도한 골프장은 ▲골프존카운티 안성(큐 안성) ▲더 클래식골프장 ▲마에스트로 CC ▲버드우드 GC ▲블루버드 CC(舊경기샹그릴라) ▲아트밸리 CC ▲양산 CC ▲양지파인 GC ▲오투리조트 ▲옥스필드CC ▲젠스필드 CC ▲태안비치 CC ▲함평 엘리체 CC(舊 함평다이너스티) ▲함양 스카이뷰 CC으로 총 14곳에 이른다.

김형채 삼덕회계법인 회계사는 투자회사들이 법정관리 회원제 골프장을 인수했을 때 대략 4가지의 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이들이 법정관리 회원제 골프장에 관심을 두는 것은 최근 증가하는 대중제 골프장의 호조 때문이다. 회원제 골프장을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한다면 투자가들이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둘째, 법정관리 회원제 골프장의 M&A는 기존 회원들의 입회금을 모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법정관리 전 회원제 골프장의 M&A는 회원들의 입회금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조인명 CRB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현행 체육시설설치에 관한 법 27조는 체육시설 사업자가 영업을 양도하거나 합병하는 경우 기존 회원들의 채무를 모두 인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인수기업이 이 법에 따라 향후 기존 회원들의 채무를 모두 떠안고 영업이익률이 저조한 회원제 골프장을 인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골프장 토지의 상승 가능성만을 고려한 것인데 이는 성사되기 어려운 M&A”라고 말했다.

셋째, 법정관리 회원제 골프장은 인수가격의 기준이 명확하고 인수가액이 싸다는 이점이 있다. 인수가격은 대체로 토지가격 이상에서 정해진다. 여기에 기존 회원들의 입회금을 어느 선에서 보전해줄 것인지에 따라 M&A 인수대금이 정해진다.

넷째, 법정관리 회원제 골프장은 자산과 부채가 명확하게 드러나 우발채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길환 GMI 대표는 “회원제 골프장이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하면, 법원이 자산과 부채를 조사해 이해관계인에게 공개하므로 인수하려는 입장에서는 우발채무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