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과 삼성동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두어 곳은 평일 낮엔 임시 기자실 같은 곳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외근이 많은 기자들은 서울 시내를 유목했다.

디지털 노마드는 인터넷 보급과 기술 발달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업체 등 원격근무가 가능한 업종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신인류였다. 회사는 직원들에 아침 출근을 강요하지도 않고 야근을 유도하지도 않았다. 직원들은 머나먼 이국으로 훌쩍 떠나서 몇 달씩 머물며 일하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거의 처음으로 맞는 일터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몇 년째 쓰고 있는 휴대폰에 벨소리조차 집어넣지 못하기에 ‘디지털 노마드’라고 자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무실이 아닌 기자실, 커피숍, 식당, 지인의 사무실은 물론, 기차 안이나 빌딩 계단 같은 곳에서도 일을 한 경험이 있어 그 생활을 조금은 안다.

개인 경험과 탐문에 기초해 보면, 산업 생태계에서 ‘관찰자’일 뿐인 기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처럼 유행하는 재택근무 시스템이 다른 업계와 근로자들에게 권할 만한 것인지가 늘 의문이었다. 덥고 추울 때는 냉난방 설비와 와이파이까지 완비된 사무실 내 자리가 최고고, 밉니 곱니 해도 내 업무를 알고 논의하고 또 도와줄 사람은 같은 회사 동료밖에 없다는 말이다.

재택근무제를 하는 ‘쿨한’ 스타트업이라고 홍보하는 신생업체들을 찾아가 보면 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직원 수에 비해 턱없이 비좁은 사무실에 공용 데스크를 밀어넣은 모습은 옹색하기만 하다. 그때 또 드는 생각은 이렇다. ‘사업주가 부동산 비용 부담 탓에 직원들의 업무공간을 뺏는 정책 아닌가? 가정에 업무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일을 하는 걸까? 비대면 원격회의만으로 동료애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협업이 가능할까?’

산업 전반에 불어닥친 재택근무제의 유행으로 부동산 시장의 지형도 달라졌다. 건물 임대료와 시설 관리비를 줄이려는 업체들이 임대면적을 줄이거나 공유 오피스 등에 입주하기를 선택했다. 커피 매장들은 자리마다 콘센트를 매립해 단기 공간 대여업의 모습을 띠었고 집을 홈오피스처럼 꾸미려는 수요로 복층 주택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무 공간 수요가 줄면서 오피스 건물의 공실도 늘었다. 미국 오피스의 공실률은 경제 호조에도 12% 수준에 이른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 IT기업이면서 재택근무제를 10년 전에 도입한 IBM이 최근 재택근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떨어져 일하는 방식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스타트업들의 원형인 한 글로벌 IT업체는 자율출퇴근제를 하면서도 직원의 이름이 적히고 그의 소지품을 두는 그만의 장소를 마련해뒀다고 한다. 회사에 대한 직원의 소속감과 애사심을 자리에 담보해둔 것이라고 한다.

업종에 따라서, 회사에 따라서 혹은 사람에 따라서 재택근무의 좋고 나쁨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는 부동산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IBM이 도심 오피스빌딩으로 돌아온 뒤에 다른 회사들도 돌아올 것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노마드족들의 사무실 복귀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앞으로 오피스 부동산 시장도 달라질 것임을 예고한다. 그렇기에 달라져갈 부동산시장을 지켜보는 것이 꽤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