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텍이라고 하면 마우스나 키보드가 먼저 떠오른다. 이 스위스 회사는 글로벌 PC 주변기기 시장을 30년 넘게 이끌어온 시장의 리더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PC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든 탓일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만 해도 로지텍 매출이 매해 7%씩 줄어들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길진 않았다.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지난해엔 전년 대비 15% 성장하는 데 이르렀다. 매출 20억1810만달러에, 영업이익 1억2905만달러를 기록했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지텍 아시아 태평양 사업 총괄 책임자 퀸 류(Quin Liu) 부사장이 그랬다. 7월 24일 여의도 로지텍 코리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사진=노연주 기자

 

‘design’이 아니라 ‘DESIGN’인 이유

퀸 부사장은 원래 펩시코 사람이었다. 16년 동안 콜라 회사 펩시코에서 일하다가 2010년 로지텍 글로벌 부사장이자 중국 사업 총괄로 합류했다. 이후 로지텍은 다시 성장 동력을 얻는다.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6~7달러였던 주가가 4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5년을 그는 ‘혁신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가 지목한 ‘혁신의 핵심’은 다름 아닌 디자인이다. 로지텍은 디자인 역량을 강화해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최근 레드닷이나 iF 같은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2~3년 동안 100건 넘게 권위 있는 디자인 관련 상을 받았다. 디자인 컴퍼니로서 로지텍의 저력을 보여준 셈이다.

“과거엔 마우스와 키보드는 일할 때 쓰는 도구 개념밖에 없었는데 요즘엔 깜짝 놀랄 제품으로 진화했습니다. 색상, 소재, 형태 등이 과거와는 완전 다르기 때문이죠. 최근 3년간 출시 제품을 보면 당신이 알고 있던 로지텍이 아니라고 느낄 겁니다.”

▲ 사진=노연주 기자

퀸 부사장에 따르면 2013년 취임한 브라켄 대럴 CEO가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는 ‘design’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아 대문자로 ‘DESIGN’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그 결과 로지텍에 디자인 자체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어요.”

단순히 강조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업무 프로세스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제품 디자인을 대행업체에 맡겼다면 이젠 내부 디자인팀이 전담한다. 이 팀은 제품 개발 모든 단계에 참여한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디자인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역이 없다. 이들을 완성된 제품으로부터 고객이 어떤 경험을 할지도 예측하면서 작업에 임한다.

로지텍의 디자인은 제품을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과정이 아니다. 제품 구조와 비용 효율화는 물론 패키지와 매장 디스플레이까지 고려한다. “로지텍 디자인의 중심은 고객입니다. 고객이 박스를 배송받을 때까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를 생각해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으로부터 배우고, 다양하게 도전한다

화두가 퀸 부사장이 총괄 중인 아태 지역으로 넘어갔다. 그는 이 지역이 특히나 시장 특징이 강하다고 얘기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개성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다양성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워보자는 게 퀸 부사장 생각이다. “지역 팀들에게 시장 성격이 다 다르니 각 시장에서 서로 잘 배워보자고 이야기합니다. 그 효과가 잘 먹히고 있는 거고요.”

로지텍에게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잠재력이 폭발하고 있는 게이밍 기어 사업에서 중국과 함께 2대 시장인 까닭이다. 퀸 부사장에 따르면 로지텍은 게이밍 부문에 초점을 두고 한국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한국 시장 성과가 뛰어나다며 향후 3~4년 내에 2배 이상 성장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사진=노연주 기자

퀸 부사장에 따르면 로지텍은 더 이상 마우스·키보드 회사가 아니다. 5년 전부터 야심차게 새로운 카테고리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화상회의 시스템이나 음향기기는 물론 스마트홈까지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PC 주변기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45% 안팎이란 설명이다.

특히 그는 화상회의 사업을 강조했다. 지난 3년간 이 부문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고 했다. 로지텍 화상회의 시스템의 장점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마우스처럼 설치가 쉽다. 둘째, 품질은 뛰어난데 가격이 10분의 1이다. 셋째,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여러 소프트웨어에서 구동된다.

퀸 부사장은 아태 지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스마트홈 사업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현재 로지텍은 미국과 유럽에서 비즈니스 고객 중심으로 스마트홈 사업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그는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아직 1인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술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구글, 아마존, 애플 같은 빅플레이어가 이 시장에 뛰어든 만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레드카펫 필요 없는 회사, 함께 최선을 고민한다

로지텍에서 몸담으며 느낀 로지텍의 핵심 역량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퀸 부사장이 막힘없이 답했다. “첫째는 디자인 역량, 둘째는 35년을 축적한 기술력, 셋째는 세계 최고 수준 회사 운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품을 전 세계 유통하는 역량도 뛰어나다고 봅니다.”

그는 추가로 ‘조직 문화’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는 CEO가 지사를 방문할 때 전 직원이 긴장해 레드카펫을 깔기 일쑤죠. 로지텍은 CEO가 방문해도 공항에 마중 나가지 않아요. CEO는 혼자 택시 타고 호텔로 가죠. 직원들은 CEO와도 허물없이 소통합니다. 아시아의 상명하달 방식과는 전혀 다른 문화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위챗, 구글톡, 페이스북으로 직원들과 자유롭게 소통합니다.”

▲ 사진=노연주 기자

퀸 부사장은 미래를 묻자 불안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내비쳤다. “IT 종사자라면 마찬가지겠지만 이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게 걱정거리입니다. 언제라도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효용성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죠.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린 지난 5년 경쟁사보다 시장 변화에 잘 대처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올해 목표는? “회사가 설정한 목표 달성보다는 잠재성을 키우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일에 재미를 느끼고 최선을 다해 최고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렇게 하면 주주뿐 아니라 직원들도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