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로드맵'이 베일을 벗었습니다.

큰 그림부터 보겠습니다. 지난달 2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치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박광온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대변인(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원회를 두고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한편, 이를 촉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어요. 위원장을 민간인으로 하기 때문에 철저히 민간 중심의 위원회라는 설명이지만 엄연히 정부 기관이 발표하는 애매한 장면은 일단 넘어갑시다. 중요한 것은 효과니까요.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포지션은 서열 2위 정도로 묘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원장 위상이 총리급이거든요.

부위원장은 유영민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맡습니다. 그리고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간사를 맡아요. 자체 사무처를 꾸리며 미래부는 별도의 조직을 구성해 위원회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그 위 서열 1위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장입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 조정과 자문 기능을 통합하는 역할이에요.

그렇다면 서열 3위는 어디일까요? 미래부입니다. 4위는? 미래부 내부에 과학기술정책연구를 총괄하는 차관급 조직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입니다. 자. 정리가 됩니다. 대통령급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총리급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 장관급인 미래부, 차관급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중심이 되어 국가 ICT 정책을 끌고간다는 그림입니다.

25일에는 구체적인 윤곽이 나왔습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통해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대응태세 강화 방안이 눈길을 끕니다.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8월에 신설하고 범부처 4차 산업혁명 대응 추진계획을 3분기까지 수립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외 다양한 내용이 많습니다. 왠지 한국형 알파고 정책이 수립되며 온갖 장밋빛 정책을 대책없이 나열한 당시와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역시 그냥 넘어갑시다. 중요한 것은 효과니까요.

보겠습니다. 국가과학기술정책 자문과 조정기구를 통합하는 콘트롤 타워를 만들고 핵심기술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에 투자해 지능정보기술 수준을 선진국 대비 기존 75%에서 90%로 올린다고 했네요. 올해 사물인터넷 전용망을 구축하고 내년 10기가 인터넷 서비스를 상용화하며 2019년 5G 조기 상용화를 목표로 걸었습니다. 2019년 5G 조기 상용화라. 왠지 황창규 KT 회장이 올해 초 MWC 2017 기조연설에서 했던 말 같지만 이 역시 그냥 넘어갑시다.

여기에 스마트팩토리와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도 실렸습니다. 분야별 육성지점도 스마트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기술사업은 물론 제약과 바이오, 드론과 스마트농업 육성책도 눈길을 끕니다.

▲ 정부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 경제 패러다임. 출처=캡처

정리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에 접근하며 일종의 ICT 콘트롤 타워를 구축해 체계적으로 육성을 지원하는 전략을 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5일 공포된 상태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새출발하는 미래부의 위상도 올라갔고요. ICT 발전에 집중하는 분위기는 잘 읽혔습니다.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보면서 알수없는 불길함이 치밀어 오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전체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은 '사람중심 경제'입니다. 일자리 창출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소득주도 성장을 노린다는 것. 그 안에는 수출중심 성장 일변도의 경제 패러다임을 벗어나 사람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본적인 아젠다 셋팅이 보입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ICT 정책을 보면, 정부가 그리고 있는 콘트롤 타워의 기능과 이를 받쳐주는 정책적 논리들을 보면 그 안에는 사람이 없어요. 2020년 준자율주행차 조기 상용화, 2019년 5G 상용화 등의 정책은 그냥 원래부터 있던 ICT 정책들입니다. 보기에 아주 아름다운 레토릭(수사)에요.

문제는 이러한 ICT 발전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패러다임과는 분명 동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당장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을 볼까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향후 10년이 지나면 국내 일자리의 52%가 인공지능에 대체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 스마트팩토리. 출처=위키디피아

물론 ICT 발전이 무조건적인 재앙은 아닙니다. 오히려 육성하고 키워서 성장시킨 후 이를 온전히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식은 옳습니다. 하지만 사람중심 경제를 내세우면서 아무 생각없이 기존에 있던 ICT 발전론만 부록처럼 나열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중심 경제와 ICT 발전 동시에 추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양쪽의 성격은 분명히 달라요. 여기에서 더 치밀한 생각을 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마트팩토리에 있어 일본은 엣지컴퓨팅 전략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IT 인프라가 부족한 일본은 자신들의 강점인 제조 인프라를 1차 관문으로 활용해 현장의 데이터를 정제하고 이를 엣지 컴퓨팅 파워로 모아 실제 관리 솔루션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IT 인프라의 절묘한 콜라보가 벌어집니다. 모든 것을 기계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현장의 데이터가 일차적으로 사람의 손에서 수집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러한 방식을 고려해야 합니다.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며 사람중심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한 것은 분명 옳고, ICT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짜는 것도 당연히 가야하는 길이지만 이 둘을 단순하게 붙여두면 역설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과 일자리가 사라지는 정책을 동시에 한다? 어불성설이죠.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작성하며 4차 산업혁명 분야만 전혀 다른 세상에서 만들었나요? 이건 ICT 발전이 필요하니까 그냥 생각없이 추가한 정도로 보일 지경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ICT 발전이 필요하다고 아무말이나, 듣기 좋은 말 붙이지 맙시다. 사람중심으로 바꾸려면 ICT 정책도 지금까지 나왔던 천편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나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