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그 물건과 일상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상가젯

패키지 디자인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물건들이 있다. 포장을 뜯기 아까워 한동안 모셔둔다. 굳이 중고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고도 소장가치 때문에 소중히 보관한다. 이런 물건은 대개 내용물도 마음에 든다. 첫인상 효과 덕분인지.

베오플레이 E4도 그런 물건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 본 순간 취향 저격당했다. 박스를 서재에 전시해두고 틈이 날 때마다 바라봤다. 그 장면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도 살짝 올려보고. 모셔두다가 포장을 뜯기까지 한참 걸렸다.

E4는 뱅앤올룹슨 인이어 이어폰이다. 정확한 브랜드는 비앤오플레이(B&O PLAY)다. 뱅앤올룹슨 시그니처 사운드를 계승하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을 더한 자체 브랜드다. 박스 디자인에서도 이런 콘셉트가 드러난다.

뱅앤올룹슨? 음향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인정하는 덴마크 브랜드다. 역사가 상당히 깊다. 피터 뱅과 스벤드 올룹슨이 1925년 회사를 열었다. 어느 작은 옥탑방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둘은 라디오를 사랑하는 엔지니어였다. 90년 노하우가 쌓이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뱅앤올룹슨 디자인이 예쁜 이유

소장가치만 생각한다면 포장 안 뜯고 전시하든 숨겨놓든 택하면 그만이다. 소장가치만 고려하는 건 일종의 작은 사치인데, 마냥 그럴 형편이 아니다. 소장가치 외에도 사용가치를 생각해야 하는 처지다. 결국 언박싱에 이르렀다.

베오플레이 E4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 깨달았다. 겉보다 속이 예쁘구나. ‘뱅앤올룹슨’ 하면 디자인 아니던가. 잘은 모르는데 그렇게 들었다는. E4는 덴마크 출신 유명 산업 디자이너 야콥 바그너가 디자인했다. 자태를 보면 납득이 간다. B&O 로고도 어쩜 이리 예쁜지.

뱅앤올룹슨은 사내 디자이너가 아닌 외부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는 걸로 유명하다. 디자이너의 독창성과 자율성 유지하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결정권을 가진다. 결과는? 뱅앤올룹슨 제품 몇 가지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자태에 감탄하고 있다가 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폰 단자 쪽에 B&O 로고가 박힌 네모난 혹(?) 말이다. 촉감은 부드러웠는데 상당히 애매한 존재다. 위치도 그렇고 무게도 그렇고 크기도 그렇고. 뗄 수 없는 혹이다. 불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네모의 기능은 뒤에서 다루겠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외부 소음이 안 들린다고?

E4는 유선 이어폰이다. 블루투스 무선 제품이 대세라고 하지만 사운드 품질에 있어선 아직 유선이 믿음직하다. 음질에 있어서도 뱅앤올룹슨은 기대감을 주는 이름이다. 이 브랜드는 ‘고문실’이라고 불리는 실험실에서 수만번의 실험을 통해 최상 품질을 유지하는 걸로 알려졌다.

뱅앤올룹슨 제품은 고음역대가 특히 아름답기로 이름났다. E4 역시 이런 특징을 계승해 카랑카랑한 소리를 낸다. 분명 뱅앤올룹슨 시그니처 사운드다. 큼직한 10.8mm 드라이버는 중저음도 명확하게 때려준다. 막귀이니 이만 줄이겠다.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E4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다. 소음을 기술적으로 막아줘 음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얘기다. 단순히 귀를 틀어막아주는 원리가 아니다. 헤드에 내장된 마이크로 바깥 소음을 받아들여 이를 상쇄해주는 소리를 유저한테 들려주는 방식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베오플레이 H3에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었다. E4는 이 기능이 한층 강화된 모델이다. H3 대비 저주파 소음을 15dB 더 감소시켰다. 시끄러운 길가를 지날 때, 사무실에서 집중 안 될 때, E4와 함께하면 평온함이 내려앉는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에 환상을 품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완전한 소음 차단과는 거리가 있으니. 주변 소리가 아예 안 들리진 않는다. 다만 내가 듣는 음악이 어떤 소음보다 강조되는 나만의 사운드 스테이지를 만들 순 있다. 지나치게 강력하고 불규칙한 소음이 존재하는 환경에선 음이 튀기도 하더라.

E4가 마음에 드는 이유 또 한 가지. 새로 추가된 트랜스퍼런시(Transparency) 모드가 정말 유용하다. 노이즈 캔슬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달린 헤드 마이크가 바깥 소음을 받아들여 사용자에게 전해주는 기능이다. 덕분에 이어폰을 빼지 않아도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편의점에서 물건 계산할 때 간편하다.

▲ 사진=노연주 기자

 

네모난 혹(?)의 정체

이제 네모난 혹(?)의 정체를 밝힐 차례다. 혹은 사실 E4의 핵심이기도 하다. 노이즈 캔슬링과 트랜스퍼런시 모드를 구현하기 위한 배터리인 동시에 이 기능을 조작하는 리모컨이다. 두 기능의 ‘맛’을 알아다가보면 언박싱 이후 당혹감이 잦아든다.

노이즈 캔슬링과 트랜스퍼런시 모드는 최대 20시간 사용 가능하다. 배터리가 그만큼 버틴다는 얘기다. 완전 충전까지는 2시간30분 정도가 걸린다. USB 케이블을 연결해 충전 가능하다. 물론 두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방전되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뱅앤올룹슨 제품이 다 좋은데 비싸지 않느냐고? 뱅앤올룹슨엔 미안하지만 인정한다. E4는 36만원이다. 36개월 할부로 월 1만원씩 내면 내 물건이다. 문제의 혹이 조금 애매하지만 값어치는 충분히 해내는 패키지가 아름다운 이어폰. 그것이 베오플레이 E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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