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높은 지지율이 최저임금 인상과 부자증세를 밀어붙인 원동력 아니겠나”

23일 더불어민주당의 고위 관계자는 “오는 25일 열릴 국무회의를 거쳐 세법 개정안에서 부자증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앞선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 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고 세법 개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바 있다.

이는 지난 20일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증세논의 필요성을 제안한 직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순이익 2000억원을 초과하는 대기업과 연소득 5억원을 넘는 개인소득자의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높이자는 제안을 사실상 청와대가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장관에 이어 추 대표, 문 대통령으로 이어진 소위 정부의 부자 증세 방침은 불과 이틀만에 빠르게 완성됐다.

추 대표의 증세안대로 국무회의에서 논의될 경우 세법개정안은 순이익 2000억원이 넘는 대기업에 한해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인상되고 연간 5억원이 넘는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은 현행 40%에서 42%로 올라간다. 이와 함께 연소득 1억5000만원~5억원 구간 38%인 소득세율은 유지하되 과세기준을 3~5억원 구간으로 쪼갠 후 이 구간에 한해 2%포인트 과세를 더 부과, 40%로 인상한다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이렇게 법인세와 소득세를 올릴 경우 과세대상이 초고소득계층에 국한돼 과세인상 부담이 중산층과 서민층에게는 없고, 세수는 연 3조8000억원정도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5억원이상 고소득자의 경우 지난해 최고세율구간이 2%포인트 인상된데 이어 1년도안돼 또 다시 2%포인트가 오른다는 불만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연 5억원이상 고소득자는 약 4만명, 연 3억원~5억원 소득자는 5만명 정도로 집계돼있다. 법인세율 인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순이익 2000억원이상 대상기업 수를 116개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경우 이명박 정부 당시 법인세 25%를 22%로 내린 것에 대한 원상회복인만큼 사실상 지나친 인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해당 기업측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정부가 법인세 35%를 15%로 대폭 낮추려 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법인세 인하 움직임에 불구하고 우리만 거꾸로 갈 경우 기업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해당 대기업들의 이 같은 입장은 그동안 글로벌 경쟁력강화를 위한 명분으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법인세를 적용받았던 만큼 큰 설득력은 없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과 맞물린 부자증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편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인상한 7530원으로 결정했다. 이튿날인 16일이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소집, ‘4조원+알파’의 영세상공인 지원 방안을 밝혔다.


공교롭게도 일주일만에 정부의 부자증세안이 나와 결국 부자증세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영세상공인들의 인건비 부담을 보존해 주는 것이라는 얘기가 관가 주변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만약 부자증세로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존하는 것이라면 정부의 졸속 행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듯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은 사회적 합의와 소통을 통해 최소화해야할 구조적 문제이지, 정부의 퍼주기식 재정부담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세상공인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 주도성장을 위해 서민층 소득을 올리겠다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문제부터 메스를 가해야 한다.

실제로 농수산물유통구조와 프랜차이즈업의 경우 본사의 이윤착취, 편의점의 경우 본사 수수료 문제 등이 선결되지 않을 경우 현장의 영세상공인과 노동자들간 적은 파이(이윤)를 가지고 나눠먹기식 제로섬 게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구조다.

예컨대 농식품 유통마진율이나 임대료만 줄어도 음식점이나 분식점을 운영하는 영세상공인의 소득은 늘어날 수 있다.

가장 최근 나온 자료가 2012년 자료인 농협경제연구소의 ‘농식품의 유통마진율추이’를 보면 지난 2005년 기준 농식품의 유통마진율은 22.9%에 달했다. 이는 1980년대비 1.7배 높아진 것으로 2005년이후 12년이지난 현재기준으로 농식품유통마진율은 최소 30%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통계자료가 10여년전것밖에 없는 것은 농식품에 대한 전국단위의 유통마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해 1월 34개 농축산물에 대해 산지와 소비자판매가를 전수조사한 결과, 양파의 경우 농가에서 소비자에게까지 7단계(농가→생산자단체→산지유통인→도매시장 법인→중도매인→소매업체→소비자)를 거쳤다. 이 결과 농가에서 2Kg당 600원에 출고된 양파는 소비자에게 4200원에 팔렸다. 무려 600%(7배) 마진율인 셈이다.

임대료도 문제다. 소상공인에 대한 임대차보호법 손질없이 좋은 상권에서 소상공인이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은 물론 임대료부담에 영세업자가 가져갈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최저임금 상승이후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편의점 업주의 불만도 알고보면 본사의 높은 수수료 문제에서 기인한다. 편의점당 본사에 내는 수수료가 매출액에서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이윤에서 평균 65대35(65%가 편의점주 몫)수준인 상황에서 편의점주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결국 이익의 65%를 가지고 임대료와 아르바이트점원과 편의점주간 나눠먹기 제로섬 게임으로 다툼과 불만만 커질 뿐 이익의 35%를 수수료로 가지고 가는 본사의 이익은 줄지 않는 구조다. 

최저임금 인상이후 이 같은 ▲농축산품 유통마진율 ▲임대료 ▲본사 수수료 등을 해소하지 않고 정부의 재정 지원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처방에 불과하단 얘기다. 

주진형 전 사장 SNS도 눈여겨 봐야

때마침 새 정부의 경제 브레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은 지난 주말 자신의 SNS를 통해 새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과 오는 2020년까지 1만원 인상 계획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고 주장을 한 주체도 모호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화제를 모았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민주당의 국민경제상황실 부단장을 지냈던 그가 새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의 무책임성을 지적한 듯한 글이어서 세간에 관심이 컸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 일각에서는 “대선공약팀이 논의를 하고 대선후보자가 공약한 사항에대해 그것을 주장한 사람이 누구인지에대해 수뇌부 회의라면 모를까 대외적으로 공개해야 할 사안은 아니지 않냐”며, 또 “김 부총리의 후속대책은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 올 저소득 자영업자들이 겪을 수 있는 부작용에대해 선제적으로 정부가 해야할 역할을 다 하겠다는 조치로 해석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주 전 사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내 국가의 최저임금 산정기준대비 국내 최저임금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선 공감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말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48.4%이다. 중위임금이란 1인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한 줄로 나열한 후 정가운데 위치한 임금을 가르킨다. 이렇게 산출했을때 한국의 최저임금은 프랑스, 호주보다 낮지만, 독일(47.8%), 네덜란드(45.9%), 캐나다(44.5%), 일본(39.8%), 미국(35.8%)과 비교해서 낮지 않다.

게다가 지난 2013년 최저임금협상에 들어갈 당시 노동계는 '중위임금의 50% 법제화'를요구했었다.

내년 최저임금인상으로 이제 중위임금 50%는 뛰어넘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목표를 바꿨다. 사실 여기에 대한 뚜렷한 근거는 없다.

주 전 사장은 지난 21일 국제적으로 중위임금 기준 50%를 놓고 최저임금이 낮고 높음을 따진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를 질문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분을 영세상공인에 한해서는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채워줄테니 최저임금을 올려 놓고 보자식의 정부 정책보단 영세상공인의 소득이 줄고 있는 근원적인 병폐를 해소하는 다각도의 정책 입안이 중장기적으로 급선무일 수 있다.

정부의 부자증세에 대한 당위성도 명확해야 한다.

소득세·법인세 증세를 제안한 추 대표는 "마련된 재원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자영업자 재정 지원, 4차산업혁명 기초기술지원 등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서둘러 현안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돋보이지만 자칫 포퓰리즘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직후 부자증세 논의는 누가봐도 증세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메꾼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만큼 조금 돌아가더라도 속도조절에 나 설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