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연이어 나오는 상황에서 웨어러블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웨어러블 시장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지 않다는 점. 2010년대 중반부터 스마트밴드를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해 고가의 스마트워치로 빠른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현재 상황은 녹록치않다.

하지만 웨어러블 자체에 대한 수요가 여전한 상태에서 '드디어' 시장이 원하는 프리미엄 라인업 중심의 재편이 시작됐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그 중심에서 웨어러블 시장에 진출하거나, 혹은 발을 빼는 기업도 나오며 일종의 교통정리가 벌어지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 애플워치. 출처=애플

웨어러블과 증강현실의 오묘한 동거
인텔이 웨어러블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3년전 무려 1억달러를 투입해 베이시스를 인수하며 웨어러블 시장 진출에 열을 올렸으나 최근 관련 사업 부서를 해체했다고 CNBC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인텔은 웨어러블 인력 80%를 다른 부서에 배치했으며 선봉장으로 여겨지던 베이시스라는 브랜드 자체를 폐쇄했다.

칩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율주행차와 드론 등 다양한 하드웨어 사업과 협력을 이어가던 인텔의 행보를 고려하면 다소 급진적인 변화다. 초연결 시대가 등장하며 자사의 칩이 활용될 기회만 엿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칩이 사용될 수 있는 하드웨어 제품군을 의욕적으로 빨아들이던 인텔이다. 프로젝트 알로이를 통해 드론 경쟁력을 키우고 BMW와 협력해 '엔드 투 엔드' 방식의 칩 활용 로드맵을 세웠던 것은 인텔이 주도적으로 자사의 칩 라인업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핵심으로 끌어오겠다는 의지였기 때문이다.

인텔이 웨어러블 시장에서 철수하며 증강현실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진 대목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CNBC에 따르면 인텔은 웨어러블 사업부를 폐쇄하는 대신 증강현실 기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보는 프로젝트 알로이와 BMW와의 협업으로 확인된 인텔의 칩 활용 스펙트럼이 여전하다는 전제가 깔리는 가운데, 일종의 선택과 집중으로 해석된다.

재미있는 대목은 증강현실과 웨어러블의 콜라보가 가능하다는 점. 즉 웨어러블 기술의 다양한 경쟁력 중 하나가 바로 증강현실이라는 대목이다. '미래 컴퓨팅 기술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고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와 더불어 구글의 구글글래스가 좋은 사례다.

특히 구글글래스는 증강현실 시장에 거리를 뒀던 구글이 웨어러블의 가능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18일(현지시간) 자사 블로그를 통해 구글글래스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을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 7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의 전자기기 전파 인증을 받은 후 지난 6월20일(현지시간) 팜웨어 업데이트를 단행한 상태에서 전격적인 구글글래스 부활을 선언한 셈이다.  특유의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50개 영역에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웨어러블은 증강현실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인텔이 웨어러블 시장에서 철수했으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사의 칩 생태계를 키우려는 전략을 세웠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순간이다.

웨어러블은 이미 죽었을까?
웨어러블 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 비전의 측면으로 보면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지난 6월 자체 보고서를 통해 올해 웨어러블 기기 출하량은 1억2400만대에 달하며 이는 지난해 1억430만대와 비교해 20.4%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출하량은 향후 5년간 매년 평균적으로 18.2%씩 늘어난다는 것이 IDC의 주장이다.

시장재편도 보기에 따라 전혀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난 5일(현지시간) 웨어러블의 선두주자였던 핏비트의 몰락을 다루며 시장의 한계를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원조 스마트워치 패블을 인수한 후 극단적인 구조조정까지 겪었으나 핏비트의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논리다.

▲ 핏비트 스마트밴드. 출처=핏비트

하지만 핏비트의 성장정체를 웨어러블 시장의 한계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차라리 저가의 스마트밴드가 주도하던 웨어러블 시장에 스마트워치를 위시한 고가의 제품군이 진격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당신이 웨어러블을 구매할 경우 핏비트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제품을 구입해 기기 연동성을 추구하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글로벌 제조사의 기기 인프라와 쉽게 연동되고 활용될 수 있는 웨어러블 제품 중심으로 시장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스마트밴드를 중심으로 삼는 핏비트와 가민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애플이 웨어러블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에서 애플은 점유율 53%를 가져갔으며 삼성전자도 12.8%를 기록해 2위에 올랐다. 핏비트는 12.2%, 가민은 4.3%, 화웨이는 2.7%에 그쳤다. 애플은 애플워치만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타이젠이 탑재된 갤럭시S의 전략이 적절했다는 평가다. 기존 스마트폰과의 연동이 스마트워치 시장 확장에 영향을 줬으며, 그 연장선에서 스마트워치가 웨어러블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기본적인 초연결 시대의 흐름과 스마트헬스, 간편결제 시장이 열리는 대목도 고무적이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해 미국 스포츠의학회(ACSM)의 연례 설문조사를 인용해 "스마트헬스 시장의 핵심주력이 바로 웨어러블"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스타트업 헤일로 뉴로사이언스는 19일 피트니스 웨어러블 기기인 헤일로 스포츠를 국내에 출시하며 "두뇌를 자극해 운동능력을 신장시키는 등, 웨어러블과 스마트헬스의 교집합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헤일로 스포츠. 출처=헤일로

웨어러블의 핵심이 되고있는 스마트워치에는 대부분 간편결제가 탑재되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웨어러블 시장이 스마트폰에서 스마트워치로 넘어가는 일련의 과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로 지나친 기기 연동성은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대형 제조사의 스마트폰 연동이 주효했으며, 이는 단기적 관점으로 보면 시장 확장에 고무적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 끊어내야 할 관계'다. 스마트폰과 지나치게 연동되면 스마트워치를 단독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시장의 기술적 핵심인 센서 기술력도 중요한 과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센성 기술력이 각광을 받았으며 이러한 흐름은 온전히 스마트워치 주도의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김영훈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웨어러블 시장이 아직 만개하지 않은 지금이 웨어러블 센서 기술의 골든타임"이라며 "바로 지금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센서 기술이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발전하는가는 향후 웨어러블 시장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