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權力)

: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Tangled>는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실려 유명해진 독일 동화 <라푼젤>을 각색한 작품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공주 이야기는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푼젤이 아니라 ‘Tangled’를 제목으로 달았다(한국에서는 <라푼젤>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프로즌(Frozen)> 역시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각색했지만, 제목에서는 여성적인 느낌을 감췄다.

극중 마더 고델은 마법의 머리카락을 지닌 라푼젤을 유괴해 깊은 산 속 탑에 가둬 키운다. 라푼젤은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고델의 말을 그대로 믿고 18살이 되기까지 탑 안에서만 생활한다. 영화는 그런 그녀가 고델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쫓는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권력에 대한 드라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자와 그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려는 이의 대결이 서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지난 겨울과 올 봄, 권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런데도 의구심은 남는다. 권력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던 것일까? 권력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방식으로는 우선 ‘사법적 모델’이 있다. ‘권력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여기선 저 질문이 중요하다. 물론 저 답은 법이고, 틀린 말도 아니지만 이는 법이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망각하게 한다. 법이 권력을 정당화하지만, 그 이전에 법은 권력이 만든다.

‘제도적 모델’도 있다. 여기서 권력은 국가 제도와 동일시되고, 권력을 지닌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해진다. 악한 권력자를 몰아내고 선량한 이들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서사가 바로 이 모델에 근거해 구성된다.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자칫 국가의 전복이나 정권 교체 정도로 권력과 자유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군에서 성군으로의 교체는 생각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마더 고델과 라푼젤의 이야기는 보다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권력 관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극중 고델은 라푼젤을 향해 다음처럼 노래한다. “우리가 왜 이 탑에서 지내는지 알지? 그래, 맞아. 너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야. 무엇이 최선인지는 엄마가 잘 알아. 엄마 말을 들으렴.”(노래 ‘Mother knows best’ 중)

라푼젤을 18년 동안 성공적으로 지배한 고델의 권력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결정하는 힘, 그 삶을 강요하고 그렇게 살도록 하는 힘, 그 외의 다른 삶은 비정상적이고 위험하다고 인식하게 하는 힘, 삶에 대한 가치평가를 독점하는 힘,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권력이다. 말하자면, 권력은 지식이다.

가부장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아름다운 외모, 순종적인 태도, 가족을 위한 헌신 등이 바람직한 규범으로 제시된다. 그와 같은 규범을 내면화한 여성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여성답게’ 살아간다. 그렇게 사는 게 올바른 삶, 좋은 삶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라푼젤처럼. 탑 바깥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라푼젤이 딱하고 우습지만, 자신만의 탑 안에 갇혀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 있다.

“그래, 아주 똑똑한 아가씨가 다 됐어. 니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지.” 영화의 종반부에서 고델이 라푼젤을 향해 내뱉는 저 대사는 그의 권력이 지식의 독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실제로 라푼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고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디스토피아 사회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건 다음의 문구들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그리고 “무지는 힘”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예민하게 분석하는 노력만이 우리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한다. 오래된 격언처럼, 아는 것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