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러 가지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생기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울한 느낌과 함께 다양한 신체적 증상들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불편한 신체적 증상들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경과를 예로 들면 두통, 어지럼증, 기억력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우울한 기분이나 불안감을 동반하며, 더 나아가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을 만큼 그 증상이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단지 우울증과 동반된 다양한 신체 증상만을 해결받기 위해 정신과가 아닌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등을 더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적인 부분(우울 증상)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주로 신체적인 증상만을 호소하기 때문에 우울증과 관련한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10여일 전부터 지속되는 심한 두통을 주된 증상으로 내원한 50세 A 씨는 기운이 없고 식사를 잘 못하며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불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녀는 한 달 전 부인과 수술을 받았고 최근 집 주변 소음분쟁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뇌검사(MRI)는 정상 소견이었고 우울척도검사(벡우울척도검사)에서 51점으로 심한 우울(29점 이상이면 심한 우울증에 해당)의 소견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통에 대한 약물치료와 함께 항우울제를 함께 처방했고, 그 후 A 씨는 두통뿐만 아니라 우울증상까지 호전되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두통 이외의 증상은 본인이 스스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진을 통해 우울증에 해당하는 다른 증상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행히 적기에 우울증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울증은 신경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신경계 질환의 합병증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경과 대표질환 중 우울증이 동반된 빈도는 뇌졸중 30~50%, 파킨슨병 40%, 알츠하이머 치매 15~55%, 혈관성 치매 27~60%, 간질 20~30%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경과 질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많은 환자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지금까지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구마다 다르지만 한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인구 중 확실한 우울증은 600만명 정도이며 유력한 우울증은 1500만명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우울증 환자가 있으나 이 중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약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잘 반영해줍니다.

 

우울증 진단이 늦어지거나 제대로 치료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심각한 결과 중 하나가 자살입니다. 자살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입니다. 국내 자살률은 지난 10여년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1위이며 최근 4년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 치료율은 OECD국가 중 최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사망 원인 조사에 따르면 자살은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이고 40대, 50대 사망 원인 2위입니다. 이상의 결과는 자살의 중요한 원인인 우울증 진단과 치료율이 낮고, 병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에게 의사가 우울증과 자살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의사들은 다음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통해 우울증과 자살 생각에 대한 환자들의 대답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우울한 감정을 자주 느꼈는가?

지난 2주 동안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울증을 조기 발견해 치료율을 높이고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우울증을 주로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한 모든 진료과의 의료진이 우울증 발견과 치료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환자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병인 우울증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해 귀중한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개인과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