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분에 전시된 골리앗 워치. 출처=MOI 워치

업무 미팅이 있어 청담동 피엔폴루스로 향했다. 시간이 좀 남아 마이분에 들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쓱 훑어보다 시계 진열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괜찮은 시계 발견. 금빛 트레이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네 점의 해골 시계에 시선이 꽂혔다. MOI 워치? 무와 워치? 모이 워치?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직원에게 물었다. 정답은 엠오아이 워치.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정답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내게 직원이 한 마디를 더 건넸다. “국내 브랜드 제품이에요” 뭣이라? 우리나라에 이런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니.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서울 명일동에 위치한 MOI 워치 공방으로 찾아갔다. 이하는 MOI 워치 김한뫼 대표와의 일문일답.

 

▲ 올해로 8년째 MOI 워치를 운영중인 김한뫼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시계 산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시계 제작자를 만날 때마다 항상 반갑다. 어쩌다 시계와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기계를 좋아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시계로 점철된 건 부모님의 시계 덕분이다. 부모님께서 결혼하실 때 세이코 탁상시계를 선물로 받으셨다. 세월이 흘러 고장 난 시계를 고치면서 시계의 구조와 형태에 흥미를 느꼈다. 군대에서도 일과가 끝나면 시계 수리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다. 시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모아 2009년에 MOI 워치를 설립했다. 가장 먼저 파일럿 워치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배울 것은 배우고 개선할 것은 개선했다. 사비를 털어 바젤월드도 가보고 해외 시장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고 감이 오더라. 그렇게 2014년 1월부터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깨달음을 준 특별한 계기가 있나?

스위스 시계 학교에 가봤다. 스위스엔 시계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많다. 형태도 다양하고, 커리큘럼도 체계적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생산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학교를 졸업한다. 다시 말해, 스위스에선 매년 수 십 명의 수준급 워치메이커가 탄생한다는 소리다. 이걸 깨달은 순간 든 생각이 있다. ‘시계 비즈니스를 할 때 스위스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되겠구나’ 1970년대 세이코가 던진 쿼츠 파동과 같은 진지한 방법이 아닌 이상 무브먼트 개발로 스위스를 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판단했다.

 

▲ 김한뫼 MOI 워치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돌파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이얼이다. MOI 워치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기계식 시계 브랜드들이 다이얼에 투자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스마트 워치 홍수 속에서 기계식 시계가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은 장인 정신과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다이얼 개발이다.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율리스 나르당 등 유수의 시계 브랜드들이 에나멜 다이얼을 만들고, 장인의 손길이 녹아든 에나멜 시계가 비싼 가격에 팔리는덴 이유가 있다. 다이얼을 제외한 시계의 모든 파트 중 스마트 워치를 이길 수 있는 요소는 없다. 스마트 워치에 사용되는 케이스와 스트랩은 기계식 시계와 다를 바 없고, 스마트 워치가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한 시간을 전하지만 스마트 워치의 다이얼은 결국엔 새카만 화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MOI 워치 다이얼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지

나전칠기 다이얼이다. 남들에겐 없지만 우리에겐 있는 것에 주목했다. 고민 끝에 한국 전통공예 기법인 나전칠기와 옻칠을 시계 다이얼에 접목했다. 나전칠기 다이얼의 가장 큰 매력은 천연 자개 고유의 빛깔과 뛰어난 보존성이다. MOI 워치의 나전칠기 다이얼 시계는 시계 하나하나가 유니크 피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개마다 품고 있는 빛과 패턴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연 옻으로 마감한 덕에 열과 습도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천 년 전에 만든 선조들의 나전칠기가 오늘날까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제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시작이 쉽진 않았다. 인간문화재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도 당해보고, 완성도 높은 다이얼을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첫 번째 관건은 다이얼 두께를 줄이는 것이었다. 시계 다이얼은 두께가 중요하다. 다이얼 위에 시침과 분침을 꽂아야 하기 때문에 다이얼이 두꺼우면 시계를 조립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다이얼 위에 자개도 얹어야 하고, 옻칠도 여러 번 해야 하니 필연적으로 다이얼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질기게 연구하고 시도를 거듭했다. 그리고 인고의 열매는 달았다. 옻이 자개를 품고 있는 형태의 다이얼을 제작하는 데 성공한 것. 다이얼 표면을 만져보면 자개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게 아니라 높이 차 없이 평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이얼 두께를 줄이면서 코팅을 더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내구성 또한 강화됐다. 외부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못과 망치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 2017 바젤월드의 ARTYA 부스 전경. 출처=MOI 워치
▲ ARTYA와의 컬래버레이션 워치, 선 오브 아트 머더 오브 펄(Son of Art Mother of pearl). 출처=ARTYA

2017년은 MOI 워치에게 의미 있는 해다. 바젤월드에 참가했고, 분더샵과 마이분에 시계를 론칭했다. 성과를 이룬 과정과 소감이 궁금하다

지난해 이반 아르파(Yvan Arpa)로부터 컬래버레이션 제의를 받았다. 처음엔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 그만큼 행복했다. 이반 아르파는 스위스 독립 시계 브랜드 ARTYA의 대표이자 세계적인 시계 디자이너다. 국내에서는 삼성 기어S3의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논의 끝에 올해 바젤월드에서 총 다섯 종류의 시계를 선보였다. 출품한 시계는 현재 전부 완판된 상태. 심지어 박람회 기간 중 시계를 사간 러시아 사람도 있었다. 이반 아르파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해 상당히 뿌듯했다.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에서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둔 게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여세를 몰아 분더샵과 마이분에 MOI 워치 이름을 달고 골리앗 워치를 론칭했고, 반응도 좋은 편이다.

 

지금까지 제작한 시계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시계 딱 한 점을 꼽자면?

골리앗 워치. 지금 팔고 있는 시계라서 그런 건 아니다 (하하).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시계다. 다이얼 개발에만 3년이 걸렸다.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해골 디자인의 시계를 만들고 싶었는데, 해골 특유의 악마 같은 느낌은 싫었다. 그러다 문득 골리앗이 떠올랐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스케치 작업에 돌입했다. 직접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완성된 시계라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간다.

 

2018년 바젤월드 출품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독자들을 위해 신제품에 대해 살짝 귀띔해줄 수 있는지

투르비옹 다이얼이 두 점 추가될 예정이다. 힌트는 해골과 장미.

 

▲ 김한뫼 대표가 골리앗 워치를 차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시계 제작자가 차는 시계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지금 차고 있는 시계는 무엇인가?

당연히 MOI 워치다. (하하) 골리앗 워치를 차고 있다. 가죽 스트랩은 브레이슬릿으로 교체했다. 덥고 습한 여름엔 가죽 스트랩보다 브레이슬릿이 편하니까.

 

끝으로 국내 시계 제작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현재 일본 워치메이커 두 사람이 독립 시계 제작자 협회(AHCI)에 소속되어 있다. 하지메 아사오카(Hajime Asaoka)와 마사히로 키쿠노(Masahiro Kikuno)인데 그들이 AHCI의 정식 회원인 게 부러운 게 아니라 이들을 키워낸 일본의 현실이 부럽다. 일본에선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제품이 어느 정도 내수 판매가 된다는 말인데 우리나라는 예물 시계 시장만 강화된 점이 안타깝다. 우리나라도 보다 다양한 시계 브랜드가 살아남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

▶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공식 포스트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N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