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이 병탄한 대한민국의 대마도와 아이누족의 홋카이도와 류큐제국의 오키나와가 반환되지 않고 패전국 일본의 지속적인 병탄의 결과물이 되었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전쟁 도발 당사국 중 하나인 일본이 속해있는 아시아에 소위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힘에 의해서 영토가 정의되던 논리가 몰아 닥쳤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본 혼자서 일으킨 것도 아니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함께 일으킨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아시아만이 아직까지도 그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서세동점이라는 힘의 논리에 의한 국경 확정에 의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홋카이도 문제를 살펴보려면 홋카이도라는 섬 하나만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누족은 원래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는 물론 사할린에 걸쳐서 분포하며 흑룡강 유역과 캄차카 반도까지 교역하며 생활했던 민족이다. 따라서 관련된 섬들 모두에 관한 이해관계를 분석해 보는 것이 올바른 영토해석을 할 수 있다.

쿠릴 열도는 지금도 러시아와 일본이 영토권 다툼을 하고 있는 섬이다. 아이누족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배제한 채 남의 영토를 강탈한 강도들끼리 서로 제가 먼저 훔친 물건이라고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16~17세기 쿠릴열도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855년 일본과 시모다에서 영토 분쟁을 조정한다. 쿠릴 열도에서는 이투루프와 우루프 섬 사이를 러시아와 일본의 국경으로 하며, 사할린은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875년에 두 나라는 공동 관리하던 사할린을 러시아의 영토로 하는 대신에 일본이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코앞에 있는 슘슈까지 쿠릴 열도를 차지한다는 내용의 사할린-쿠릴 교환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1945년 8월 러시아에 점령되었고,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사할린과 쿠릴 열도는 러시아에 귀속되었다. 정작 주인인 아이누족은 배제한 채 힘 있는 침략자들끼리 영토조정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일본으로부터 홋카이도를 독립시켜 아이누족에게 반환하려면 러시아 역시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아이누족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가 서게 된다. 승전국인 러시아는 당연히 그리 할 의지가 없었고 결국 자신들이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차지하기 위해서 패전국인 일본이 홋카이도를 병탄한 채 가는 것을 묵인한 것이다.

류큐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오키나와 역시 마찬가지 논리다. 다만 주체가 되는 승전국이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으로 바뀔 뿐이다. 미군이 처음 이 섬에 상륙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5년 4월 1일이고, 그해 6월 이 섬을 점령할 때까지 이 지역 건물의 90% 이상이 파괴될 정도로 두 나라의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하여 미국의 대규모 군사시설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류큐제도는 미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0년 미국은 류큐제도에 자치권을 주고 1953년 류큐제도 북부만을 일본에 반환하였다가 1972년에는 자치권을 회수하여 모두 일본에 반환하였다. 그것은 류큐를 독립시키는 것 보다는 패전국인 일본에 귀속하게 둔 채로 자신들의 군사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미국은 항공교통의 요충지인 오키나와 남부에 가데나[嘉手納] 항공기지 등 대규모 군사시설을 갖추어놓고 계속 주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