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 비영리 단체 컨슈머리스트(Consumerist)가 지난 5월 흥미로운 소식을 알렸다. 아마존의 바나나 스탠드가 그 주인공이다.

갑자기 무슨 바나나일까. 컨슈머리스트에 따르면 아마존은 본사가 있는 시애틀 인근에 무료 바나나 스탠드 두 곳을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무료로 바나나를 제공하는 것이며 일종의 공공 서비스라는 설명이다. 지난 5월 기준 무려 170만개 이상이 소비됐으며 지금은 근처 사람들이 모두 애용하는 일종의 핫플레이스가 됐다는 후문이다. 존 쇼얼러 아마존 부사장은 “의료법이 정하는 한도에서 바나나는 물론 오렌지까지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이 왜 갑자기 바나나를 무료로, 그것도 매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론의 질문에 아마존은 ‘공공 서비스의 일환’이라는 대답만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별개로 한 가지 재미있고 파괴적인 현상은 보인다. 바로 주변 상권의 변화다.

▲ 아마존 바나나 스탠드. 출처=캡처

일단 바나나 스탠드가 생기자 사람들 입장에서 매일 바나나를 공짜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식료품점에서 굳이 돈 주고 바나나를 살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자 손님을 잃은 주변 식료품점들은 최악의 경우 문을 닫거나 바나나를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컨슈머리스트의 설명이다.

대신 주변 카페들이 움직였다. 이들은 무료 바나나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바나나 껍질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매장에 휴지통을 비치해 손님을 유인하는 한편 바나나맛 음료를 개발하는 등 메뉴에 변화를 줬다. 또 바나나와 간단하게 곁들일 수 있는 음식 메뉴를 정하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챙기려는 사람들이 아마존의 무료 바나나를 들고 다니자 근처 유제품 매장이 때 아닌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바나나와 야쿠르트를 함께 먹으면 맛이 더욱 좋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운영하는 바나나 스탠드가 졸지에 인근 상권을 바꿔버린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바나나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제프 베조스. 출처=위키디피아

“A부터 Z까지… 다 나의 것”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에서 출발해 문어발 확장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공포에 휘말려 주가가 폭락하는 등 ‘죽을 날만 받아놨다’는 비아냥이 한때 업계를 휘감았으나 지금 아마존을 가볍게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올해 초 미국의 IT 매체 <복스>는 “구글은 온라인 서비스에 특화되어 있으며 애플은 하드웨어 부분에서 강세다”라며 “하지만 아마존은 작은 회사들의 기업가 문화와 대형 회사의 재정 자원이 결합되어 커다란 하나를 이루며 탄생했다. 그들의 방식이 다른 회사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피해 성공할 수 있게 이끌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어떤 기업일까. 전자상거래 기업이지만 클라우드 ICT 회사이며 심지어 가전기기 판매업체다.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을 하나의 생태계로 몰아 빠져나올 수 없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회사. 그 안에서 A부터 Z까지 제공하는 괴물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아마존의 로고가 정해지는 순간 결정된 운명이다.

조직문화부터 알아야 한다. 아마존의 조직문화는 ‘성공을 위한 질주’다. 2002년 제프 베조스가 사내에 ‘두 개의 피자 팀(Two-Pizza Teams)’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피자 두 개를 먹을 수 있는 10명 수준의 팀을 꾸려 자유롭게 사업을 전개하라는 뜻이지만, 그 의지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라왔다. 성과 달성 여부는 ‘적합성 함수(Fitness Functions)’라는 명확한 실측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100번의 시도 중 90번을 실패해도, 큰 줄기로 보면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그 중심에서 독단적인 CEO의 행동은 종종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조직문화를 토대로 아마존은 차근차근 전사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핵심은 전자상거래와 IT적 측면에서 시작됐다.

현재 아마존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를 운영하며 미국 시장 점유율 43%를 장악하고 있다. 막대한 이용자의 데이터와 판매자의 콘텐츠가 이동하며 거대한 장터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마존을 이해하려면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바로 빅데이터와 내부 플랫폼을 휘감는 강력한 콘텐츠 파워. 그 자체로 아마존 월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실질적인 ‘돈’이 움직이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장악한 상태에서 취급품의 범위를 전자책에서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확장했다. 최근에는 인도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등 외연 자체를 크게 늘리고 있다.

다음은 아마존 생태계 강화다. 아마존은 세계 최대 클라우드 업체인 AWS를 운영하며 초연결 시대의 데이터 처리를 책임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가 만든 클라우드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와 구글을 압도하는 묘한 광경이다. 원래 AWS는 장사용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마존의 트래픽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했으나, 비쇼핑 시즌이 되면 남아도는 AWS를 수익사업으로 돌리기 위해 다른 사업자에게 서버를 빌려주며 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클라우드가 아마존 생태계에서 일종의 ‘백(Back)단’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얼개라면 이를 바탕으로 플랫폼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장치들을 구축하는 장면은 실질적인 전략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비록 실패했으나 파이어폰과 같은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대시를 통해 버튼형 구매 사용자 경험을 완성한 부분이 여기에 포함된다. 드론을 통해 배송기술을 고도화하고 해운과 항만을 움직이는 막강한 규모의 경제도 보여준다. 창고에는 물류로봇 키바가 움직이고 증강현실 도입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 아마존 대시. 출처=아마존

미국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선점한 알렉사의 에코는 자체 생태계 구축의 핵심이다. 최근 HTC에도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가 탑재되는 한편, 다양한 분야의 시장개척 첨병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공지능 자체가 인터페이스 혁신으로 여겨지며 음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술을 차용하는 상황에서, 알렉사의 에코는 거실을 장악한 후 스마트홈의 미래까지 단숨에 나아갈 수 있는 핵심 키워드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온디맨드 연동을 추구하는 한편 LG전자 가전 인프라와 연결되기도 한다. 아마존 프라임 고객을 위한 아마존 뮤직 무제한 프라임 뮤직(Amazon Music Unlimited & Prime Music)도 연동되며 최근에는 전자제품 설치사업에도 진출했다.

▲ 아마존 에코. 출처=아마존

아마존 비디오는 스트리밍 서비스적 측면에서 넷플릭스와 동일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플랫폼을 구축한 후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화하는 등, 넷플릭스와 훌루 등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페이스북 메신저 대항마로 불리는 애니타임이 개발되어 메시지 앱 시장에 진출한 것도 동일한 설명이 가능하다.

아마존고의 기술력과 오프라인 아마존 서점의 개소 등은 생태계 강화의 2차 전략, 즉 온·오프라인 파괴공작으로 해석된다. 지금까지의 아마존이 전자상거래에 기반을 둔 상태에서 ICT 기술적 측면에서 이용자가 빠져나갈 수 없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 이제는 오프라인 사용자 경험에 온라인 방식을 이입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마존고는 번거로운 계산이 없이 물건을 들고 매장을 나오면 바로 결제가 진행된다. 오프라인 아마존 서점은 온라인에서 느낄 수 있는 아마존 사용자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 일종의 온·오프라인 체험공간으로 풀이된다.

▲ 아마존고. 출처=아마존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아마존 프라임 옷장은 옷을 구매한 후 실제로 입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주일 내에 반송하는 시스템이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옷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삭제하는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에 그대로 가져왔다.

애플과 이케아가 협력해 증강현실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거래할 물품을 실제 현장에 가상으로 이입하는 기술이 나오고 있지만, 아마존은 아예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끌어왔다.

그 정점이 아마존 프라임이다. 최근 가입자만 8500만명을 돌파했으며 이들은 1년 연회비 10만원을 꼬박꼬박 내며 연 평균 130만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종의 멤버십 제도인 아마존 프라임은 유료로 이용되지만 이용자들을 확실하게 잡아둘 수 있는 핵심 콘텐츠로 작동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료 구독권도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방식이 아마존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용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 2015년 공개된 아마존 증강현실 특허. 출처=페이턴틀리

오프라인 수직계열화… 결말은?

전자상거래와 IT적 관점에서 아마존이 보여준 다양한 경쟁력은 하나의 목적. 즉 생태계 강화다. 이용자들이 습관적으로 아마존을 선택하고 아마존 내부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아마존닷컴에 접속해 정보를 검색하면 거실의 알렉사가 알아서 물건을 추천한다. 혹은 주방에 비치된 대시 버튼을 눌러 습관적으로 아마존 플랫폼에 올라타는 셈이다. 배송은 드론이, 항만이, 항공이 책임지고 배송 콘트롤타워는 대도시의 주요 거점이다. 모두가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며 기업고객은 AWS를 이용한다.

이러한 생태계 강화전략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동일시되는 것이 아마존고의 승부수다. 하지만 최근 아마존은 여기에 하나의 키워드를 더하는 분위기다. 바로 오프라인 수직계열화다. 아마존은 최근 미국의 신선식품 회사인 홀푸드를 137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캐나다, 영국에 매장 460여개를 둔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는 아마존 프라임의 약점이던 신선식품 시장 경쟁력 확보가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프라인 거점 확보가 더 의미 있다.

여기에 아마존고에 응용되는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기술이 적용되는 점이 중요하다. 생태계 강화에 있어 오프라인 거점을 확보해 아예 시장을 자사의 플랫폼으로 채우겠다는 뜻이다. 의약품 시장 진출도 마찬가지이며 그 외 오프라인 브랜드를 속속 인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 아마존 의류 온디맨드 개요도. 출처=디지에코

정리하자면 아마존의 전략은 전자상거래의 데이터를 활용한 강력한 플랫폼 구축, 생태계 강화를 위한 ICT 인프라 확장에 이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파괴하며 아예 거점을 양쪽에 모두 마련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만약 아마존의 승부수가 먹힌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아마존 월드의 백성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서두에 설명했던 바나나 스탠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사실 바나나 스탠드 전략이야말로 아마존의 전략을 제대로 보여주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바나나 스탠드는 공공사업의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변 상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바나나’라는 아이템을 규모의 경제로 시장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하는 마법 같은 장면이다.

특정 회사가 시애틀 거리의 상권을 변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퍼붓는다고 현재와 같은 바나나 스탠드 효과가 있었을까? 아마존은 아침을 거르는 시애틀 현대인들의 ‘열망'을 파악하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공공의 개념’으로 시장의 규칙을 바꿨다. 그리고 카페는 메뉴를, 식당은 바나나 껍질을 버릴 수 있도록 휴지통을 비치하게 만들었다.

바나나 스탠드는 아마존이 가진 파괴적 교란 DNA를 잘 보여준다. 월마트가 제트닷컴을 인수해 전자상거래 시장을 정조준한 상태에서 이미 아마존은 전자상거래를 벗어나 총체적 온·오프라인 플랫폼 기업으로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판을 바꾸는 기술이다. 경쟁자가 비슷한 실력으로 도전하면 이에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떠나버리는 방법.

지난해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 제프 베조스의 동종업계 종사자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알리윈 컨퍼런스에서 “전자상거래라는 단어는 신유통이라는 단어로 변할 것”이라고 예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파괴적 교란 후 시작되는 시장 재구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 아마존 오프라인 상점. 출처=픽사베이

물론 아마존에도 리스크는 있다. 온·오프라인 사용자 경험을 모두 아우르는 매력적인 생태계가 시장에 완전히 자리를 잡으려면 말 그대로 A부터 Z까지 모두 매력적인 플랫폼과 콘텐츠가 채워져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온라인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오프라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가 없다는 점도 약점이다.

나아가 유럽연합의 구글 과징금처럼 시장 독과점을 경계하는 각국의 방침에도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7월 1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로 전미식품상업노동조합(UFCW)이 독과점 규제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인수합병 조사를 검토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단적인 비유는 무리지만 4차 산업혁명이 오기 때문에 고용보장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비슷한 분위기다. 소소한 이슈일 수 있으나 아마존이 감내해야 할 리스크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