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푸상무 이야기> 프랭크 에이렌스 지음, 이기동 옮김, 프리뷰 펴냄

 

미국 <워싱턴 포스트> 기자로 일하던 프랭크 에이렌스는 한국으로 와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홍보 부문 상무로 일을 시작하면서 ‘푸상무’라고 불리게 되었다. 라틴어인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운 탓에, 한국의 문화 특히 호칭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이렇게 정해지기까지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쳤다.

그에게 생소했던 것은 비단 호칭 문화뿐만이 아니다. 전직 저널리스트답게 그는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서술한다.

‘사실상 한국의 국교라고 할 수 있는 유교의 가르침은 한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한국으로 일하러 오기 전에 나는 백인 미국인들이 아시아에 대해 가진 전형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다. 아시아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착한 학생이고, 얌전하고 내성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중략) 실제로 현대에 출근하고 첫 일주일 동안 나는 사무실이 너무 조용한 것을 보고 놀랐다. 직원들 대부분 자기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회의 때도 얌전히 모여 앉아 있었다. 책상 모서리에 모여 업무와 관련 없는 잡담을 하는 일도 드물고,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처럼 사무실에서 동료들끼리 떠들썩하게 친밀감을 나누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업무가 끝난 금요일 저녁에 십여 명의 코리언 파티 애니멀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느슨한 미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근무시간 중 사무실에서의 행동과 근무시간 후의 행동이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중략) 두 시간에 걸친 축제가 끝나고 나서 우리 부부는 그게 그날 저녁 축제의 1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자신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언론계를 떠나 첫 번째 일자리를 GM이나 포드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으로 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나는 우선 기술적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장점들은 분명히 갖고 있었다. (중략) 또한 현대차는 나를 채용함으로써 자기들이 글로벌 기업임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었다. 내 자리는 어느 정도 전시용이었고, 나도 그걸 알고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현대 행을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입사 후 2주 만에 자신의 업무를 파악한 그는 해외의 자동차 전문 기자들에게 ‘일한 지 2년은 된 것 같다’는 칭찬을 받는다. 한국과 현대차그룹, 저자 자신은 모두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현대차가 미래전략에 시동을 거는 시점에 대한민국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심각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준 바로 그 방식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단기간에 걸쳐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경제 대국, 가장 스마트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이처럼 세계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이룬 급속한 산업화는 경쟁사회를 만들어놓았다.’

‘부모들은 매달 수십만 원을 들여서 아이들을 밤 10시까지 하는 학원에 보낸다. 아이들은 대입수능시험을 치르고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 외모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성형수술에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고,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꾸 뒤처진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리고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의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은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는 기분을 갖게 되었다. (중략) 필요한 절차를 무시하고, 수익만 극대화하려는 일처리가 낳은 비극이었다. 그 덕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또한 그 때문에 세월호 비극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와 미국의 그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낯선 유교문화의 나라에서 겪은 유쾌한 문화적 충돌과 한국 재벌기업의 치열한 사무실 문화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는 미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추천사가 슬쩍 웃음 짓게 만든다.

‘한국 기업들은 업무 시간이 길고, 오너들의 요구사항이 많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전반적인 업무 분위기 면에서는 애플이나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과 현대차 모두 최종 결정권을 가진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기업을 이끈다. 두 기업 모두 직원들에게 높은 성과를 내고 장시간 일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가급적 오래 회사 안에 머물고, 경쟁 기업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당부하는 독특한 사내 문화를 갖고 있다. 그리고 애플과 현대차 모두 성공한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