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유통사업 부문의 이커머스(E-commerce)영역 진출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아주 강하다고 한다. 신 회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소비자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을 넘나들며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인 ‘옴니채널(Omni-Channel)'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는 롯데의 이커머스 진출과 관련해 수많은 ‘설’들이 나돌고 있지만  가시화한 변화는 거의 없다.     

롯데가 온라인을 ‘주목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의 이커머스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글로벌 유통업계의 변화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만큼 논의된 지 오래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지난 4월 6일까지 폐점한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 점포 수는 2880개로 기록됐다. 131년 역사를 지닌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기업 시어즈(Sears)는 올해 말까지 150개의 오프라인 지점을 폐쇄할 계획이다.

 백화점 체인 JC페니(JC Penny)도 올해 미국 전역에서 138개 매장의 문을 닫는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현재의 추이를 고려할 때 미국에서는 올해에만 약 8600개의 유통 점포들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유통 대기업들이 점포를 폐점하는 주된 원인은 ‘실적 악화’다.

반면, 미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Amazon.com)은 국내·해외에서 승승장구하며 ‘유통 공룡’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아마존 재팬은 일본 진출 17년 만에 연간매출 1조엔(약 10조원)을 기록하며 일본 유통업계 전체 순위 6위에 올랐다.  인도에서도 아마존 인디아는 온라인 쇼핑몰 2위에 올라 있다.  

▲ 출처= 아마존 재팬

이 같은 일련의 변화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에게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거기에 2010년 이후 연간 20%가 넘는 성장을 기록한 국내 온라인 마켓의 무서운 성장세를 감안하면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시화한 변화들은 한국 유통업체들에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17일 “우리나라의 유통업계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온라인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완전 재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이러한 변화들은 몇 년 이내에 직접 마주할 것이며 각 유통업체들은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와 이커머스의 연결고리    

롯데는 신 회장이 옴니채널을 지난 몇 년 동안 강조한 덕분에  이커머스 시장에 꾸준하게 관심을 보여왔다. 유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몇 년 전 이커머스 기업 이베이코리아가 자사 오픈마켓 ‘옥션(Auction)’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업체가 롯데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캐피탈’이었다.

그 이후 롯데는 경쟁업체인 신세계와 SK플래닛의 오픈마켓 11번가의 유력한 인수업체로도 거론되기도 했다. SK플래닛 서성원 대표가 직접 “분사 후 매각은 없다”고 밝혀 일단락됐지만  롯데는 신세계와 함께 11번가의 유력한 투자업체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SK플래닛 관계자는 “향후 11번가 운영의 발전적 방향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논의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어떤 업체와 무슨 논의들이 오고가는지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롯데 측 역시 “유통 실무자들간 논의는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그룹 차원에서 11번가에 대한 매각이나 투자에 대해 진행되는 논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롯데가 망설이는 이유  

신동빈 회장의 강력한 의지와 업계의 변화를 고려할 때 롯데의 이커머스 진출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힌 현실적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현재 롯데의 주요 유통 계열사들인 롯데백화점(엘롯데), 롯데홈쇼핑(롯데아이몰), 롯데닷컴, 롯데마트몰, 롯데슈퍼(롯데슈퍼몰)는 거의 모두 각 채널별 종합 온라인 몰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이 매각이나 투자로 이커머스라는 온라인 마켓의 큰 카테고리에 진출한다고 하면 각 온라인 몰들의 활용은 상당히 애매해진다. 신세계 SSG처럼 각 계열사의 온라인 몰을 하나로 묶는 공통 플랫폼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많은 돈을 들이는 인수나 투자가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수나 투자를 위한 이커머스 기업의 가치(밸류에이션) 측정도 문제다. 국내 이커머스의 성장세가 절정에 이른 2010년대와 현재는 다르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업체는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옥션밖에 없다. 나머지 이커머스 업체들은 ‘모두’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커머스 업체의 기업가치 평가는 2015년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약 1조원)를 투자받은 일이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쿠팡의 기업 가치는 50억달러(5조원) 정도로 평가받았다. 이것을 감안할 때, 나머지 이커머스 업체들의 기업가치는 최소 2조~3조원대 또는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계속해서 손실을 내고 있는 이커머스 업체의 실적은 롯데가 많게는 수 조원에 이르는 돈을 들여 매입을 추진해야 할 근거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서  “글로벌 유통업계의 변화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반영되겠지만 국내 이커머스는 제한된 수요 탓에  출혈경쟁으로 이미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어 투자 매력은 상당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 구글 신사업 총괄책임자 모 가댓(Mo Gawdat)과 1:1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출처= 롯데그룹

신 회장은 지난 5일 구글의 신규사업 개발 총책임자 모 가댓(Mo Gawdat)을 초청해 독대했다. 이를 두고 업계의 많은 이들이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그 중 가장 힘이 실린 해석은 신  회장이 구상하는 신사업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신 회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SSG로 온라인 분야(이커머스 영역은 아니지만)에서 한 발짝 앞서나간 경쟁업체 신세계를 바라보고만 있을 롯데가 아니다. 그러나 이커머스 업계의 현실적 문제들은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있음에도 마지막 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롯데 유통사업부문 관계자는 "롯데는 앞으로 유통업에서 온라인 마켓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확대될 것을 대비해 온라인 몰에서의 인공지능(AI) 검색, 대화형 커머스 등 기술적 요소들을 보완하고 있다"며 "이커머스 인수나 대규모 투자 같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현재 운영 중인 유통부문 7개 계열사 온라인 몰들을 특화함으로 유통에서 온라인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들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도 오프라인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국내 유통업계도 글로벌 흐름을 따라간다면, 수 년 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세계는 SSG로 온라인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먼저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롯데는 변화를 위한 결정을 미루고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는 곧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