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영국의 토머스 그레셤이 엘리자베스 1세에게 편지를 보냈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그 편지를 보내게 된 이유는 금융가이자 정부 재정고문관이었던 헨리 8세가 화폐의 물리적 가치를 낮춤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었는데, 은 함량을 줄인 은화를 발행해서 남은 은에서 얻은 이익을 재정에 보충하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양화 즉 순은으로 된 은화는 집에 쌓아 두고 악화 즉 은 함량이 줄어든 질 낮은 은화만 사용했다.

이런 사례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화폐 유통량이 부족해지는 전황 때문에 당백전을 발행했다. 당백전의 명목가치는 기존 화폐인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실질가치는 그보다 현저히 낮아서 겨우 5~6배에 불과했다고 한다. 백성들이 상평통보를 선호해서 상평통보는 양화, 당백전은 악화로 여겨졌고, 상평통보는 꽁꽁 숨겨두고 당백전만 사용했다. 이런 현상은 화폐가치의 하락을 초래했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조선왕조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양화를 구축하는 악화, 우리 주위에 흔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전의 10원짜리 주화는 제조하는 데만 38원이 들어갔고, 성분이 65%의 구리와 35%의 아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전을 대량으로 녹여서 구리로 만들어 팔면 화폐가치보다 더 큰 이익을 얻었다. 실제로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주물공장에서 동전을 녹여 동괴로 만들어 팔았다. 전국 은행들을 돌면서 10원짜리 동전 960만개를 모았는데, 이를 녹여 판 금액은 9,600만원이 아니라 그보다 1,67배나 되는 1억6,000만원이었다. 동전 원자재 가격이 2.5배 더 높았기 때문에 10원짜리가 동전이었을 때는 그대로 10원이지만, 녹는 순간 그 가치가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발생된 범죄였다.

불법으로 다운 받은 음악이나 영상물을 돌려본다면 결국 비싼 돈 주고 음악이나 영화를 사거나 관람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 중고차시장에 중고차를 내 놓을 때 비교적 상태가 좋은 차량은 따로 보관하고 상태가 좋지 못한 차량들 위주로만 거래하게 된다면 거리에는 불량 차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삼청동에서 몇 년 살았던 적이 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 곳인데, 예전 2008년 무렵 거기 살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는 않았다. 그곳의 인기는 골목골목 자리하고 있던 특색 있는 가게들로부터 시작됐다. 구경하면서 시간 보낼 곳도 많았지만 작고 아담한 가게와 싸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덕분에 몇 년 새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턱없이 높아진 임대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점포들 대부분 저렴한 부동산 시세를 찾아 흩어졌고 그 자리엔 대기업 매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지역 특색이 사라져 갔다.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를 접속하면 관심을 끌만한 연예인, 스포츠, 아니면 대기업 관련 뉴스들로 넘쳐난다. 어느 연예인이 전날 방송에서 화제성 있는 발언이라도 하면 다음날 미디어는 끓어 넘친다.  내용이 거의 같은 기사들이 수십 개씩 쌓여있다. 이미 나온 뉴스를 미디어들은 확대 재생산하는 데에 시간과 인력을 투자해 다양한 양질의 뉴스가 자리할 수 없도록 구축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자발적 이직도 결국 커뮤니케이션 때문

수년간 이어진 불황의 여파로 경영악화나 정리해고 등 비자발적인 사유 때문에 이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결과 2016년 3월 기준으로 일거리가 없거나 사업장 경영의 악화로 이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 무려 14만1,000여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만명이나 증가했다. 2월에도 이러한 이유로 이직한 사람은 10만3,000명이나 되고 1년 전보다 3만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라 한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나고 있는 자발적 이직이다. 비자발적 이직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이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직 사유의 첫 번째가 인간관계다. 직장 내 인간관계의 90%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이며 이런 배경에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대두된다. 연봉은 성에 차지 않고 일은 늘어 가는데 능력 없는 상사는 부하직원들을 힘들게만 하는 구조라 이직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릇된 사람과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이 양화인 인재를 구축하게 된다.

이직률이 높기로 소문이 난 한 회사가 있었다. 일이 특별히 어렵거나 많은 것도 아닌데,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두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있었다. 그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도 있긴 있었다. 회사는 여러모로 사업을 확대하며 덩치도 키우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쓰기 위해 데려왔으나 회사 분위기는 몇 년이 지나도록 개선은커녕 악화되기만 했다.

새로 입사 한 사람들은 임원이든 경력직이든 할 것 없이 회사와 업무와 사람들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임했지만 기대는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무너졌다. 다들 첫 출근 날, 모든 사람들의 어둡고 무거운 표정을 의아했지만, 몇 개월 만에 그들과 다름없는 얼굴이더라는 것이었다.

 

사소한 결정으로 체면 세워 주기가 인재를 내몬다

이유를 들어보니 상황이 충분히 짐작 되고도 남았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전문가이든 경력직이든 간에 그들의 능력이 어떤 지는 상관없이 조직은 지금까지 제멋대로 운영되어 오던 방법 그대로를 강요했다. 조직이나 사람들 마다 가치관은 서로 다른 법이어서, 한 회사에서 중요하고 당연한 사안도 다른 회사는 부수적인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조직은 그들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반면 사소한 일에는 최고경영진부터 웬만한 사람들이 다 관여했다.

사소한 것일수록 최고경영진의 재가를 받아야 했단다. 아무리 사소해도 다른 사람은 일체의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시작 단계부터 일일이 최고 경영자의 의사를 물어야 했다. 사람들이 지치는 것이 당연했고, 처음부터 거기에 길들여져 있던 몇몇만 계속 인정 받고, 나머지는 시간이 갈수록 등한시 되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조직을 기형적으로 만들고, 원칙이나 정해진 시기도 없는 조직변화가 일상다반사였다.

부서장과 임원이 있다고는 하나 의견 개진이라는 것이 없었고, 모든 사안은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하고 지시대로만 진행했다. 재량권이라는 것이 없으니 팀원들이 부서장과 임원에게 기대하는 바도 없었다. 부서장과 임원이 하는 일이나 팀원이 하는 일이나 구분도 차이도 없었다. 이쯤 되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고, 분위기에 스며든 사람들만 간간히 살아 남았다.

미국 플랭클린대학의 경영학 교수이자 컨설턴트인 찰스 B. 다이저는 <강력하게 돌아가는 조직으로 혁신하라>에서 ‘부정적인 기업문화를 긍정적인 문화로 바꾸는 데는 2-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반면 직원들의 사기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린다.  또한 고객 만족이 아니라 상사 만족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데는 백만 분의 1초면 된다.’고 했다.

조직에서 살아 남은 사람은 조직 내 사소한 일거수일투족을 잘 보고하는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한 사람은 성과가 좋아도 배겨날 수가 없었다. 마치 군대축구에서 스트라이커는 늘 병장이었고 후임병은 찬스를 만들어 병장이 골을 넣도록 공을 몰아줘야 했다. 그런 분위기를 모르고 골을 스스로 넣은 이병이나 일병이 이쁨 받을 수 없었던 것과 비슷했다. 구성원 의사는 배제되고 한 사람 의견만을 위한 조직 커뮤니케이션을 대했을 때, 이직이라는 고민에 내몰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휴브리스의 함정에는 성공한 사람만 빠진다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에게 환자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대로 치료해 달라고 강요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기업 조직에서는 희한하게도 전문가 인력을 불러 놓고 기존의 망해가던 방법 그대로를 강요하곤 한다.

휴브리스(Hubris), 고금을 막론하고 잘 나가던 국가나 조직 또는 개인이 파국을 면치 못한 것은 휴브리스 때문이다. 토인비가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말인데,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정도의 오만을 뜻한다. 주위엔 휴브리스의 트랩에 빠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이룬 성취나 재능에 대한 과장, 우월한 사람으로 계속 인정받고, 성공과 권력, 명성을 위해 자기애적 정신장애에 빠지게 된다.

조직 내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하는 일을 미덥게 여기지도 않는다. 작은 문서 하나, 작은 문구 하나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 늘 결정할 것이 쌓여 있다. 한번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라거나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같은 당연한 커뮤니케이션도 없다. 빨리 못했냐고 다그치지만 정작 일이 늦어진 이유는 그 사람에게 있다. 그 조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며 자조적인 말만 되뇌고 있다 한다.

스위스의 철학자 카를 힐티는 ‘오만은 항상 어리석음과 관련되어 있다. 오만해지는 사람은 이미 승부에 지고 있다'고 했다. 그 조직은 이미 지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업계에 소문 나자 지원자도 뜸해졌다. 결정권자인 그 사람은 한번도 자신의 머리 위 먹구름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나 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었다. 일 하는 사람들을 구축하고 입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인정 받는 것이다.

이직 고민을 늘 맘 속에 담고 있는 지인의 말을 들어본 결과 역시 커뮤니케이션 문제였다. 임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경영진이 모든 것을 틀어 쥐고 싶어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 일에 대한 권한은 전혀 없었음에도 결과에 대한 질타와 책임만 견딜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있어야 안심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한다는 생각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이 야단을 맞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상사는 살짝 한 마디만 해도 미운 감정이 폭발하지만, 심한 야단을 맞아도 미안함 고마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실망 시켜 죄송하고 분발하겠다’는 마음이다. 사소한 것에 대해 매몰찬 말로 질타하고 별 것 아닌 일도 꼬치꼬치 따지고 지시하면서도 정작 크고 중요한 일은 어찌할 바 모르는 리더를 마음으로 섬기기 쉽지 않다. 공은 자신에게, 책임은 아래로 미루는 커뮤니케이션이 기업 조직 내에 드물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어디서나 사람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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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화가 득세하면 양화는 자취를 감춘다.

2.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인한 자발적 이직도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문제다.

3. 상대에게 의견 구하는 것이 휴브리스의 트랩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