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세 배가 넘는다. 일본의 인구수는 1억2600만명이 넘는 세계 11위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인구수의 세 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독일의 대표적 명차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는 어느 나라가 더 많이 살까?

지난 6월 벤츠는 국내에서 7783대를 팔았다. 수입차 업계 역사상 한 달 기준 최대 실적으로 전체 수입차 판매량(2만3755대)의 33%에 해당되는 수치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나 인구 수에서 월등히 앞서는 일본보다 1283대가 더 팔렸다. 한국의 벤처 글로벌 시장은 중국과 미국, 독일, 영국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크다.

저성장,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경제의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이런 판매결과가 나왔을까? 2016년에 유행한 신조어 중애 ‘있어빌리티’가 있다. 치부를 감추고, 좋은 것만 보여 주려는 편집된 허세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있어 보임’과 ‘능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빌리티(Ability)’의 결합어로, 있어 보이는 능력을 말하는 요즘의 표현이다.

유달리 남의 눈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있어빌리티’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어떤 이상적인 사회 규범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벗어나지 않아야 사람 대접을 받다 보니 한국인은 늘 남과 비교하는 행동 특성이 몸에 밴 것이다. 개인의 희망보다 타인의 평가에 맞춰 대학은 서울로, 직장은 대기업, 자동차는 외제차를 따지는 것이 그것이다. 친구가 명품 백을 들었으니 카드 할부로라도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고, 고가 패딩이 유행하니 따라 입어야 같은 부류에 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의외로 많다. ‘나의 본모습’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돈’이다. 재력을 과시해서 자신의 삶을 있어 보이도록 포장한다. 예를 들면 먼 거리로의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사야 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선택은 메르세데스-벤츠다. 물건을 담기 위해 가방을 사고 뜨거운 아스팔트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사려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녀는 굳이 프라다 핸드백이나 마놀로블라닉 구두를 고른다. 일반 사람들은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고 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격이 낮아지면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벤츠와 같은 고가품의 인기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건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명품 추종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하게 나타난다. 명품 브랜드들이 가장 전도유망한 시장으로 꼽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다. 700만원을 웃도는 샤넬의 인기 핸드백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업계에서는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비싸게 팔고, 비싸게 팔고, 또 비싸게 팔아라’라는 고가전략을 내세울 정도라니 이쯤 되면 말 다 한 셈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판매되는 명품 가방류 50개 가격을 비교한 결과 한국에서 파는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평균 30%가량 비싸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개인의 소비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가 사치품 소비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합리적인 행위인지, 아니면 타인과의 ‘구별 짓기’ 또는 ‘따라 하기’ 위한 서글픈 욕망의 행위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