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에서 ‘국영수와 백과사전‘, ‘평생 학습’, ‘가짜 독서의 폐단’... 이런 단어들이 나올 줄 몰랐다. 기자의 진부하고 관성에 젖은 짧은 식견을 빗나가게 만든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무더위와 장마가 뒤엉켰던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만났다.

30년간 증권맨으로 이름을 날리고 현업을 떠난지 6개월. 그는 이미 배우고 생각하는 학생이자 미래학자였다. (실제로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이미 한 학기를 마친 학생이었고 여러 대학과 경제관련 단체에선 유명강사 였다.)

기자가 처음 그를 만났던 건 20여년전. 벤처라는 말이 생소했던 코스닥 열풍시기. 이미 그는 이름도 생소했던 벤처기업들을 연구하고 미래가치를 분석한 대우증권의 당대 최고 애널리스트였다.

이러한 연으로 기자는 그로부터 4차산업혁명의 미래나, 사상최고치를 경신 중인 국내 증시에 대한 의견을 들을 줄 알았으나...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는 더 멀리 보고 있었다.

▲ 지난 13일 서울 재동 한 식당에서 만난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이 그가 생각하는 우리 미래의 청사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DB.


‘관(觀)’ ‘철(哲)’ ‘격(格)’ ‘류(流)’를 꺼내다

홍 전 사장은 아직 젊다. 만으로 54세. 아직 은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기록의 애널리스트다. 각 언론사로부터 많은 '베스트 애널리스트 상’을 수상했고 공채출신 증권맨으로 한 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한데다 CEO자리까지 올랐다. 사장 재직시절 대우증권의 전통인 30년 근속자에게 수상하는 감사기념패를 본인이 본인에게 수여한 진기록 보유자다.

아직 젊지만 샐러리맨의 꿈인 CEO자리까지 올랐던 그가 꺼낸 화두. ‘관(觀). 철(哲). 격(格). 류(流).’

그가 말하는 관은 ‘관찰’, 철은 철학, 격은 품격이자 자부심이다. 미래리더십이기도 하다. 류는 얽매이지 않는 것. 즐길줄 아는 삶을 얘기한다.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결국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더라고요. 경제적 성과는 이뤄냈지만 철학과 문화 성장까진 미처 손을 쓰지 못해 맞닥뜨린 이 전환기적 혼란의 시기,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냥 보는 것(see)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볼(watch)줄 아는 관(觀),  또 자신만의 생각을 할 줄 알면서 고집이 있되 독선이 아니고 화합하되 물들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철(哲),  그리고 꼰대 노릇을 경계하며 겸손을 지키고 우러나오는 인격을 갖춰 자리에 걸맞는 행동을 할 줄 아는 격(格),  마지막으로 유머와 위트가 있으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기 계발에 시간을 운용할 줄 아는 류(流),  이 네가지를 갖춰야 우리 사회가 바라는 인재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말하는 관철격류는 결국 사람에 대한 얘기였다. 그는 화제를 바꿔 이어나갔다.

“4차산업혁명시대라고 하지만 너무 거창하게 볼 필요 없습니다. 4차산업혁명은 어떻게 수용하는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제조업의 일자리는 줄어들겠지만 IT와 서비스가 접목돼 인력이 필요없는 세상이 아니라 또 다른 분야에서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해질 수 있는 세상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덕목을 깨닫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될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올 것입니다. 윗 사람들이 꼰대짓을 하고 아랫사람들은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만이 경쟁이라고 배우는 사회에서 과연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나 올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 때 유행했던 잡스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전파사 주인, 게이츠라면 PC방 주인이 됐을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만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꼰대 문화부터 바꿔라

요즘 탄수화물을 줄이는 다이어트로 몸매가 슬림해진 홍 전 사장은 유독 ‘꼰대’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꼰대는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비꼬는 은어다. 은어다 보니 국어사전에 명확한 풀이는 없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꼰대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눈에 띄었다. 이날 홍 전 사장이 얘기한 것과 맥이 통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의 꼰대에 대한 생각은 이랬다.

“어려서부터 상식을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는 교육문화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대가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순간. 그 때 바로 꼰대가 되는 겁니다. 저는 조직의 수직적 문화의 폐단 같은 것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꼰대문화는 어쩌면 21세기 가장 필요한 개인의 창의력을 짓밟아 버립니다”

그가 꼰대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폐습이 사람의 창의성을 짓밟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4차산업혁명 시대라고 모두가 첨단 산업의 변화를 주목하지만 그는 인간의 창의력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을 관찰하고 있는 듯 했다.

미래산업, 생각을 바꾸고 창의적으로 도전하는 것

그는 4차산업혁명시대 산업에 대한 이색적인 예를 꺼내 놓았다.

“4차 산업혁명시대라고 하지만 소득이 줄고 실업률이 높은 사회에선 동네 구멍가게가 에어컨 시설에 투자를 많이한 멋진 바(Bar)보다 더빨리 성공할 수 있습니다. 파라솔을 켜고 맥주와 안주를 팔고 심지어 야외에서 고객들이 담배까지 필 수 있다면 말이지요. 기업의 성공 사례는 너무 많지만 그 밑바닥에는 창의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연소득 9억원 이상인 사람들은 340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장수막걸리를 만드는 서울탁주제조협회 소속 임직원이 26명이나 포함돼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시대라고 해서 전자공학과 생명공학만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 아닐까요? 창의력을 키워야 하고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조지오웰 동물농장이 이렇게 얇을 줄이야...

자연스럽게 얘기는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전문가가 되는 교육문제로 옮겨 갔다.

그는 재밌는 일화를 소개했다. “몇년 전 대학 입시 논술시험 문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저의 무지에 대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고전을 주제로 출제된 문제였고 저는 이런 고전을 알고 있었지만 읽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요즘 고교 졸업생들은 이런 책을 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웠죠”

그런데 며칠 후 이 책을 사러 대형서점에 갔을 때 그는 경악했다. “서점 직원으로부터 안내를 받은 곳에 50여페이지 분량으로 요약된 문고판이 즐비한 겁니다. 알고봤더니 이젠 고전도 논술용으로 나오고 학원에서는 이를 요약하고 학생들은 암기하는 식이었습니다. 가짜 독서가 판치고 이런 공부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가는 세상이라는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교육제도 아래서 창의성은 나올 수 없고 우리가 맞이하는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는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국영수를 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세요. 국영수 잘해 좋은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인재(人材)들이 인재(人災)를 일으키진 않았나를. 성적은 좀 뒤떨어지더라도 백과사전을 놓고 공부한 인재(人材)들이 사회로 나오면 새로운 용어만 나와도 곧바로 스마트폰을 뒤져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이들이 창의력있는 인재들이 되는 것이지요. 아마 세상은 이런 인재들이 바꿀 것입니다. 이제 암기위주로만 공부해 좋은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자연 소멸되지 않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아랫사람들이 싫어하는덴 이유가 있다

얘기가 너무 암울해지자 우리는 모처럼 회식 중이었기에 회식 얘기로 옮겨갔다.

“요즘 젊은이들은 회식을 싫어한다고 하죠? 아니에요. 젊은 친구들도 회식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싫어한다고 할까요? 우리나라 일반 기업들 회식하면 보통 어떻게 하나요? 사장부터 시작해서 건배사 한마디씩 하고 선임이 후임한테 할 말만 하고 끝나죠. 그렇게 하니까 회식 싫다고 하죠. 그들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세요.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지 훈계나 조언을 일방적으로 듣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홍 전 사장은 회식의 추가 팁도 알려줬다.

“제가 대우증권 사장이던 시절 실험을 해봤어요. 저녁 6시30분 회식이라고 하면 6시30분에 시작하는 것은 물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팅까지 완료된 시간을 의미했어요. 몇 사람이 솔선수범으로 먼저 가서 고기 다 구워놓고 6시30분에 바로 첫 잔을 마실 수 있게 한 것이죠. 이런 회식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좀 심하긴 했지만, 늦은 사람은 그냥 돌려보냈죠. 그럼 다음부턴 회식에 알아서 늦지 않아요. 그리고 가장 아랫사람부터 건배사도 하고 한 마디씩 해보라고 합니다. 처음이 어렵지 금방 익숙해지더군요. 또 2차는 희망자만 가는 것으로 하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보니 보통 6시30분에 시작하면 8시면 끝나더라고요. 집에 일찍 갈 수 있죠. 이런 회식이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려는 건, 직원들이 회식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윗 사람이 뭔가 바뀔라고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노력도 없이 ‘우리 때는 안그랬다’ 타령만 하고 있으니 꼰대 소릴 듣는 것이죠”

▲ 사진=이코노믹리뷰DB

홍 전 사장은 어떤 주제에도 끊임이 없었다. 다 듣고 보니 주제는 하나로 이어졌다. ‘관 철 격 류’ 그가 제시한 미래를 돌파할 4가지 역량이자 미래의 인재상. 지난 겨울이 유난히 길고 답답했기에 그의 쾌도난마같은 관철격류 철학은 무더위마저 잊게 하는 듯했다.

증권업을 떠난 후 재정부문이 궁금해 행정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그였지만, 요즘 읽고 생각하는 것은 행정학 교과서 뿐만은 아닌 듯했다. 청바지에 백팩 차림이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6개월전 대한민국 1등 증권사의 CEO는 인생 이모작시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고민과 해야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그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것은 오히려 사족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지런했다. 증권업계를 떠난지 6개월만에 대학원 한 학기를 마쳤고 ‘인재(人災) VS 인재(人材)’라는 신간을 출판하기도했다. 그가 말한 관철격류는 이 책에서도 더 자세하게 접할 수 있다.

헤어지면서 4차혁명시대를 걷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얘기는 이랬다.

“과거의 성공이유가 미래의 실패이유가 돼버렸습니다.” 지금 확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홍성국은 대우증권에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 30년간 리서치센터와 기관영업부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해 말 대우증권이 미래에셋대우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한 후 자진 사퇴했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증권 회장과는 증권맨으로써 오랜 인연을 유지해오면서 아직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요 약력]

1963년 생

1986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0년 대우증권 투자정보부 부장

2006년 리서치센터장(상무)

2009년 홀세일 사업본부 본부장(전무)

2011년 미래설계연구소 소장

2014년 대우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6년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