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약간 차이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분명히 ‘재협상(renegotiating)’을 개시했다고 하는데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한국 정부는 조문상의 용어인 ‘개정과 수정’을 요구하고 이를 위한 ‘후속 협상(follow-up negotiation)’을 요구했다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대 한국 무역에서 400억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했는데 한국은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트럼프에 혐의가 간다. 그는 한국을 구석으로 몰아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일부러 틀린 말을 하고 틀린 숫자를 내뱉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개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트럼프 "한미FTA 재협상 개시"

미국 의회 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가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기자들과가진 문답에서 한미FTA를 '끔찍한 거래(horrible deal)‘라면서 한국과 재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보호하고 있지만 무역에서 한해에 400억 달러를 잃고 있다"면서 "거래가 막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을 겨냥, "클린턴은 미국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일년에 400억달러를 잃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건 끔찍한 거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그래서 우리는 어제(11일)자로 한국과 재협상(renegotiating)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의회 전문지인 더힐 보도를 보면 확연해진다. 더힐은 트럼프의 발언은 한미FTA를 업데이트 하려는 미 행정부 의도와 모순된다고 꼬집었다. 더힐은 미국과 한국은 협정 재협상이 아니라 협정을 일부 수정하는 데만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도 12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협정의 개정과 수정(amendments and modifications)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요구했다고 썼다.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 요청이다. 그는 후속협상(follow-up negotiations )이란 용어도 사용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이번 회의와 후속협상이 협정 이행이 진을 검토하고 미국 수출품의 한국 시장 접근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며 가장 중요하게도 우리의 상당한 무역불균형을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적었다.

USTR은 ‘재협상’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더힐은 재협상 얘기는 한미FTA가 양국에 이롭다고 주장해온 한국 정부 관료를 경악시킬 수 있어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정부 "무슨 소리, 협정 검토 위한 특별회기 소집 요청"

한국 정부는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한 게 아니라 FTA의 개정과 수정 가능성을 포함한 협정 운영상황을 검토하고자 협정문 규정에 따라 특별회기 소집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산자원부 여한구 통상정책국장은 산업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에서 “조속한 시일 안에 국장급 관계관을 미국에 보내 미국 USTR 측과 구체적인 의제와 개최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라면서 “한미 FTA 협정상 우리가 반드시 미국 측의 FTA 개정협상 제안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공동위에서 개정협상 개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는 한국 정부는 한미FTA의 조문 수정이나 보완 수준을 넘어서는 것 이상의 논의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더힐은 협정 갱신 이상이 논의는 논의를 위험에 처하게 할뿐더러 양국간 긴장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한 무역수지 적자 400억달러 아닌 277억달러

두 나라가 주장하는 무역적자 수치도 다르다. 트럼프는 1년에 40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했다. 과연 맞는 수치일까?. 아니다.

한미FTA가 2012년 3월 발효된 이후 미국의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400억달러와 거리가 멀다. USTR에 따르면, 미국의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2011년 132억달러에서 2012년 166억달러, 2013년 207억달러, 2014년 250억달러, 2015년 283억달러, 지난해에는 2.3% 감소한 277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협정 발효 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FTA 기대효과와 달리 미국의 수출이 늘지 않는데다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니 트럼프의 약이 바싹 오른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12월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이 협정의 관세감축만으로도 미국의 연간 수출을 110억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의 대한 수출은 2011년 435억달러, 2012년 423억달러, 2013년 417억달러, 2014년 445억달러, 2015년 435억달러, 지난해 423억달러 등으로 거의 늘지 않았다. 지난해 대한 수출은 전년보다 2.7% 감소했다. 미국의 대한 수출규모는 FTA 발효 전인 2011년에 비해서도 2.8%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입은 크게 계속 증가했다. 2011년 567억달러에서 589억달러, 624억달러, 695억달러, 718억달러, 699억달러로 계속 불어났다.

5년간 수출은 전혀 늘지 않았는데 수입은 26.8%, 152억달러가 증가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산 제품 수입 증가로 피해를 본 업계가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렸을 것은 불을 보듯 훤하고 트럼프는 그들의 불만을 과장된 수치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트럼프는 상품 수출입차인 무역수지 적자만 말했지만 미국이 서비스 수지에서 107억달러 흑자를 거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한국은 미국의 6대 서비스 수입국이다. 지난해 대한 서비스 수출은 216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5.1%, FTA 이전인 2011년보다는 약 29.3%나 증가했다.서비스 수출을 합치면 무역 수지 적자는 170억달러로 줄어든다.

수익성 좋은 한국 농산물·자동차 시장 개방 포석?

그럼에도 트럼프가 2016년 6대 교역대국으로 부상한 한국을 특정해서 대한 무역흑자 규모를 과장해서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국에 유리한 품목의 수출을 늘려 적자를 줄이려는 속셈이다. 농산물 수출을 늘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USTR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5대 농산물 수출시장으로 지난해 62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농산물 수출은 기계류(61억달러), 전기기계류(53억달러), 항공기(52억달러), 자동차(22억달러)보다 많다.

수출 농산물은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이11억달러, 옥수수 8억6500만달러, 신선과일 3억8900만달러, 돼지고기와 돼지고제품 3억6500만달러 등이었다. 한국산 농산물 수입은 5억1900만달러에 그쳤다. 소득증대로 육류와 신선과일 소비가 크게 늘고 있는 한국은 트럼프가 외면할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두드리면 열린다. 트럼프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