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윤 한국다이퍼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자신이 만들고 혼자만 즐기는 물건은 ‘작품’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필하는 물건은 ‘제품’이 된다.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컴퓨터그래픽을 가르쳤던 교수는 생리통을 완화하는 물질을 함유한 생리대를 베트남, 러시아, 캄보디아 등 22개국에 수출하는 중견기업의 대표가 됐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혼자만의 세계에 가두지 않고 어떻게 타인에게 필요한 제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기 때문. 단순히 돈을 버는 회사를 넘어서 사회에 공헌하는 백년기업을 꿈꾼다는 이대윤 한국다이퍼 대표를 만나봤다.

 

생리통 줄이는 ‘생리대’ 개발… 차별화된 라인업으로 해외 공략

왜 하필 ‘생리대’ 개발이란 말인가. 남자인 데다가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다. 그런데 수많은 여성들이 대부분 시달리는 ‘생리통’에 주목할 정도로 섬세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지점. 한국다이퍼의 생리대에는 생리통을 완화하는 물질인 크리스타노이드(Christanoid)가 함유돼 있다. 운명과 같은 선택의 배경이 궁금했다.

이 대표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크리스타노이드라는 물질에 대해서 알게 됐고 이를 제품화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생리대 시장은 워낙 대기업이 독점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원료와 제조설비가 비싸다. 우리는 원료 1ℓ만 있으면 되는데 대기업은 10톤, 20톤씩을 매월 같은 양을 주문한다. 제조설비는 저렴한 게 300억이다. 수십가지에 달하는 특허전쟁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역경 스토리는 범상치 않다. 작은 창고에 모여 라면만 먹으며 사업을 시작했으나 한국다이퍼를 어엿한 이노비즈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비결이 궁금했다.

이 대표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되뇌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회사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미 특정 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한 이유다.

한국다이퍼 본사 내부에 전시된 한국다이퍼의 다양한 제품.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이 대표는 “국가마다 다른 생리대 라인업을 갖췄다. 더운 나라에 공급하는 생리대와 추운 나라에 공급하는 생리대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특정 국가에서 한국다이퍼의 생리대만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대표는 더운 나라에 공급하는 생리대에는 팬티에 생리대를 붙이기 위한 끈끈이인 핫 멜트(Hot-Melt)를 조금만 썼다. 더운 날씨 탓에 팬티에 생리대가 잘 붙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추운 나라에는 이와 반대로 핫 멜트를 많이 썼다. 가난한 나라에 공급하는 생리대에는 흡수력을 높였다. 철저한 특화전략이다.

나아가 생리통을 완화하는 생리대 외에도 원적외선이 나오는 생리대, 피부에 발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생리대, 생리 기간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게 하는 생리대 등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이러한 연구개발은 물에 녹아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흡수체 개발에 이르렀다.

 

‘돈 버는 도구’였던 회사… ‘봉사활동’ 통해 전환점 맞아

그는 한때 꽤 잘나가는 IT회사의 대표였다. 구글 유튜브(YOUTUBE)의 동영상 송출기술을 개발했다. 미국 뉴욕에서 인터넷 방송을 무상으로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는 생각에 기업을 정리했다고. 이때가 IMF 직후인 1998년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다. 이 대표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회사를 접은 이유는 기업을 그저 ‘돈 버는 도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나니 더 이상 기업을 운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은행에선 이자가 나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진정성을 가진 기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직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업, 2~3년 돈 벌고 마는 기업이 아니라 백 년을 가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대윤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실제로 이 대표는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사회에 좋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크게 어려움 없이 살아와서 세상에 그렇게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몰랐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화장실조차 갖추지 않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를 위한 명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다수에게 기쁨을 주는 제품을 만들고 창출된 이익을 약자를 위해 써야겠다고 맘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후 꾸준히 나눔을 펼쳐왔다고. 현재 한국다이퍼는 매년 수익의 6%를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가의 여성, 장애인, 이재민, 노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혁신, 기존의 개념을 모조리 버리는 것”

이 대표의 한국다이퍼는 늘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생리대 외에도 아이마스크, 팩, 줄기세포 화장품과 같은 다양한 여성용품을 개발해 판매한다. 획득한 특허만 해도 30가지가 넘는다. 제품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이대윤 대표가 생각하는 혁신이란 무엇일까. 그의 지론이 재미있다.

이 대표는 “혁신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있는 것에 새로운 개념을 입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것을 철저하게 버려야 한다. 물건의 모양, 색, 기능 등 모든 개념을 다 버려라. 이것이 출발점이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변의 조언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아무 것도 갖추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변의 교수, 성공한 사업가 등에게 최대한 컨설팅을 많이 받고 자신의 위치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제품을 개발한 사업가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제품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품은 유통망도 중요하고 홍보도 중요하다. 모든 것이 세팅이 돼 있어야 성공한다. 막연하게 ‘좋은 제품’은 망한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마진을 적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혼자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제품이 아닌 작품이다. 사업을 하려거든 작품을 만들지 말고 제품을 만들어라”고 조언했다.

한국다이퍼 사무실의 이 대표 집무실에는 커다란 이젤이 걸려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시간에도 이젤에는 이 대표가 직접 그리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유난히 여운을 남긴다. “창조는 지독한 노력과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순간의 여유로 완성된다.” 한국다이퍼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한국다이퍼 본사 내부.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