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4년 전에 등장한 인터넷 가상세계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미래 세상의 상징처럼 주목받았다. 세컨드라이프는 현실 세계에서 꿈과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상세계에서 신분을 세탁해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던 멋진 비즈니스 플랫폼이었다. 사람들은 세컨드라이프에 가입하고 자신을 표출할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의 집을 짓고 옷매무새를 단장하면서 가상의 인물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남자가 여자 행세를 할 수 있고 노인이 젊은이 행세를 할 수도 있다. 그들 중에는 가상세계에서 만나 사귀다가 실제로 결혼에 골인한 사례도 있다.

당시 세컨드라이프에 거주하던 안시 청(Anshe Chung)은 부동산 갑부였다. 안시 청은 한 중국계 독일인이 만든 가상인물이다. 그녀는 세컨드라이프의 주민들에게 가상농지를 분양하고 임대해줘 자신만의 건물을 짓거나 창작물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세컨드라이프 주민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온라인 린든 달러를 사용해 비용을 지불했다. 2006년 뉴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안시 청이 보유한 가상토지와 화폐 보유고가 25만달러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가상공간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해 실제로 엄청난 부를 창출한 것은 당시에 처음이었고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세컨드라이프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 가상세계 플랫폼이 미래의 삶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용자는 가상 상품을 가져올 수 있고, 가상 상품을 사고팔고, 아바타를 디자인하고 개인화할 수 있었고, 세컨드라이프의 주민들이 직접 만든 나이트클럽, 쇼핑센터 또는 미술관에서 즐기며 놀 수 있었다.

 

국가경제 규모의 세컨드라이프

세컨드라이프엔 대학이 세워졌고 IBM과 아메리칸 어패럴 등 주요 기업들은 가상 사무실과 상점을 열고 상품 판매를 시작했으며, 심지어 <로이터 통신>은 가상세계 뉴스를 취재하기 위해서 지국을 설치했다. 지금은 온라인상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디지털 서비스인 ‘앱’을 구매하는 일이 평범해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손에 쥐어볼 수도 없는 디지털 아이템을 돈을 주고 구매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를 구매하는 일도 어색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가상백화점에서 가상화폐 ‘린든 달러(L$)’로 상품을 구매하고 구매한 상품은 가상세계를 꾸미는 데 사용했으며 세컨드라이프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 이득은 페이팔(Paypal)로 환불이 가능했다. L$와 US$의 환전비율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변동하는데 환율은 비교적 안정세이며 2017년 6월 현재 환율은 평균 약 L$252/US$1이다. 세컨드라이프가 운영하는 장터엔 없는 물건이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 사물들이 판매되고 있다. 아바타 의상이나 장신구는 물론이고 거주하는 집, 아바타의 동작능력 예를 들면 춤추는 능력이나 키스하는 능력 등도 구매한다. 정원이나 실내를 꾸밀 수도 있다. 아바타 반려동물, 새, 말, 곤충, 바다생물, 도마뱀 등도 구매할 수 있다. 아바타 가축의 먹이나 장난감도 판다. 이들을 린든달러로 구매하면 바로 가상세계에서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가 지난 10여년 동안 명성을 잘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세컨드라이프에서 벌어지는 경제활동 규모는 거의 작은 국가에 견줄 만큼 크다. 린든랩(Linden Labs)에 의하면 세컨드라이프에서 거래되는 경제규모가 2006년도에 6400만달러였고 2009년도엔 5억6700만달러까지 팽창했다. 가상세계의 경제는 가상 상품을 서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콘텐츠 작성이나 기타 사용자 서비스가 창출하는 가치다.

안시 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컨드라이프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부동산임대업이다. 주민들은 주로 토지 임대, 아바타의 패션과 액세서리 판매, 뮤지컬 공연 제공, 행사 주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득을 올리고 있다. 예를 들면 유원지에 모여서 게임 활동도 하고 스케이팅, 썰매타기, 볼링, 보드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린든랩 측의 데이터에 의하면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세컨드라이프에 로그인하고 있으며 2006년 10월 기록으로 방문자가 100만명에 달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엔 200만명까지 방문자가 증가했으나 스마트폰 모바일 세상이 되면서 성장이 거의 멈췄다. 그래도 지난 10여년 동안 약 80만명 정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세컨드라이프가 2008년 이후로 계속해서 성장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세컨드라이프의 신비로움이다. 사람들은 세컨드라이프에서의 활동을 통해 현실을 도피한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겠지만 일종의 게임으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세컨드라이프가 지금은 ‘한때 엄청나게 유행했던 가상세계’이지만 실패한 사업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페이스북처럼 모바일 세계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컨드라이프는 어떤 의미에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하드웨어적으론 결코 준비가 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다. 이제 린든랩은 VR헤드셋을 이용해서 새로운 소셜 미디어 시대를 이끌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3차원 가상현실 세계 ‘샌사’

 

린든랩이 세컨드라이프를 대체할 다음 프로젝트로 구상하는 건 3차원 가상현실 세계이다. 세컨드라이프에서의 가상세계가 평면적이었다면 VR 안경을 끼고 방문하는 3차원 입체세계인 샌사(Sansa)는 완전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체험세계이다. 샌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류사회를 가상현실로 체험하게 해준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가상현실 세계는 말 그대로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세계로 한계가 없다. 누구나 상상하는 자신만의 가상 세계를 디자인해서 제작하고, 공유플랫폼에 게시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독특한 체험을 나누는 세계가 된다.

세컨드라이프에선 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 중에서 어느 쪽이 주 고객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샌사는 제작자에게 완전히 초점을 맞춰 운영할 예정이다. 그 대신 누구나 가상공간의 제작자가 될 수 있도록 샌사가 지원해준다. 전문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워드프레스를 사용하면 웹사이트를 손쉽게 만들 수 있듯이 샌사를 활용하면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자신만의 가상세계를 손쉽게 꾸밀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샌사가 제공하는 일반적인 3D 포맷의 자산을 재활용해서 콘텐츠를 가미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하면 새로운 가상세계를 뚝딱 만들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쉽게 가상세계에서 가치를 만들어 팔 수 있는 가상세계 상품 시장을 열게 해주고, 전혀 새로운 가상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도록 제작 도구를 지원해 주는 플랫폼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독특한 디자인의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면 돈 되는 상품이 될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는 끝에서 끝까지 연결된 하나의 세계인 데 비해 샌사는 각기 독립된 세계로 분리해서 전혀 다른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가상세계가 커다란 하나의 세상이 아니고 많은 수의 각기 독립된 세계들로 구성되고 그 세계들을 건너뛰면서 둘러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마치 웹사이트를 건너뛰듯이 전혀 다른 가상세계로 건너뛰는 방식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상세계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을 수 있다. 특별활동에 참여하는 참가비를 거둘 수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활동과 물체를 가상세계로 옮겨올 수도 있다. 다만 현실 세계에선 체험하기 어려운 가상세계만의 특별한 활동이 각광받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행글라이더를 타본 경험이 없던 사람이 어느 가상공간에서는 행글라이더에 몸을 싣고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경치를 체험하면서 하늘을 떠다닐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 궤도상을 맴도는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샌사는 제작자들에게 그들이 만들어낸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들 콘텐츠는 제작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달렸지만 가상세계를 사용하거나 일부 소유하도록 해주고 세금을 받는 방법도 가능하다.

 

소셜 VR이 태동한다

샌사는 각자가 경험해 보고 싶은 가상세계로 연결해 주게 된다. 가상세계 제작자는 특정 관객에 맞도록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것을 좋아할 만한 사람들을 방문객으로 맞이하게 된다. 공통 관심사를 갖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거나 상품을 교환하는 공간도 가능하다. 가상공간 속에서 아바타끼리 모여서 취미활동을 함께 할 수 있다. 필요한 가상공간을 만들고 아바타가 되어 다른 아바타들과 교류하는 힘은 모두 샌사가 제공하게 된다. 앞으로 교육에서부터 상거래, 오락, 행사, 이벤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상적인 활동을 페이스북처럼 아바타 친구와 함께 하는 새로운 세계를 샌사가 제공하게 된다. 사람들은 국경과 나이, 전문영역을 벗어나서 마치 가면무도회에 참가하듯이 아바타가 되어서 가상세계의 친구들과 서로 만나 교류하게 된다.

샌사의 성공 여부는 사용자들의 관심에 있다. 사실 VR 장비들이 판매되고 있지만 활용하거나 소비할 만한 좋은 소프트웨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샌사가 제공하는 가상공간이 모든 가상현실 활동이나 상품을 흡수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누구나 가상공간을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작하도록 해준다면 VR 사용자가 급속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자신만의 가상공간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해주므로 무한한 아이디어의 향연이 펼쳐질 수 있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합병한 이유가 바로 가상세계에서의 친교활동이었다면 린든랩이 먼저 착수한 셈이다. 최근 게임업계도 3차원 가상세계로 발돋움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샌사가 이들을 모두 흡수시킬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면 그 팽창력이 막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