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에서 가정폭력 사건이 벌어진 상태에서 신고한 사람은 없는데 경찰이 왔습니다. 용의자는 확실하지만 신고자가 묘연한 상태. 많은 사람들은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알렉사 에코를 지목하고 있지만 알렉사는 ‘경찰신고’ 기능이 없습니다. 주인의 위기를 감지한 알렉사가 이제 접신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요?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더버지 등 주요 IT 매체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 지역에서 에두아르도 바로스라는 남자가 여자친구를 폭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자친구에게 메시지가 온 것을 수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직후 신고전화가 접수됐고 경찰특공대까지 출동한 가운데 에두아르도 바로스는 체포됐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음에 펼쳐집니다.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이 누구인가. 경찰은 아마존 인공지능 스피커인 알렉사가 신고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버즈피드에 따르면 경찰은 “알렉사가 신고를 했다는 것이 일지에 적혀있다”며 “이 놀라운 기술은 매우 폭력적인 상황에서 피해자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버즈피드가 아마존에 직접 문의한 결과 알렉사는 긴급신고 기능이 없습니다. 애플의 인공지능 비서인 시리에는 분명 긴급신고 기능이 있어요. 하지만 알렉사는 없습니다.

끔찍한 가정폭력을 고발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미담의 주인공은 현 상황에서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외신을 찾아봐도 딱 여기까지만 알려져 있어요.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알렉사가 자체적으로 진화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며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경찰’과 ‘전화’라는 소리를 질렀을 경우입니다.

알렉사에 긴급전화 기능은 탑재되어 있지만 ‘경찰’과 ‘전화’라는 단어가 나오자 알렉사가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포스트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네요.

▲ 알렉사 에코. 출처=캡처

그런데 이러한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이는 그것 자체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인공지능이 위기상황에서 경찰의 적절한 대처를 끌어냈지만 평상시에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형의 집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올해 초 미국의 CW6 TV는 아마존 알렉사 에코를 이용해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집에 쿠키를 주문한 소녀의 해프닝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뉴스 말미 남성 앵커가 테스트를 명목으로 "알렉사, 인형의 집을 주문해줘"라는 멘트를 날렸고, 진짜 문제는 이때 발생했습니다. 해당 방송을 보고있던 미국 전역의 알렉사가 이를 실제 명령으로 인식해 170달러에 달하는 인형의 집을 아마존에 주문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마존이 모두 반품처리했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가디언은 이 소식을 전하며 "21세기 소비자 문제의 블랙 코미디"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어요.

맞습니다. 구글의 구글어시스턴트가 구글홈에 들어가고 애플이 시리를 홈팟에 넣는 시대. 네이버도 웨이브를 공개하고 카카오도 카카오미니를 선보였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 전성시대가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음성’을 매개로 새로운 인터페이스 혁명을 추구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 부작용도 걱정해야 할 순간이 오고 있습니다.

▲ 인공지능 형상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기업 입장에서 음성을 매개로 삼는 인공지능 스피커 출시는 자사의 스마트홈 로드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스마트홈의 허브이자 소비자의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내 정보’를 촘촘하게 빼갈 수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 크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사생활 침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업체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심지어 ‘우는천사’ 악성코드에 삼성전자 스마트TV가 연이어 뚫리는 등 초연결 인프라 보안에 대한 의구심이 치솟는 상황입니다.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아마존 알렉사는 살인사건의 증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알렉사 에코에 녹음된 살인사건의 단서들이 경찰 수사의 정식증거로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생활밀착형 비즈니스 모델을 전제로 한 인공지능 스피커가 속속 출시하는 상황에서 사생활 침해와 보안위협에 대한 고려는 여전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