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부패하고 분열한 보수가 분열하지 않은 진보에게 필연적으로 힘도 한번 못 써보고 맥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은 대선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난 지금, 보수정당들의 대표가 새로 선출된 현재의 상황에도 바뀌지 않으면서 보수의 위기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불과 10년전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2016년 총선 전까지 보수세력은 인구 노령화로 인한 자동적인 지지층 증가라는 환상이 만들어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안주하고 있었고, 진보세력은 패배의 아픔에 면역이 생기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었다.

10년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단지 국민의 변덕으로 기호가 바뀐 것일까. 아니다. 보수가 본질에서 벗어나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외면하고 소수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영국 보수당의 로버트 필 수상은 1846년 곡물법 폐지를 주도하며 보수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었던 지주세력을 뒤로 하고 산업세력을 껴안게 된다. (당시 영국은 곡물법을 통해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 생산되어 수입되는 곡물에 관세를 부과해 판매가격을 올림으로써, 영국에서 생산된 곡물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며 지주세력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영국의 일반 서민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가격의 농산물 구매가 강요되었고, 해외로 나가 곡물을 생산하려거나 수입하려는 해외 상공인들의 동기부여를 제한하고 있었다.)

비록 이후 곡물법 폐지에 반대했던 자기 당 세력과의 분열로 인해 보수당은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고 당분간 소수당이 되는 상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보수당은 다음 세대의 주도 계층이 되는 산업세력과 중산층으로 지지세력을 확대하며 200여년을 이어가게 되고, 영국민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건설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교수는 필 수상의 곡물법 폐지는 보수당이 언제나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하는 반동적인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대응할 역량을 갖는 정치조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반대로 영국 자유당은 노동당에 주도권을 내주고 소수 정당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미국 보수세력인 공화당은 비록 의도치 않았을지도 모르나 링컨 대통령이 주도한 노예해방을 통해 흑인이라는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함으로써, 연방내 전쟁이라는 희생은 있었지만, 인간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며 동시에 다음 백년을 이어줄 지지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각국의 보수세력은 과거의 것을 무조건 지키기만 하려는 반동세력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가치를 간파하고, 저항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며 스스로 오랫동안 생존하는 법을 배워왔다.

이것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보수세력은 새로운 시대 가치를 꿰뚫고 새로운 시대가치의 적용이라는 변화를 통해 생존하기 보다는 소규모 집단의 이익추구에 안주해 살아가는 근시안적 생존방식에 길들여졌던 것이다.

위기 (危機)라는 단어는 위태할 위와 기회 기로 구성되어있다.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 보수의 신의 한수는 무엇일까. 한국 보수가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인식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오로지 국민의 행복과 국가발전만을 생각하고 소외된 국민을 감싸 안으며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이념의 실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함포고복 (중국의 요순시대에 백성들이 든든하게 채운 배를 두드린다는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고사) 하게 하는 자유경제적 현실까지 실현할 수 있다면 국민의 지지는 저절로 돌아올 것이다.

사족: 18세기 ‘짐이 국가다’라며 절대 권력을 누렸던 프랑스 귀족과 왕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샤를 드 골 대통령처럼 이름에 ‘드’가 있으면 귀족 출신이겠구나 하는 흔적만 남아있다. 그러나 영국에는 상징적이긴 하지만 왕정과 왕족 및 귀족도 남아 있다.

입법의 지연이 가능한 귀족으로만 구성된 상원이 여전히 존재하며,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귀족 작위를 받기 위해 영국 여왕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한다.

무엇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프랑스 귀족과 여전히 그 존재의 실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영국 귀족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다가오는 변화에 대해 저항한 프랑스 귀족은 공룡처럼 소멸이라는 필연적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고,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변화의 파도에 순응하며 선도한 영국 귀족은 여전히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