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민생경제위원회 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1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가계부채 문제해결 방안’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거의 1400조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90%를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 시민사회단체조차 근본적인 대안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통합도산법 개정등 과다, 다중채무자에 대한 법적인 대책, 금융공기업의 편법 채권추심등의 문제를 개선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내달로 예정되어 있는 가계부채 종합대책에는 원리금 상환 여력이 있는 고소득 다중채무자를 포함시킬 이유는 없다. 정부와 여당에서 추진중인 법정최고이자제한은 저소득 다중채무자등 한계가구에 어떤 피해를 일으킬지에 대해 연구하고 심사숙고한 대응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보다 10년 앞서 가계부채 대책에 나섰던 일본은 법정최고 이자 하향으로 인해 한계가구의 고통이 가중됐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달초 도우모토 히로시(堂下 浩) 도쿄정보대학 교수가 국내에서 한 강연에서 일본이 최고이자율을 29.2%에서 20%로 낮추면 부정적인 효과가 커, 악성 부채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도우토모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를 낮춘 결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일본 GDP가 약 6조엔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며 "초과이자 반환청구에 따른 경제효과까지 계산할 경우 8조~18조엔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대출총량규제 부작용으로 ▲자영업자 폐업 초래와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 ▲자살자 증가 ▲사금융 이용자 증가▲생활 격차 확대 등을 주장했다. 도우투모 교수는 "자영업자와 비정규노동자는 법정 금리 인하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지적했다.

▲ 파산회생변호사회·주빌리은행 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1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가계부채 문제해결 방안’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한편, 주빌리은행, 참여연대,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1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가계부채 문제 해결 방안’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가계부채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차원 행정정책과제, 국회차원 입법과제, 법원차원 도산제도 개선과제 등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법정최고이자를 낮춰야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을 비롯,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생·파산 절차에 관한 제도등 구조적인 부분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계부채 문제를 소비 여력을 회복시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백미옥 주빌리은행 사무국장은 부실채권 시장 구조를 언급하며 현재 가계부채 문제점을 지적했다.

백미옥 사무국장은 “은행은 채무자가 연체하면 연체율만큼 대손충당금을 쌓고 잔고상에서 손실 처리한 다음 대부업계에 채무자 채권을 팔고있다”라면서 “대부업체는 추심하다 어느 정도 회수하면 또 다시 다른 추심업체에 팔아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문제점을 제기했다. 백 사무국장은 또 “현 정부가 이러한 부실채권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촘촘하고 과감한 빚 탕감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무자의 주거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파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박현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가계부채 문제의 사후대응책으로서 가계부채로 인해 거주하는 주택마저 상실할 위기에 놓인 경우엔 1인 1주택에 한해서 주택을 상실하지 않고 회생 절차를 진행하도록 특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운용되고 있는 제도다.

박 변호사는 "개인파산과 관련해 채무자의 면제재산 범위를 확대하고 비면책채권 범위는 줄여 파산면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동시에 채무자에게 면책 불허가 사유가 없다면 즉각 면책해주는 당연면책 제도를 도입하고 회복 기간을 단축해 채무자가 파산 이후 신속히 경제활동에 복귀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부채의 규모와 질을 고려해 만 35세 미만 청년들에게는 개인회생의 변제기간이 1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특례를 신설할 것을 촉구했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법원 자체적으로 실무 규정과 운영 매뉴얼을 바꾸기만 해도 효과적인 채무자 감면이 가능하다”면서 “파산·회생 제도를 채무자가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회생하기 위해 무엇보다 판사들의 인식과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사법부내 도산전문법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변호사는 “미국 파산법원 판사의 임기는 14년인 반면 우리나라 회생법원 판사들은 2년마다 순환 보직으로 인사이동을 한다"며 "도산절차의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다"며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파산절차에서 채무자를 조사하는 파산관재인의 전횡을 막기 위해 파산관재인 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채무자의 개인회생 상환 기간 5년이 너무 길다며 미국과 일본과 같이 6개월, 1년, 3년, 5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원들은 가계부채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차원 행정정책과제, 국회차원 입법과제, 법원차원 도산제도 개선과제 등을 제시했다.자살자 증가와 사회생활 파탄을 가져오는 불법 추심도 막기 위해 채무자 대리인제도의 적용 범위를 폭넓게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 연장과 추심을 금지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기관 규제와 금융상품 등급분류제 및 판매면허제,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민생경제위원회 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1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가계부채 문제해결 방안’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밖에도 이들 시민단체들은 행정부에 대해 "고금리대출 억제를 위해 이자율 상한선을 인하해야 한다"면서 이자제한법 및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했다.

또 '빚내서 집 살 것'을 유도하지 않도록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강화하는 한편, 금융공기업부터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입법부에 대해 과잉대출이나 약탈적 대출을 막기 위한 '주택 담보 과잉대출 규제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발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정세은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자문위원에게 전달했다. 

정세은 자문위원은 “시민사회단체 의견을 수렴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청와대까지 전달하겠다”면서 “향후 단체가 제시한 의견이 여러 행정기구에 반영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등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세은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 자문위원(왼쪽에서 두번째)에게 가계부채 대책 시민단체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