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지난해 IFA 2016 현장에서 “우리는 하드웨어 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이다”고 말했다. 초연결 시대를 맞아 콘텐츠와 플랫폼을 아우르는 강력한 생태계 전략을 구사하면서 내밀한 비즈니스 모델에 필요한 모든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비전은 먼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연결 시대의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위력을 발휘하는 현재 삼성전자가 보여준 성과만 보면 답이 나온다.

삼성전자, FANG(팡) 누르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영업이익 14조원, 매출 60조원을 기록했다.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은 41.41% 증가했고 매출은 18.69% 늘어났으며 전년 동기 대비로는 영업이익 71.99%, 매출은 17.79% 증가했다. 대표적인 글로벌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인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의 성적을 웃돌 게 확실시된다.

삼성전자가 기존 최고성적인 2013년 3분기 영업이익 10조1600억원 기록을 갈아치우고 마의 10조원을 돌파한 것도 모자라 단숨에 10조원대  중반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바탕으로 부품과 세트 인프라가 살아나고 있으며 갤럭시 시리즈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경쟁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란게 중론이다.

이러한 존재감이 FANG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FANG이 최근 주식시장에서 주춤하고 있으나, 저조한 실적 탓에 이들이 삼성전자에 덜미를 잡혔다는 것은 전형적인 확대해석이다. ‘FANG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의 미래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전반적으로 ‘위험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폰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매출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자율주행차와 증강현실 등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KGI의 애플 전문가인  밍치 궈 연구원은 이를 두고 “최악의 순간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애플과 달리 FANG은 여전히 플랫폼 사업자의 위치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SNS이며, 아마존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 예상보다 적은 신규 가입자를 유치했으나 준수한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구글은 여전히 글로벌 ICT 업계의 포식자다.

결국 애플이 불투명한 미래 탓에 글로벌 대장주의 위력에 의문부호가 매겨지는 가운데  FANG은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러한 FANG 마저’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을 몸소 증명했다.

▲ 넷플릭스 글로벌 진출. 출처=넷플릭스

SNRS, STAT의 비전

전형적인 플랫폼 사업자인 FANG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애플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세계 일등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SNRS(소프트뱅크-닌텐도-리쿠르트-소니)와 아시아의 21세기 '신룡(新龍)'으로 꼽히는 STAT(삼성전자-텐센트-알리바바-TSMC)의 비전을 살필 필요가 있다 . 이들은 전형적 플랫폼 기업의 성장세를 압도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판로를 가지고 있으나 그 자체로 플랫폼 사업자로 불리기는 어렵다. 손정의 회장을 중심으로 비전펀드의 미래를 그리는 상황에서 투자를 통한 몸집 불리기와 기업 인수합병으로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국의 암(ARM)을 인수하고 구글이 포기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기본 인프라를 다지는 기업이다.

닌텐도는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를 성공시킨 나이언틱과 지식재산권(IP)을 통한 협력에 나섰으며 콘솔 스위치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게임명가의 부활을 알렸다. 취업정보업체 리쿠르트는 미국 취업 관련 검색 엔진 인디드 인수에 성공해 명실상부 데이터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소니는 명가재건을 바탕으로 이미지센서와 TV, 스마트폰 등 다양한 하드웨어 제조에 나서고 있다.

SNRS의 비전이 FANG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은 글로벌 ICT 기업의 오래된 고정관념인 ‘하드웨어 인프라 조합은 소프트웨어를 이길 수 없다’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애플에서 시작된 모바일 혁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제3의 가치를 창출하는 상황에서 ‘하드웨어의 가치’가 다시 각광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모바일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플랫폼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공장냄새 나는 하드웨어 제조’보다 상위에 있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포함된 STAT의 비전은 더욱 노골적이다.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플랫폼 사업을 핵심으로 두고 있으나 대만의 TSMC는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의 거물이다. 철저하게 제조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으나, TSMC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4룡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김도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FANG보다 STAT가 더 큰 투자 잠재력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만났기 때문

삼성전자가 반도체 매출에서 인텔을 압도한 것은 시장의 크기는 작아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지만 제조 인프라만 확실하게 구축되면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삼성전자가 FANG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들을, 그것도 큰 문제가 없는 FANG의 경쟁력을 압도하기 시작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대를 규정하는 ‘초연결’이라는 키워드에 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초연결의 가치를 웹에서 모바일로 연결하는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초연결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을 전제로 한다. 아마존이 미국에 오프라인 서점을 만들고 쇼핑박스를 스팟형식으로 구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선식품 회사인 홀푸즈를 인수한 것도 오프라인 거점을 확보해 온라인의 사용자 경험을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양쪽의 간격을 좁히기 위함이다. 초연결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온라인만큼 오프라인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산업환경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지난해 '양회'에서 스마트제조와 인터넷 플러스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하드웨어 생태계에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이식하는 게 골자였다. 이는 일종의 스마트팩토리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인터넷 플러스를 소개하며 “모바일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 등 핵심 기술을 전통 산업과 통합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더스트리 4.0과 미국과 일본의 엣지 컴퓨팅 모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산업환경에 이식해 생산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집중한다. 기가팩토리 준공 당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기가팩토리 자체가 하나의 컴퓨터”라고 말한 이유다.

아디다스가 동남아시아 공장을 독일 현지로 이전한 것도 스마트팩토리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결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하드웨어 제작능력을 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통해 생산과 제작을 동일한 SCM(유통망 관리)로 통합하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비전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미 제조업계의 강자인 삼성에게 초연결 시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요구하고 있다. 모바일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사업자가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오프라인에 진출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오프라인 사업자가 온라인 인프라를 적극 체화해 업의 본질을 끌어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 삼성전자 평택공장.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에게는 꽃놀이패다.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스마트폰 제조 능력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인프라를 통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단숨에 체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러한 기회가 ‘최고 수익 기업’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이 나온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구글의 메이드바이 정책과 애플의 하드웨어 수직계열화 정책은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에게는 양날의 칼”이라면서 “초연결 시대는 온라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를 지나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결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이 가지지 못하는 막대한 오프라인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최고수준의 제조능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장 자체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것도 고무적이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초연결 시대를 맞아 수요 자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나, 현재 제조업체들은 공급물량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영악하게 대비하는 중”이라면서  “삼성전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가졌기 때문에 초연결 시대에 가장 빛을 볼 수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지나친 낙관론은 위험하다. 하드웨어의 가치가 중요해지기는 했으나 이는 소프트웨어 마인드의 탑재를 전제로 한다. 부품 및 세트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시장에서 승부수를 던진 후 궁극으로는 메가 IT 트렌드와 같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타이젠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하드웨어 초연결 제조 인프라를 조합하기 시작한 삼성전자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