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을 잃으면 나라도 없다.’

라는 것은 이순신장군이 모 대신에게 보낸 서간 중에 한 구절이었다.”

“네, 당시에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의 근거가 날아가는 판이라 절체절명입니다. 장군은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인하여 군을 몰고 한산도를 떠나 본영으로 향하였으며, 돌아오는 길에 장군은 금번 전투에 사로잡은 조선사람 몇을 심문하여 적정을 철저히 알고자 함이었습니다.”

“음! 워낙 조심성이 강한 분인지라 당연한 일이다. 녹도 만호 정운이 사로잡은 거제 오양포 보자기 최필은 전 날의 진술한 바와 비슷하나 다만 상이한 점은 전라도 가려고 견내량에 진을 쳤다가 패망한 모양이라고 할 뿐이었다. 여기에 시를 적어 본다.”

 

뇌정은은생질질雷霆隱隱生叱叱 벽력굉굉수지마霹靂轟轟隨指摩

번공백족취남하飜空白鏃驟南下 진해적환류성치振海赤丸流星馳

풍휘전소거감당風揮電掃詎敢當 파죽지중노명위破竹之中虜命危

 

천둥소리 은은하게 질타를 퍼붓고 우르릉 벼락소리 지휘를 따르네.

공중에 날리는 화살이 소나기 내리듯 하고 바다를 진동하는 붉은 탄환은 유성처럼 달린다.

바람이 일고 번개 치듯 하니 어찌 받아내려 맹렬한 기세 속에 오랑캐 목숨이 위태로우리.

 

“네, 당시 장군의 상황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순천부사 권준이 사로잡아 온 경성사람 김덕종은 6월경에 서울에 웅거하던 적의 총대장 부전수가를 따라 군사를 네 패로 나누어 운운하는 말이 전날 진술한 말과 서로 비슷하였고, 유군 오령장 최도전이 사로잡은 경성 사노비 용이와 또 사노 중남이와 경상도 비안 사노 영락의 무리는 공초하되

‘소인 등은 서울로부터 적병이 내려오는 길에 용인 땅에서 우리 군사 여러 만 명을 만나 접전하다가 아군이 그만 물러간 뒤에 경상도 김해로 내려와서 대장이 글을 가지고 각 진에 통문 하는 모양이 아군의 장수가 약속하는 것과 같았고, 그 글을 보고는 적장 등이 손을 들어 서쪽 전라도를 가리키며 그러할 때마다 전라도 수군이라고 하며 혹은 칼을 빼어 무엇을 치는 형상을 하는 것이 마치 사람을 죽이는 모양을 하는 것과 같았다.’

라고 하여 전날 문초한 말과 조금 달랐습니다.”

“음! 광양현감 어영담이 사로잡은 경상도 인동사람 우근신이라는 자는

‘소인은 누이동생과 처자를 데리고 피난하러 산중에 들어가 누이동생과 함께 적병에게 붙들려 서울로 올라가 누이는 적장에게 겁탈을 당하였소. 어느 날인지 몰라도 그 적장에게 끌려서 다시 내려올 때에 아군과 서로 만나 접전하였는데, 첫날은 적병이 이기고 둘째 날은 적병이 패해서 퇴병하고 셋째 날은 아군이 다 물러가서 김해강으로 내려왔소. 김해강에서는 배를 탔는데, 그 배들은 어디서 온 배인지 알 수가 없었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다는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으나 다만 손으로 서쪽을 가리키니 필연코 전라도로 가자는 말인 듯 하였소.’

하고 접전하던 당일의 일에 관하여 우근신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날 소인을 데리고 온 적장이 우리 수군을 많이 죽였소. 그러나 다른 장수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칼을 두르고 날뛰다가 우리 수군이 이기게 되어 활을 쏘며 돌격하면 다들 겁을 내어 머뭇거리고 뒷걸음을 쳤소. 소인을 데리고 온 장수가 아무리 호령을 엄히 하여도 다들 겁을 내어 무서워서 나서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