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법인 신우에서 매달 열리는 파산관제인 세미나. 사진=이코노믹리뷰 장영성 기자

채무자와 채권자간 채무조정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채권자와 직접 협상할 수도 있고 법률 등에 따라 강제 조정하기도 한다. 강제조정절차라 할 파산절차에서 강제조정은 곧 채무 탕감이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법원은 이런 점을 살펴 파산을 신청하는 채무자에게 재산을 숨긴 게 없는지, 채무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진실하게 답해줄 것을 요구한다.

파산관재인은 파산절차 중에 있는 채무자가 진실하게 자신의 경제생활을 법원에 신고했는지 조사하는 역할도 한다.

소득활동을 하고 있는 정황이 보이는데도, 실직했다거나 직업이 없다고 신고할 경우 법원은 채무자가 소득을 은닉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파산관재인에게 채무자의 재산조사를 하는 명령하는 이유다.

이달초 법무법인 신우에서 열린 파산관재인 세미나의 주제는 'SNS를 이용한 재산조회 방법'이다. 발제자 박석홍 파산관재인(서울회생법원 소속, 연수원 32기)이 맡았다.

 "없다, 모른다" 시치미 떼는 채무자…SNS를 이용해 진실밝혀

#서울에 거주하는 이 모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이씨는 파산신청서에 창업자금을 받아 사업을 운영했다가 빚을 졌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재직하는 직장도 없고 운영하는 사업체도 없다며, 소득이 없다는 취지로 파산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씨의 파산신청서는 의심스러운 대목이 여럿 발견됐다. 거듭된 질문에도 이씨는 아무런 재산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모른다며 입을 다물기도 했다. 박석홍 파산관재인은 그의 이력과 나이 등을 고려했을 때, 소득이 없다는 그의 말을 의심했다. 

박 관재인은 이 씨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그가 과거에 전자상거래업체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점에 착안, 포털 사이트와 SNS에 이 씨의 사업자명 등을 검색해보았다. 이 씨는 다수의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게시물과 댓글 등을 통해 아직도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을 알 수 있었다.  

박 관재인은 이씨의 작업장이라고 추정되는 사업장을 현장 방문했다. 방문에 앞서 이씨와 통화를 시도했는데, 그는 모친이 거주하는 충남 부여에 있어서 부재중이라며 피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사업장에 도착한 뒤 이씨의 동료에게 이씨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 전화를 걸자 작업장으로 돌아온 이씨와 면담할 수 있었다.

이씨는 박 관재인에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사실대로 털어놨다. 관재인은 이씨가 과거 자신이 살던 집의 보증금을 찾아 지인의 채무를 갚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씨는 파산신청 당시 자신의 채무가 창업대출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조사결과 주식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숨긴 사실 들통나면 '면책'받지 못할 수 있어

박 파산관재인은 "이씨는  허위진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위진술은 파산신청서에 기재한 내용과 관재인 앞에서 한 말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또 이씨가 전에 살던 보증금을 찾아, 특별히 친한 채권자에게 채무를 상환한 것 또한 `편파변제`로서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채무 상환은 모든 채권들에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특정 채권자만 채무를 변제받는 것은 채권자 평등에 어긋나는 것.

박 관재인은 이같은 이씨의 행위는 모두 `면책불허가` 사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관재인은 이씨가 이미 상환한 채무액 만큼 법원에 납부를 해서 다른 채권자들에게 다시 나눠 주기로 한 만큼, 법원에는 이씨에게 재량으로 면책해 달라고 보고서를 썼다.

SNS에서 찾아낸 채무자의 정상적인 경제활동 사례들

세미나에 모인 관재인들은 유사한 사례를 털어놓았다. 채무자가 제출한 서류나 진술내용이 의심스러운 경우 포털사이트와 SNS를 살펴본다는 것. 때론 인스타그램도 뒤져본다.

한 관재인은 "채무자의 재산조사 과정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채무자가 고액의 수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월 1000만원 정도 수입이 있는 이 채무자는 나중에 은닉한 재산중 1억원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재판부가 이를 거부하고 면책불허가 결정을 내렸다는 사례도 공유했다.

또 다른 관재인은 "포털이나 SNS를 통해 채무자가 자신의 자금으로 친족의 명의를 빌려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례를 많이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상황이라도 은닉한 재산의 정도가 많지 않고, 가족의 생계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주로 재량으로 면책을 허가해달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파산관재인 세미나를 이끌고 있는 홍현필 관재인은 "파산관재인의 시각이 굉장히 중요한데, 파산관재인이 재량면책을 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하면 재판부도 대체로 존중한다"며 "반대로 면책을 허가하지 말라고 의견을 제시했는데, 재판부가 굳이 다시 조사해서 결과를 뒤집는 상황은 많이 보지 못했다. 어떤 의견을 제시하느냐가 곧 결과를 좌우한다"고 다른 관재인들에게 신중한 보고서 작성을 당부했다.

파산관재인도 소송당할 수 있다…채무자는 솔직한 것이 최선

채무를 탕감받기 위해 파산 신청한 채무자들이 모두 재산과 소득을 속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위진술'은 자칫 사소한 것이라도 절차 진행에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채무자들은 유의해야 한다.

고의적이든 실수이든 자신의 재산과 소득을 솔직하게 신고하지 않으면, 규모가 작은 것일지라도 '거짓말' 그 자체를 면책불허가 사유로 정하고 있는 채무자회생법의 적용을 받는다.

박 관재인은 솔직한 대답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에 파산신청서에 사실과 다르게 기재해서 파산신청을 했더라도, 파산관재인 면담시 솔직하게 얘기하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 

채무자의 사업장과 집을 불시에 현장 방문하는 것에 대해, 채무자가 심적 부담을 느낄 때도 있다. 이같은 현장방문이 `비록 채무자 동의가 있다고 해도 과도한 조사가 아니냐`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박 관재인은 이에 대해, “파산관재인이 재산조사를 허술하게 해서 채무자가 면책을 받았는데, 나중에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은닉 사실을 알고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으로 채권자는 파산관재인이 채무자의 재산을 찾아서 채권자에게 나눠 줄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사건사례)를 접한 적도 있다. 여기에 법원으로부터 직무평가까지 받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같은 상황과 비난 여론을 감안할 때 박 관재인은 “채무자회생법을 고쳐 채권자의 이의가 없으면 조사를 생략하거나 약식조사를 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채무자가 신청 단계에서 법률 조언을 잘못 받아 파산절차가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해, 그는 "오히려 신청대리인 변호사들에게 채무자의 조사권한을 주고 법원에 성실보고를 하는 체계도 필요하다"며 "이같은 제도에서 신청대리인 변호사가 채무자와 결탁해 재산을 은닉하는 등 불성실한 파산신청을 대리하면,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는 등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