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가젯(Gadget)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상가젯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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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노연주 기자

새 카메라와 놀러나갔다. 경리단길부터 익선동까지 쏘다녔다. 무작정 찍어댔다. 여름휴가 워밍업이랄까. 그림 되는 곳 가서 멋진 사진 건져오려면 몸 풀어야 하지 않겠나.

나의 생애 첫 카메라는 캐논 EOS 400D다. 아무것도 모를 때 주변에서 추천해주길래 무작정 샀다. 헤어진 지 오래다. 함께 쏘다닌 새 카메라 이름은 EOS 800D.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400D와 같은 핏줄이다. 여름휴가를 같이 떠날 생각이다.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눌렀다

왜 굳이 800D인가. 이유야 복잡다단한데 계기가 있긴 하다. 비교적 최근 400D를 다시 만났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빌린 카메라가 이 모델이었다. 잊고 산 시간이 무색하게 너무나 익숙했다.

카메라에 400D 대신 ‘Kiss Digital X’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잘만 알아봤다. ‘맞아. 일본에선 이 제품명으로 출시됐지.’ 400D는 여전했다. 대략 7년 만에 재회여도 손발이 잘 맞았다. 돌려줘야 할 시간이 와버렸다.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스무살 때로 기억한다. 대학에 입학한 해에 생애 첫 카메라를 질렀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100만원 돈은 줬던 것 같다. 부모님 돈이었으니 등골브레이커나 다름없었다. 죄송해요. 언젠간 다 갚을게요.

괜히 카메라를 산 건 아니다. 꼴에 미대생이었는데 전공 과목에 사진 수업이 꽤나 있었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려면 사진기가 필요했다. 그때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왕이면 DSLR을 사라”고. 핑계 아니다.

압도적인 주변 추천으로 400D를 샀다. 내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그 당시 처음 알았다. 굳이 과제가 있지 않아도 어디든 들고나가 마구잡이로 찍고 또 찍었다.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란 말이 있다. 이 말 지키지 못했다.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장비병 바이러스의 숙주 되기

DSLR이란 말도 잘 모르던 사람이 장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장비병이란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를 포착한 거다. 남대문 상가에서 렌즈를 공수해 400D에 물렸다. 렌즈가 하나둘 늘었다. 외장 스트로보나 세로 그립까지 달았다.

장비병 바이러스는 이제 400D를 바꿀 타이밍이라고 속삭였다. 솔깃했다. 정도 참 없다. 400D를 팔아치웠다. 40D를 중고로 들여 보급기에서 중급기로 넘어갔다. 포토그래퍼로서 레벨업을 한 느낌?

결국 40D가 종착역은 아니었다. 1년도 안 쓰고 팔아치웠다. 소니 DSLR 보급기를 샀다. 그러다 또 팔고 니콘 미러리스 카메라로 갈아탔다. 지금은 이마저 집에 모셔두고 폰카메라만 사용한다.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를 찾아 떠난 걸까.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속단하긴 이르다. 800D가 지금 내 손에 있으니까. 400D랑은 관계가 깊은 카메라다. 둘 다 같은 보급기 시리즈다. 800D는 최신형 보급기, 끝판왕이다. 나이 차이가 크다. 800D가 10년은 늦게 나왔으니.

세월이 무색하게도 겉모습은 큰 차이가 없다. 캐논 특유의 화사한 색감도 두 카메라가 동일하다. 그런 까닭일까. 800D와의 출사가 지나치게 익숙하게 다가왔다. 여느 새 물건을 만날 때 느끼던 이질감 따위 없었다.

 

400D 곱하기 2는 800D?

400D와 800D. 모델명에 숫자가 곱절로 늘었다. 성능도 배로 진화했다. 일단 화소수가 2배 이상 늘었다. 1010만화소에서 2420만화소로. 연사 속도도 2배다. 초당 3매 찍던 걸 이젠 6매를 소화한다.

특히 400D 최대 ISO 감도가 1600인 반면 800D는 2만5600까지 설정 가능하다. 어둠에 훨씬 강하다는 의미다. 초보자도 흔들림이 적은 사진을 찍어낼 수 있고. 사람이었으면 이런 말 들었을 거다. “참 잘 컸다.”

400D엔 없지만 800D엔 있는 기능이 수두룩하다. 라이브뷰, 회전식 디스플레이, 와이파이 무선 전송 기능 같은 것들. 400D는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다. 800D는 가능하다. 풀 HD 해상도 60프레임 영상을 찍어낸다. ‘타임랩스 무비’나 ‘HDR 동영상’ 모드도 지원한다.

▲ 사진=노연주 기자

무게는 조금 늘었다. 510g에서 532g으로. 체감하긴 어려운 차이다. 무게만큼이나 셔터음이 더 묵직해진 것도 특징이다. 800D 셔터음은 400D보단 40D를 닮았다. 셔터음만 놓고 보면 탈(脫)보급기란 얘기다.

무엇보다도 800D는 자동 초점(AF) 기능이 특출나다. 초점 잡는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알고 보니 세계에서 AF 속도(0.03초)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올크로스 45 포인트 AF 시스템’으로 초점 대상을 세밀하게 정할 수 있으며 ‘듀얼 픽셀 CMOS AF’로 영상이나 라이브뷰 촬영을 할 때도 안정감 있게 초점을 잡아낸다.

 

마음만은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

역시 DSLR이 찍는 재미가 있다. 다이얼을 M모드(수동)에 놓고 광학식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응시하며 찍는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을 포착해낸다. 마음만은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다.

가격도 괜찮다. 인터넷 최저가 기준 70만원대다. 본체만 살 때 가격이다. 요즘엔 ‘똑딱이’가 하이엔드 컴팩트 카메라라는 타이틀을 달고 100만원 넘게 판매되기도 하더라. 미러리스 카메라도 마찬가지고.

▲ 그 남자가 800D로 찍었다. 사진=조재성 기자

여름휴가 때 어떤 카메라를 들고 가야 하나. 어떤 책을 챙겨갈지 만큼 고민되는 질문이다. 내가 생각한 답이 800D다. 폰은 아쉽다. 액션캠이나 360도 카메라는 서브 장비로 적당하다. 미러리스나 컴팩트 카메라로 눈이 가긴 한다. 휴대성이 좋지만 찍는 재미를 생각한다면 역시 DSLR이다. 이왕이면 휴대성까지 갖춘 보급기로.

강력한 라이벌이 하나 있긴 하다. 같은 핏줄이다. 곧 나올 캐논의 또 다른 보급기 EOS 200D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DSLR이라니. 800D와 같이 휴가를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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