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최고금리 인하가 오히려 서민 경제를 비롯해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도우모토 히로시(堂下 浩) 도쿄정보대학 교수는 5일 서민금융연구포럼 주최로 시행된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일본의 최고금리 인하 부작용을 진단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도우모토 교수는 지난 2010년 일본이 최고이자율을 29.2%에서 20%로 낮추면 부정적인 효과가 커, 악성 부채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서민금융연구포럼이 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개최한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제언' 포럼에서 도우모토 히로시 도쿄정보대 교수가 '일본의 경험으로 본 최고금리 인하의 득과 실' 이란 내용의 발표를 하고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장영성 기자.

도우토모 교수는 이다 다카오 삿포로대 교수의 연구를 인용하며 "법정 최고금리를 낮춘 결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일본 GDP가 약 6조엔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며 "게이오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과이자 반환청구에 따른 경제효과까지 계산할 경우 8조~18조엔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06년 12월 대금업법을 개정하고 대부업체의 신규대출 심사를 강화했다. 2010년부터는 최고금리를 29.2%에서 15~20%로 낮추었다. 대출 심사시 원천징수표 등의 제출을 의무화하여 연 소득 3분의 1을 초과하는 대출을 규제하는 총량규제도 시행했다.

일본에는 금리를 제한하는 법이 두 가지가 있다. 기존에 일본은 일반 은행권 최고금리를 연 15~20%로 제한하는 이자제한법, 비금융권 최고금리를 연 29.2%로 규제하는 출자법이 있다.

일본은 이중 규제 형태를 취하다 보니 처벌을 피하되 고금리를 취하기 위해 출자법의 최고금리보다는 낮고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보다는 높은 소위 '그레이존 금리(연 20~29.2%)로 대출하는 관행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고금리 대출 관행으로 신용불량자, 다중채무자 등이 양산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려, 2006년 12월 대금업 3법(대금업법·출자법·이자제한법) 법정 최고금리를 20%까지 인하하는 정책을 펼치게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경제 악화를 비롯해 일본은 대부업법 개정으로 각종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도우모토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대출총량규제 부작용으로 ▲자영업자 폐업 초래와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 ▲자살자 증가 ▲사금융 이용자 증가 ▲생활 격차 확대 등을 주장했다.

일본은 2006년 대금업법 개정 이후 중소업체 도산이 많이 늘었다. 중소기업 자영업자가 폐업하면서 여기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노동자도 함께 실직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도우모토 교수는 “자영업자와 비정규노동자는 법정 금리 인하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사금융 이용자가 늘고 생활 격차가 확대됐다"면서 "다른 부작용으로 일본에 자살자도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 일본 소비자금융 대행 7개사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른 대금업 대출잔액과 신규대출계약율 추이. 자료=서민금융연구포럼 제공

일본은 대금업법이 개정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초까지 대출 심사를 엄격히 했다. 이때부터 신규대출 계약율이 급감하기 시작해 2006년 60%에서 2010년 30%까지 떨어졌다. 도우모토 교수는 이처럼 저소득·저신용자가 시장으로부터 자금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자 저소득층 관련 문제가 곳곳에서 일어나게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7년부터는 부모가 자녀 급식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문제가 급부상했다. 각종 벌금을 포함한 범칙금과 과태료를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저소득층 사람들도 2007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주부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경찰에 적발되는 사례도 늘어났다. 특히 2006년부터 일본 중소기업 도산이 급증하기 시작했지만, 자살률도 함께 높아지기 시작해 2007년에는 절정에 달하기도 했다.

부채의 질도 나빠졌다. 일본 도쿄정보대학 연구자료에 따르면 대출총량규제 시행 이후 저신용 금융수요자는 신용카드대출로 옮겨갔다. 규제 전 신용카드 대출잔액이 4조 엔에서 5조 엔으로 1조 엔(10조 원)이나 증가했고,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규제 이후 약 1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우모토 교수는 “일본에서 최고금리 인하와 총량규제를 시행한 이후 중소기업 종사자를 비롯해 학력과 소득이 낮고, 지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큰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도우모토 교수는 이러한 부작용을 사례로 들며 “최고금리 인하보다 상환조건 완화나 금전카운셀링이 채무 관리에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최고금리를 인하하는 것보다 다른 방향으로 악성 부채를 해결해야 부작용이 적다는 지적이다.

도우모토 교수는 “실업 정리해고 등 일시적인 수입이 감소해 상환곤란자가 된 이들에겐 상환조건 완화가 필요하다”며 “발달장애의 특성을 보이거나 금전관리 능력이 미숙해 상환곤란자가 된 경우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금전카운슬링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 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개최한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제언' 포럼에서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관하여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충호 바로크레디대부 대표,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 이종욱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이민환 인하대학교 교수,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 김준홍 페퍼저축은행 이사. 사진=이코노믹리뷰 장영성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도 최고금리 인하정책에 대한 지적이 오갔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20~30대가 대부업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들은 대출금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비중이 더 높으므로 일본보다 이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생계가 어려운 이들을 20%가 넘는 고금리로 얽매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며 “정부는 금융과 복지정책으로 악성부채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서민금융은 접근성과 금리가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며 “금융사들은 대출 일정 부분을 서민금융으로 취급하게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금리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는 “(최저금리 인하 같은) 가계 규제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문제가 많다”고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대부업계도 도우모토 교수의 의견을 옹호하며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반대했다.

김충호 바로크레디트 대표는 “대부업체의 조달금리, 대손비용 등 원가가 26~27%가 되는 상황”이라면서 “대부업체의 실질적인 수익 이용 구조를 보면 추가 금리인하 여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업계는 시장경쟁을 통한 자율인하를 제시했다.

김준홍 페퍼저축은행 이사는 “신용평가사들이 서민금융회사의 이용만으로 신용평점을 하락하는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 마켓플레이스(Online Marketplace) 등을 통해 금융회사 간 가격경쟁을 통한 금리인하 유도 등도 고려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이어 “정상적인 상환을 하는 사람에게 금리를 낮춰주는 방식의 대부업권 공동상품을 출시해야한다”면서 “금리차등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민금융연구포럼은 서민금융관련 학계, 금융기관, 시민·사회단체, 정책수행기관, 관련 협회 등 200여 회원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조성목 전 금융감독원 선임국장이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