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하자소송에서 시공자나 분양자의 공사상 잘못으로 인해 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주장·증명 책임은 구분소유자나 입주자대표회의에게 있는 것이므로, 구분소유자 등은 감정 사항을 특정할 의무가 있다. 만일 구분소유자 등이 감정 사항 자체를 특정하지 않고, 그 특정의 업무를 감정인에게 전적으로 일임한다거나 하자 항목만을 단순히 나열하는 형식으로 감정을 신청한다면 위 원칙에서 현저히 벗어나는 것이며, 이는 곧 모색적인 증거 신청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어 그 감정 신청은 부적법해질 수 있다.

관련해 하급심 법원은 ‘당사자가 증명할 사실을 특정하지 아니한 채 증거조사를 통해 새로운 주장 사항을 만들어 내려는 모색적 증거 신청, 즉 증거를 신청하는 당사자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실을 증거조사를 통해 획득하고 이를 자기주장의 기초로 삼으려는 의도로 증거를 신청하는 경우나, 당사자가 어떠한 ‘A 사실’을 주장하지만, 그러한 ‘A 사실’에 관한 아무런 실마리가 없는 경우 그러한 ‘A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 신청을 하는 경우 등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다’고 판시해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증명 책임이 그 사실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는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비록 위 판결의 사안은 공동주택 하자소송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추상적이고 투망적인 하자 감정 신청을 적절하게 제한하는 상당한 근거로 쓰일 수는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보면 감정인이 직접 하자 항목을 발췌해서 구분소유자에게 추가 감정 신청을 유도하게 하는 결과도 허용하게 되는데, 이는 감정의 공정성에도 반하게 될 우려가 있다. 즉, 하자를 발췌한다는 것은 감정인 스스로 하자라는 판단을 전제한 결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 항목에 대한 감정 결과는 구분소유자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추가 감정이 이루어지면, 그 감정 결과가 나온 이후 그 결과를 탄핵하려는 당사자에 의한 감정보완 신청이 실효적으로 유지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감정의 기본적인 전제사실이 이미 확정되었을 수 있는데, 그 전제사실을 탓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후검증 절차나 재감정 절차로도 이어지게 되어 결국 소송의 완결이 지연될 수도 있다.

 

따라서 법원으로서는 감정인이 구분소유자의 감정 신청 사항에 특정된 항목에 대해서만 감정을 하도록 감정기일에서 감정인에게 적절히 명하거나, 감정 도중 추가 감정 신청이 이루어지면 추가 감정 신청 항목의 발췌 경위 등에 대해 신청자로 하여금 석명하도록 명할 필요가 있다.